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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를 읽다가 좋은 글이 있어서요
게시물ID : sisa_5428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여섯시내고막
추천 : 5
조회수 : 40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8/06 16:14:57
http://img3.doosanmagazine.gscdn.com/article_image/img_2/2014/08/01240201000010601_1.jpg


“정말 모르겠다. 일을 하면 할수록 모르겠어. 이젠 말도 잘 못하겠다.” 그는 올해로 8년 차인 사회부 기자다. 세월호 침몰 직후 2주 이상 팽목항에 머물렀다고 했다. 우린 아파트 앞 벤치에 캔 맥주를 들고 앉아 있었다. “그 거대한 슬픔, 통곡, 흐느낌. 괴로웠지, 너무 괴로웠어. 취재고 뭐고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랬어.” 그 감정엔 과연 물리적인 실체가 있었다고 그가 말했다. 거대한 울음소리가 와서 머리고 가슴이고 퍽퍽 치는 것 같았다고, 하지만 힘들다 말하는 것도 부끄러웠다고 했다. 현장엔 미처 기사로 쓸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확인할 수 없는 것들, 의심만으로는 할 수 없는 말들,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들, 알면서 시치미 떼고 있는 것들.

6월엔 시국선언이 잇따랐다. 대학생, 교수, 문인, 4대 종단이 한 목소리를 냈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60년대가 이랬을까 싶었다. “1950년대는 무기력, 체념, 암울, 불안, 이런 키워드로 상징된다. 그야말로 희망이 안 보이는 시대였다. 4.19 선언문에 담긴 것처럼 캄캄한 밤이었다.”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프레시안>과 진행하는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절반 정도만 위급해 보였다. 연관 검색어엔 ‘시국선언 뜻’ 같은 말들이 있었다. 한국은 몇 개의 다른 세계로 쪼개진 것 같았다. 6월 4일 <한국대학신문>에 실린 르포 한 꼭지는 참고할 만했다. 제목은 “거리에서도 ‘힘 잃은’ 교수들… 시국농성현장을 가다”였다. 농성 현장엔 세월호 대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을 촉구하는 전국 대학교수 시국선언이라는 노란색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행인이나 언론마저도 이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기사의 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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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내용들은 http://www.gqkorea.co.kr/content/view_02.asp?menu_id=04030200&c_idx=012402010000106 여기서 확인하세요

글의 마지막 말이 와닿네요

그 목소리가 모이고 또 모였을 때라야 우리는 좀 다른 차원의 대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는지. 정치란 여의도에서 이뤄지는 일, 고작 3백 명이 좌지우지하는 일, 파란 지붕 밑에서 누구 모르게 하는 그런 일이 아니다. 정치야말로 개인적이다. 당신의 모든 것이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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