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자정을 향해 달리고 있을 무렵, 잠들어가는 도시에서 한 쌍의 남자와 여자가 마주 보고 서있었다.
“어서 가, 난 이미 늦었어”
남자가 내리는 빗 속에서 가느다란 떨림으로 이야기 했다.
“어떻게 그래요! 내가 당신만 두고 떠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여자가 소리쳤지만 남자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이러지마 너에겐 시간이 없어 단 1초가 소중하단 걸 왜 몰라?”
남자는 여자를 기어코 보내겠다는 다짐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생각을 잘못했어. 우리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랬다면 너와 난 함께 갈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 때의 난 단지.. 단지..”
남자가 말을 이으려 하는 것을 여자가 참기 힘들다는 듯이 잘라버렸다.
“더이상 말하지말아요. 저도 당신을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지나간 일은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에게 중요한 건 바로 지금이라구요. 그러니까.. 날 더는 보내려 하지말아요.”
“... 난 단지 귀찮았던거야. 버스에서 내릴 때 버스카드를 태그하는 것은 너무 번거로운 일이야. 그 전에 먼저 태그를 해서 버스카드를 지갑으로 고이 넣은 뒤에 지갑을 나의 뒷주머니에 넣어두고 싶었을 뿐이라고. 물론 이 이야기를 듣는 너의 입장에서는 -지갑을 태그하면 되잖아!- 라고 얘기하고 싶겠지. 하지만 내 지갑안에는 버스카드 말고도 나라사랑카드가 있어! 이 빌어먹을 나라사랑카드 때문에 지갑으로 태그를 할 수 없다고!”
“알아요, 그냥 조금 일찍 태그를 한 뒤에 내릴 때 편하게 내리고 싶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은 오후 9시가 지났기 때문에 환승 시간은 1시간이 되었다구요! 아직 환승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지도 몰라요.”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우리가 66번 버스를 타고서 장안문에서 내리기 직전에 네가 버스카드를 태그했지. 그 때가 바로 오후 22시 22분 22초 정확했어.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과 닮아서 머릿 속에서 잊을 수가 없었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가야할 호계3동 주민센터로 향하는 777번 버스가 도착한 지금의 시간은 23시 22분 02, 03.. 오! 맙소사 너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어, 몇 초 뒤엔 너의 환승시간마저도 끝이 난다고!”
“아니에요 난 안가요!”
여자는 남자의 손아귀를 뿌리치고서 달리려 했지만, 남자는 그녀가 도망치려고 한다는 걸 미리 알아차렸는지 벗어나게 두지 않았다.
“이야기 속에 권총이 등장했다면, 그건 반드시 발사되어져야만 해.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 속에서 너의 버스카드가 등장했기 때문에, 그 버스카드는 태그되어져야만 해!”
이 말을 끝으로 남자는 강제로 여자를 버스 출입문 위로 올려보냄과 동시에 여자의 손에 쥐어져있는 버스카드를 태그시켰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아뿔싸, 남자는 생각했다. 지금 이 상황을.
-나의 이 주옥같은 계산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왜 환승이 되지 않았지? 이전의 버스에서 내릴 때 그녀의 버스카드가 태그된 시간은 22시 22분 22초.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의 시간은? 23시 22분 13초, 14... 오후 9시가 지난 지금 환승시간은 1시간. 그렇다면 뭐가 잘못된거지?-
남자의 머릿속에서 뉴런들이 신경전달물질을 빠르게 전달하고 있을 때였다.
“안탈거면 내려요”
버스기사가 신경질적으로 내뱉었고, 수원역에서 술 한잔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안의 사람들의 얼굴만큼이나 여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게 버스는 지나가고 정류장의 벤치에 앉아서 23시 22분 22초가 지나갔다.
“... 저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거요?”
“그러니까.. 아까 수원역에서 66번 버스 탈 때 잔액 혹시 기억해?”
“음.. 수원역에서 탈 때 1300원 있었는데, 성인의 버스카드 요금이 1100원이니까 200원이 남아있겠네요. 이 카드 안에.”
“그거였어!”
남자는 유레카를 외치며 목욕탕을 뛰쳐나온 아르키메데스처럼 빗속을 뛰어다니며 춤을 추고 있었다.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바로 잔액이 200원이였기 때문이야! 바로 그 것 때문이라고!”
“.. 무슨 .. 말이에요?”
“적어도 잔액이 250원이 남아있어야 환승이 가능하단 말이야! 하하하하하하하 이거야!”
“.....”
여자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갔다.
“얼굴이 왜 그래? 놀랍지 않아? 잔액이 250원 이상이 있어야 환.. 읍”
여자는 기습적으로 남자의 머리를 오른팔로 휘어감고서 능숙하고 빠르게 남자의 입술을 그녀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여자는 생각했다.
-이 남자 정도라면 나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겠어-
가을이 오는 문턱에 쏟아지는 비와 함께 그 들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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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