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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진 벚꽃 잎은 바람이 불 때 마다 회오리치듯 꽃바람이 되었다.
내 팔에 감기듯 매달린 아내와 한 손에 든 피크닉 바구니의 무게가 묵직했다. 한 차례 다시 벚꽃이 꽃바람이 되어 사람들 사이를 헤집었고, 사람들이 환호하듯 꽃바람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길의 좌우로 길게 이어진 벚꽃 나무 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 아내가 어느 벚나무 아래를 가리켰다. 자리를 자세히 보려면 고개를 돌려야 했으므로 나는 아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완전히 돌렸다. 비로소 약간 가림막이 쳐진 것 같은 시야에 아내의 손끝에 자리한 나무 아래가 들어왔다.
흔히 ‘전망이 좋은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차지하지 않은 자리었다. 아내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천천히 가요.”
다정한 말투로 나는 내 발을 재촉하는 아내에게 말했다.
“어머. 미안해요. 들떠서 조금 배려가 없었네요.”
“…괜찮아요.”
흙 위로 불룩하게 솟은 벚나무 뿌리에 걸리지 않게, 나는 가림막이 쳐진 것 같은 시야와 절뚝이는 걸음걸이 때문에 잠시 땅으로 처박아야 했고, 평평한 자리에 돗자리를 펼쳤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피크닉 바구니를 열었다.
블루 큐라소 시럽을 넣은 레모네이드, 참치에 마요네즈와 후추, 양파를 가득 넣은 샌드위치. 거기에 착실하게 꼭지를 예쁘게 잘라낸 딸기와 한 입 크기로 자른 키위까지 들어있었다. 밀폐 용기에 담겨 차례차례 나오는 피크닉 도시락을 보는 사이 아내가 무어라고 떠들어 대는 것 같았다.
“―보. 여보!”
약간 높아진 아내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나는 어깨를 약간 튕기며 아내를 쳐다보았다. 한쪽으로 쏠린 것 같은 시야에 아내의 얼굴이 들어왔고, 그 뒤로 주변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들어왔다.
“미… 미안해요. 샌드위치가 맛있어 보여서.”
“…당신도 참.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야기 하면 들어야죠.”
아내는 그냥 넘어가겠다는 듯 평소와 같은 어조로 이야기 했고, 나는 얼굴에 미소 비슷한 것을 띠우려 노력했다. 그럭저럭 미소 같은 것이 나왔는지, 아내는 참치를 넣은 샌드위치를 집어내게 내밀었다.
“자요. 당신 이거 좋아하잖아요?”
“…고마워요.”
미소를 지으며 아내의 손에서 샌드위치를 건네받으려 하자, 아내는 작게 잇새로 공기를 빨아들이는 소리를 내며 손을 약간 물렸다.
“자. 아―.”
아내는 직접 입에 넣어주겠다는 듯 웃으며 말했고, 나는 약간 숨을 들이마시며 입을 다물었다.
‘늘 이런 식이야.’
방긋, 미소를 짓는 아내의 얼굴에 목구멍 아래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아내는 재촉하듯 다시금 ‘아―.’하는 소리를 냈고, 나는 내 입술에 닿는 빵의 거칠거칠한 표면과 통조림 참치의 비린내에 결국 참지 못했다.
“그만 해!”
소란스럽던 주변의 소리를 걷어낸 듯 사방이 조용해졌고, 나는 흙바닥에 해체되어 나뒹구는 샌드위치를 보는 아내를 노려봤다.
“이젠 제발 그만 해!”
목소리가 갈라져, 이상한 쇳소리가 났고 아내는 기저에서 분노를 느끼는 사람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안 되는 걸. 당신이 더 잘 알잖아요?”
“아니야!”
“그만 해요. 이게 당신이 원하던 거예요.”
“아냐!”
아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한심하다는 쳐다보는 아내의 시선에 내 온몸이 분노에 갈갈이 찢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자리에서 튕겨나가듯 아내에게 달려들었다. 밀폐용기들과 레모네이드를 넣은 투명한 텀블러가 넘어지며 내용물이 뒤집어졌다. 나는 가느다란 아내의 목을 양손으로 움켜쥐었고 있는 힘껏 졸랐다.
아내는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며 눈을 까뒤집었다가도 잠시 눈이 돌아오면 손톱으로 내 손등을 긁어 피가 났다. 따끔거릴 상처의 고통이나 불쾌감은 어디에도 없이, 나는 환의에 젖었다. 그래 어쩌면 아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 될 지도 몰랐다.
있는 힘을 다해, 눈알이 튀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나는 아내의 목을 조르고 졸라, 아내가 축 늘어질 때까지 매달렸다. 가느다란 아내의 목에서 뚜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자 아내는 짐승의 멱이 따이는 소리를 내며 늘어졌다. 그러고도 몇 초를 더 아내의 부러진 목을 조르던 나는 숨을 몰아쉬며 종래에는 아내를 놓아주었다.
벚나무 아래에서 아내가 축 늘어져 죽어있었고, 나는 이것이 정말로 일어난 것인가 의심스러워 얕게 헐떡이는 숨을 내뱉었다. 내가 정말로 아내의 죽음을 의심하는 사이에도 아내는 미동이 없었고,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상이 멈춘 것처럼 사람들이 아내를, 그리고 내가 있는 풍경을 보고 있었다.
“하. 하하…. 하하하!”
‘됐다.’, ‘그래.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다.’라고 생각하며 나는 돗자리 위를 벗어나 벚꽃이 꽃바람이 되어 흐트러지는 길을 내달렸다. 사람들은 미동도 없었고, 나는 자유에 부쩍 가까웠다.
벚꽃의 길을 내달리고 차들이 멈춰선 도로를 달려, 주택들이 그림처럼 늘어선 길을 지났다. 인적이 드물어지는 길을 따라, 구불거리는 길로 들어서면 어디까지 자라있는 건지 모를 미로 정원이 나왔다.
“그래! 하하하! 그래!”
입구를 지나면 금세 미로정원은 들어온 곳도 나가는 곳도 보이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쉼 없이 미로의 모퉁이를 돌아 걸었다. 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숨이 차는 걸 보니, 자유가 정말 코앞에 있었다.
모퉁이를 돌고 걷다가 다시 모퉁이를 돌면 기다리던 것이 눈앞에 있을 터였다. 잡으러 올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웃음이 났고 절뚝거리는 발마저 가벼웠다. 모퉁이를 하나 지났고, 마지막 모퉁이만 꺾어 지나면 됐다. 그래, 그랬으면 됐다.
“어디가세요?”
모퉁이를 돌자 보이는 것은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 부러진 목을 억지로 다시 붙여 놓은 것처럼 고개가 뒤틀린 아내가 거기에 서 있었다. 그 뒤틀린 고개와 한심함과 분노가 담긴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온 몸이 천근처럼 무거워져 내 무릎이 꺾였다. 아내의 스커트와 카디건 자락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아내의 등 너머를 지친 눈으로 쳐다보았다.
문. 보통의 아파트 현관문 같은 문을 응시하자 아내가 무릎을 굽혀 시야를 빼앗듯 내 눈을 마주해 왔다.
“제가 말했죠? 나갈 수 없어요.”
“…….”
“이 꿈은 무너지지 않아야 해요. 그렇죠?”
아내가 물어왔고, 나는 반 토막의 시야로 아내를 보았다.
어떻게 해도. 이 꿈은 무너지지 않았다.
*
한 때 공게에서 간혹 보였던 꿈속의 사람들이 떠나지 말아달라며 울거나
나를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던 글들, 그리고 루시드 드림과 관련된
내용들을 떠올리며 써봤습니다.
소설 속 나는 현실 도피를 위해서 꿈을 만들지만
결국 꿈에 갖혀버렸다는 그런 이야기였어요.
그리고 나의 다리는 자살 시도의 결과로
눈은 꿈속의 아내가 그랬다는... 그런 비하인드가 있습니다...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
[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소녀상을 지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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