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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치킨의 신성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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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전막의주연
추천 : 2
조회수 : 345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8/13 02: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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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 책게에 있겠다는 것은 / 너를 위해 내가 / 하나둘 써내려가겠다는 뜻이다. / 나의 타자마저 너에게 / 흠뻑 주겠다는 것이다.
/ 나는 쓰다 쓰러져도 좋으니  / 너는 / 물처럼 책게로 밀려오라.       -낮은 곳으로(이정하) 각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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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은 신성하다.

이것은 공리다. 아니라 생각하더라도 치킨은 신성하다고 인정받을만한 무수한 자질을 가지고있다. 그 신성함은 우월의 극을 달려 비견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역사는 길었고 그에 비견될만한것은 단연 생겨나고 있다. 그 우월함에 비견될 것은 굳이 음식이 아니더라도 여러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윤하) 
그중에서도 여기서는 북유럽의 신 발두르와 그 유사함을 비교해보도록 하자.

먼저 우리가 알고있는 치킨에 대해 생각해보자. 치킨교 신자들은 당연하게도 전세계적으로 많이 분포되어있고 
그중 우리나라는 특히 더 엄청난 신자를 보유하고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2011년 5월호에 따르면 2009년 전세계에서 도살된 수는 닭 520억마리로 당신이 이걸 읽는 순간에도 한국에서만 매초 7마리의 닭이 끔살당하고 있다. 오리 26억, 토끼 22억, 돼지 13억,  9억, 칠면조 7억,  4억 마리 등으로 2위부터 다른 동물들을 다 합쳐도 닭의 절반조차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세계에서 하루에 1억 4,200만 마리가 도축되는 것으로 세계 인구의 0.7%인 한국(남한)인이 먹는 닭은 전체 닭의 2.37%나 되는 것이다.)

-자료출저 엔하위키 미러

(잠시 닭들에게 묵념)  (그리고 닭이 있는 한국을 위해 묵념)

가히 치느님의 존엄성과 우월함을 가늠해볼수 있는 자료다. 그렇다면 이런 치느님에게 감히 비견될  발두르라는 신은 누구인가?

발두르는 오딘의 둘째 아들로 빛의 신이다. 아내는 식물의 여신 난나, 아들은 신들의 재판관인 법률의 신 포르세티이다. 에다에 따르면 선하고 완벽한 신으로 세상 모든 것에게서 찬양받았다. 에다에서는 그가 애시르 신족 중에서 가장 뛰어난 웅변가이며 가장 자비롭고 가장 현명하여 어느 누구도 그의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외모조차도 가장 아름답고 심지어 식물 중에서 가장 하얀 꽃이 그의 이마와 같다고까지 묘사했다. 완벽초인이라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사는 천상의 궁전 브레이다블릭에는 정결치 못한 자가 들어올 수 없었다. 

-자료출저 엔하위키 미러

역시 치느님과 비교될만한 우월한 스펙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둘의 신성성 증거방식의 유사성이다. 

먼저 발두르의 경우를 보자. 발두르는 어느날 자기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그 사실을 말하자 그의 어머니이자 오딘의 아내인 프리그는 세상만물에게서 그를 다치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그래서 그는 무기,불,병마 등에게서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신들은 그에게 칼이나 창을 던지며 노는 것을 그에대한 경의로 여기곤 했다 .
( 혹은 발두르가 어떠한 것에도 해를 입지 않음을 확인하고 이에 기뻐하기 위한 의식이라고도 한다.)

 -내용 출저 엔하위키

글에 나와 있듯이 그는 그를 파괴하는 방법으로 그를 증명한다, 파괴해도 파괴당하지 않으니 그  행위자체가 신성성의 증거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치킨도 유사하지 않은가? 치킨 역시 매일밤 그 자신을 희생하며 (파괴하며) 파괴로 이룩해낸 맛의 영광위에 스스로를 증거한다.

이 흥미로운 유사성 증거 방식은 정말 인상깊다, 치느님과 발두르의 증거방식이 일단은 어느정도 유사성을 띄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여기서 미묘한 차이점이 발생한다.
그것은 우리가 경탄하는 치킨은 하나의 '개념'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양념을 먹든 간장을 먹든 모두 다 치킨이라는 상위구조에 포함되어 있다.
치킨이라는 개념자체는 '맛'이라는 일반적인 특성유지를 위해 치킨의 개별적이며 개성적인 측면을 제거한다. 따라서 치킨은 구체적 어느 치킨이 아니라 치킨 일반으로서 찬미되며 숭배된다. 우리가 저녁 또는 언제나 먹는 치킨은 그 자리에서 먹어져 사라질지라도 이 치킨의 개념은 죽지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여기서 신성성의 근원이자 혹은 그 자체인 '맛'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자.
그 '맛'이라는 것은 사실 객관적인 것이고 신성의 근원이라지만 흔들릴 가능성이 다분할 여지가 있다. (물론 개념이라는 항목에 포함시켜 버리면 되겠지만 신성 그 자체를 따지고보면 개인에 대한 찬미 아닌가.)  이에대한 변론을 위해서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국내외 최고의 호텔 치킨 요리와 시중에 파는 치킨은 맛 그 자체가 다르다. (잊지말자 '개념'이 아닌 것에 대한 변론이다.) 허나 만약 '맛'에대한 지표가 없다면 맛에대한 신성이 생겨날까? 시중의 치킨이나 호텔의 치킨이나 그게 그거일텐데. 결국 '맛'에대한 지표를 찾기위해선 '맛' 자체가 어디서 나온지를 알아야 한다. 역설적이게 지표를 알 수 없다는 말과 동일하게 이 지표는 개인을 따른다.모순이 있는거 같지만  중요한 것은 이 개인이라는 것이다.

발두르는 이런 집단개념이 아니라는 것이 차이가 있다. 발두르는 그냥 발두르다. 어느 유명한 마법사의 말처럼 그도 단수가아니니 여럿에게 개인으로 존재할지 모르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치킨처럼 개인대상대상이 파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가 된다. (개인으로서 파괴된다는 것에 공통점을 둘 수 도있겠지만 관념과 실존의 차이는 여전하다.)

허나 이런 분석들이 발두르와 치느님의 신성에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이다. 어느 한쪽이 서로를 어둡히지도 않고 그저 서로가 각자의
최고자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서로에게 배울 것은 단지 그 대중성과 그 미덕의 양식있음 치킨은 죄가 없다. 다만 일부 치킨집이..이 될것이다. 




뱀발로 우리 차칸 치킨 성도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일부 몰지각한 성도들이 치킨 제일주의로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모두가 다분되고 치킨과 버금가는 우월성을  가진 것을 찾을수 있는만큼 ( 다시한번 윤하) 타인의 취향도 존중해주고 지니친 치키니즘에
심취하진 말자. 트롤?

뱀발의 발로 논지전개가 이상하다 싶으신 분들은 백일장 제목을 생각해보자.
 
-내용 참조 미학오디세이, 엔하위키 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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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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