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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어머니가 들려준 어릴적 이야기
게시물ID : panic_715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내일우유
추천 : 21
조회수 : 322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8/10 23:15:48
어머니가 어렸던 시절은 6.25가 막 휴전되고 평화가 찾아와 농민들도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던 시절이었다.

할아버지는 전쟁 통에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외삼촌이 풍요롭진 않았지만 일가에서 지원해준 전밭으로 먹고는 살 정도였다고 한다.

그 당시에 농민의 집은 손바닥 만한 마당과 방 한 칸, 정지(부엌) 한 칸, 방 옆에 작은 창고로 사용하는 방이 전부인 흙벽과 기와를 얹어 만든 집 뿐이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할머니 집에 놀러 가서 본 집안 정경이 이러했었다. 내 기억에도 이 집이 생각나는 것을 보면 아주 오랫동안 이 집에서 살았던 것 같다.

지금부터는 내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로 어머니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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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었던 날..
여느때처럼 나는(어머니) 방에서 동생을 돌보고 있었고, 엄마는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는데 집 대문 밖에서 자꾸만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숙아~ 숙아~ 숙아~~"

그 목소리는 마치 잠들기 전 들려주던 엄마의 자장가처럼 다정하면서도 나긋하게 귓가에 속삭이듯이 들려왔다. 난 혹여나 바람결에 내 이름을 잘못 들은 건 아닐까 하여 방 안에 그대로 있었더니 곧 이어 이번에는 전과 다른 약간 신경질적이면서도 날카로워진 목소리가 들렸다.

"숙...아!! 숙~아!! 숙아!!!"

날이 선 듯한 목소리와 좀 더 뚜렷하게 들리는 내 이름에 정말 친구가 밖에 와있나 보다 생각하고 방문을 열었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 같이 놀다 헤어진 동네 친구가 무슨 일로 날 찾을까 생각하며 대청마루에 걸터 앉아 고무신을 신고 천천히 눈을 들어 대문 밖을 바라 봤는데 이내 난 헛바람을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대문 밖에는 대략 3미터는 됨직한 여인의 형체가 서 있었는데 그 거대한 키에 흰색 저고리, 검은색 치마를 입고 5:5로 반듯하게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은 여인이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를 양동이를 인채로 상체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엉덩이 춤을 좌우로 빠르게 흔들고 있는 너무나도 괴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너무나 놀란 나는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어 앉은 채로 도망가지도 못하고 몸은 얼어붙어 그 괴기스러운 여인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내가 본 대문 밖 여인의 얼굴은 쥐상을 하고 있었으며 찢어지고 올라간 두 눈은 마치 구멍이라도 나 있는 것처럼 시커먼 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시뻘건 입술의 끝은 양쪽 귀까지 쭉 찢어져 있어 길죽한 면상을 한 그 여인을 더욱 기괴하게 느껴지게 했다.

"숙..아~ 숙아~ 이리 나와서 놀자~"

계속되는 여인의 부름으로 공포감에 휩싸인 나는 마침 정지(부엌)에서 엄마가 저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나 엄마를 애타게 불러 보려 했다.

'엄마!!! 엄..마!!!!!!!'

하지만 내 목소리는 계속 입안에서만 맴 돌 뿐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이런 육시럴 년!!! 사람도 아닌 년이 여기가 어디라고! 네 이~~ 년!! 썩 물러가거라!!!"

마침 정지에서 바깥의 이상한 소리를 듣고 나오신건지 엄마는 그 여인을 향해 노발대발 소리를 질러대시고는 급히 창고 방에 뛰어가 겨울에 만들어 두었던 싸리비를 마당으로 들고 와 허공에다 미친 듯이 휘저으셨다.

"이년아 썩 물러가라!!! 썩~ 물러가!!! 내 이 싸리나무로 네 년을 요절을 내줘야겠다. 이년!!!"

"키키킥킥 흐히히히 낄낄낄 흐히히히힉"

그제서야 요상한 목소리로 웃어 젖히던 그 여인은 대문 밖에서 서서히 옆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움직이는 여인의 시선은 계속 나를 향해 있었고 요사스럽게 변한 표정은 섬뜩하게도 더욱 선명해져 갔다.

"숙..아...숙아...같이 놀아... 기다려!!! 기..다려!!! 낄낄낄낄 히히히 크키키킥"

여인의 몸은 나와 멀어져 가는데 고개와 시선은 계속 나를 향해 있었고 급기야는 여인의 머리가 반대로 완전히 돌아가서야 그 모습이 스르륵하고 사라져 버렸다.

"이런 손각씨(孫閣氏-처녀귀신)가 여기는 왜 왔노!!! 큰일났구마 큰일이구마"

엄마의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아 저게 처녀귀신이었구나 !!' 라고 생각하였다.

이내 엄마는 급히 뒷간으로 가시더니 뒷간 문 앞 흙을 속으로 파서 치마폭에 담고 대문 앞에 한 움큼, 방문 앞에 한 움큼 내려놓으시고는 잡고 계시던 싸리비를 나에게 넘겨주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치귀라하여 뒷간을 지키는 신인데 성격이 포악하여 집으로 들어오는 귀신을 싫어하는 가택신 중 하나로 뒷간 주변의 흙을 뿌리면 잡신을 물리치는 효험이 있다고 한다)

"엄마말 명심해야 한다. 지금부터 방에 들어가서 꼼짝도 말고 있어야 해. 귀도 막고, 말도 말고, 동생 꼭 끌어안고 있어야 된다! 절대 밖으로 나오면 안 돼! 알아 들었제? 만약에 또 그것이 들어올라치면 싸리비로 힘껏 내리치거라. 방에선 절대 나가지 말고. 알았제?"

"흑흑 응... 흑흑흑 근데 엄마 어디가게?"

"내 앞산 치문(緇門-승려의 다른 말)한테 다녀 올꺼니깐 아까 엄마한 말 반드시 명심해야된다!"

신신당부를 하고 창고에서 싸리비를 하나 더 챙기신 엄마는 그 길로 대문 밖을 나서셨다.
 
이미 밖은 해가 떨어져 캄캄한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고 간혹 벌레 소리인지 짐승의 소리인지 모를 바스락 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이내 무서워진 나는 나무로 만든 창호지 방문을 얼른 걸어 잠그고 어린 동생을 끌어 안아 이불을 뒤집어 썼다.

'앞산 치문한테 다녀오시려면 족히 2시간은 걸릴 텐데 그게 또 오면 어떡하지?'

이런 저런 걱정을 하면서 몰려오는 두려움에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땀을 흠뻑 흘리며 덜덜 떨고 있던 그 때.

"숙..아!! 숙아!! 이리나와!! 노올자 낄낄낄낄"

밖에서 그것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귀를 뚫고 머리 속에 박히듯 들려왔다.

"지금 나오면 놀아주고 안 나오면 내가 들어가지. 내가 들어가면~..키키키킥...내가 들어가면...키키키킥..."

놀리는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위협적인 목소리로 계속 나를 불러댔다.

그 목소리는 분명 가까이 있는듯이 내 귀에 선명하게 들렸지만 직감적으로 아직 그것은 대문 밖에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느낌이 왔다. 이내 난 손에 쥐고 있던 싸리비에 힘을 더 주었고 아직 잠들어 있는 동생을 안고는 바닥에 더 바싹 웅크려 덜덜 떨고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이 요란스럽게 흔들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이윽고 눈에 보이진 않지만 직감적으로 대문을 넘어 마당 안으로 그것이 들어왔다는게 느껴졌다.

그러더니 이젠 그것이 더 가까이에서 들리는 목소리로 찢어지게 웃으면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숙~아!! 숙~아!! 너희 아빠 있는 곳으로 가자. 내 얼른 데려다 주마 키키..킥킥"

한참을 그렇게 날 부르던 여인은 금새 땅으로 꺼지기라도 한건지 소란스러웠던 밖이 갑자기 조용해져 몇 초간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이불 안에서 덜덜 떨고 있던 나는 처녀귀신이 돌아간건지 확인하기 위해 이불을 반쯤 걷어내 얼굴을 내밀고 방문을 올려다 보았다. 하지만 내 바램과는 달리 여인의 큰 그림자는 아직 방문 밖에서 엉덩이를 쉴새 없이 흔들며 방안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숙아...안에 있는거 다 알아.. 내..내가..들어가면..키킥...킥...내가 들어가면....."
 
 
그래 이번에는 틀림없이 방 안으로 들어올 차례다. 공포는 이미 극에 달해 뒤집어 쓴 이불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가는 줄 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었을까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여인이 들어오면 싸리비로 엄마가 했던 것처럼 후려쳐야겠다고 다짐하고 이불 밖으로 반 쯤 몸을 내 밀었다.

그때 갑자기 창호지를 바른 문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금새 문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이내 봉창(창호지를 바른 창문)의 창호지가 부욱하고 찢어지면서 길고 큼직한 손이 들어와 방안 허공을 휘젓기 시작했다.

"이년 어디 있냐 이년..키키킥킥.... 머리채를 잡아서 나처럼 얼굴을 늘려줄까? 키키킥...사지를 길게 늘려줄까? 같이 놀아야지 숙아! 킥킥킥킥"

난 이불에서 뛰쳐나와 발악을 하며 싸리비를 휘둘렀고 내 공격이 커다란 손에 적중했는지 자지러지는듯한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손은 다시 봉창에서 쑥하고 빠져 나갔다.
 
'쫓아낸건가?..'
 
하지만 곧 이어 길죽한 머리가 봉창을 푹하고 뚫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인의 목이 더 늘어난 건지 봉창으로 들어온 머리는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기웃거리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찢어진 검은 눈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입은 여전히 웃고 있었고 급기야는 웃음소리와 울음소리를 동시에 내며 방 안으로 들어오려고 발버둥 치는지 문밖에 있는 두 손은 벽을 심하게 긁어대어 고막을 찢을 듯한 불쾌한 소리를 냈다.

"킥킥킥킥... 그르륵...킥킥킥킥...그르륵...그르륵. 찢어 죽여주마. 그냥 두지 않을거야!!!!"

죽일듯이 괴성을 지르며 방안으로 들어오려는 그 기괴한 모습에 난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고 속에서 걱걱거리는 소리만이 메아리 칠 뿐이었다.

그런데 그 때! 마당에서 법문 외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무 아미 다바야 다타가다야 다디야타..."

"어제, 오늘, 내일 사흘 안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인데 누구 먼저 할 것 없이 간다고 하여 억울해 할 것 없소. 이곳이 끝이 아니니 형색 고운 우리 아씨 그만하고 가소서"

그리곤 마당에서 법문 영창이 수분째 이어지자 귀신의 형체도, 목소리도, 흔들림도 온데간데 없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윽고 엄마가 방안으로 급히 달려 들어와 나를 덥석 안았고 이미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버린 얼굴을 닦아주며 나를 달래주었다.

"아이고 우리 숙이 괜찮나? 불쌍한 우리 아가"

그 동안 밖에서 법문을 외던 스님이 들어와 내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씀하셨다.

"아이야 많이 놀랬느냐?"

나는 정신이 혼미하여 아무 대답도 못하고 엄마에게 안겨만 있었다.

"아주머니 어서 아이 치마를 벗겨주십시요"

이에 군말 않고 엄마는 내 치마를 벗겨 스님께 넘겨드렸다.

"아주머니 같이 갑시다. 아이야 너도 가자.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니 매듭을 지어야지"

이내 결심하신 듯 엄마는 동생을 들쳐 업고 내 손을 붙잡아 방문을 나섰다. 그리고 스님은 내 치마를 대문 위에 걸어 놓고 무언가를 중얼중얼거리더니 앞장서 대문 앞을 나서면서 물었다.

"얘야 오늘 어디서 놀다가 들어왔느냐?"

"저...다부 언덕에 애들이랑 총알 주우러 갔었어요"

"아이고. 이년아 거긴 그렇게 가지 말라고 했는데. 말 안 듣더니..에휴"

다부 언덕에 총알을 주우러 갔다는 내 말에 엄마는 역정을 내었고 스님 또한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 보셨다.

"어허. 거긴 너무 많은데.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 이거 어떻게 찾는다......흠. 일단 가보자꾸나"

(다부 언덕은 전쟁 중에 인근 주변에서는 가장 치열했던 전쟁터로 당시 시체는 이미 다 치워져 근처 산에 매장되었지만 총알 같은 것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 친구들과 총알을 주우러 어른들 몰래 가곤 했던 곳이었다. 어른들은 워낙 흉흉한 곳이라 애들에게 절대 언덕에 오르지 못하게 주의를 주곤 했던 곳이기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다부에는 주변 동네 민간인들도 노역으로 끌려가 많이 죽곤 했던 지역인데 전쟁의 광기에 물들었던 군인들이 민간인을 사지를 뜯어 죽이는 등 못된 짓도 서슴지 않았었다고 한다.)

다부 언덕은 집과 꽤 먼 거리여서 걸어서 한참이나 걸려서야 산기슭에 도착했고, 산을 오르는 중에 스님은 가시나무들을 꺾어서 한 손에 모아 쥐고, 어머니에게도 나눠 쥐게 하여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가 주로 놀았던 장소에 도착하자 스님은 뜻 모를 말들을 내뱉었는데 그 목소리가 자못 진중하고 엄숙하여 산 깊숙히 멀리까지 울리는 목소리였다.

"나무 사만다!!! 못 다남!!! 옴 밤!!!!!!"

주문 같은 것을 외우면서 얼마 동안 주변을 돌아다니시던 스님은

"저기 구나!! 저기 있구나!!!" 하시며 방향을 잡고 그 쪽으로 급히 걸어갔고 그 뒤를 엄마랑 내가 따라갔다.

그 곳에 가까워 지자 그때서야 처녀귀신의 목소리가 울음소리와 섞여 다시 들려왔다.

"못 간다!!! 못 가!!! 나를 두 번 죽이려고!!! 이놈들! 안 된다!!! 흐 흐흐흑...흐흐흑"

그 목소리를 들은 스님은 작은 분묘 앞에 서시더니

"이제 축귀 해야겠습니다." 하고는 정좌하고 눈을 감고 중얼중얼 주문을 계속 외우기 시작했고 이윽고 가져갔던 가시 덤불을 분묘 주변에다 둘러치고 어디서 났는지 소맷자락에서 작은 봉재 인형 하나를 꺼내 얼굴이 땅으로 가게 뒤집어 놓으신채 합장을 하였다.

"어딜 가나 같은 인생이지만 어둡고 차가운 날이 언젠가는 걷히겠지. 부디 극락왕생하시게"

"아바로기대 새바라야 사바하!"

"으엑...엑...끼햐아아악....갹......!!!"
 
찢어질 듯한 괴성을 길게 내 뱉으며 이내 그 여인의 비명소리는 산 속 깊은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하여 그 날의 괴기스럽고, 무서운 하루는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나중에 산을 내려오면서 들은 얘기로는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 찾기 어려울 것 같았으나 원한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스님의 눈이 따끔따끔하여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다른 원귀도 있었지만 그 손각시 만한 원귀는 없었다고 한다.

이로써 어머니의 어릴 적 귀신을 겪은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어머니는 아직도 그 얘기를 내 아들에게 옛날 이야기 처럼 들려주시면서도 그 귀신의 모습이 생각 났는지 몸서리를 치곤 하신다. 그리고 여전히 할머니와는 다르게 겁이 많으셔서 밤길을 혼자 잘 못 다니신다.

출처 : 웃대 널향해달린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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