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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안돼요!”
동순이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내뱉었다. 부러진 목교 앞에서 여름철 태풍을 이겨내지 못한 고목마냥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승호는 채 돌아서지 않고 슬그머니 시선만을 옮겨 동순을 바라보고선 입을 열었다.
“안된다니, 뭐가 안 되는 것이냐? 죽느니 만도 못한 이 목숨을 내다 버리는 것 말이냐, 아니면 이 시간에 이런 데서 해야 할 일들을 저버리고서 멋대로 도망쳐 나온 것 말이냐?”
동순은 퉁명스레 내쏘는 승호에게서 어린 시절 동순에게 깊은 상처로 남은 제 아비의 모습을 보았다. 채 한글도 못 뗀 딸에게 농약을 들이밀던 그 내면의 고통과 절규를 지금 동순은 너무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안돼요, 도련님. 저는 도련님 물음에 답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도련님이 잘못하고 있다고는 생각해요.”
동순은 승호의 말에 필사적으로 답했다. 필시 이 대화가 조금이라도 더 이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직감했으리라.
“그래, 나도 사실 그리 똑똑하지는 않더라. 그래서 내가 잘못했다고는 생각해도 세상이 내게 묻는 질문에는 답할 수가 없더구나.”
승호의 눈은 동순을 보고 있음에도 동순을 넘어 어딘지 모를 머나먼 곳을 향하고 있는 듯 했다. 어쩌면 동순의 아비가 바라보았던 곳과 같은 곳일지도 몰랐다.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해가 저무는 산에서 불빛이 기웃거리는 마을을 향해 떠나는 산새들을 바라보며 승호는 안절부절못하는 동순에게서 시선을 떼어 휘몰아치는 강물을 바라보고선 입을 열었다.
“나는 새가 좋다. 조그마한 세상에 갇혀 아양떨어가며 모이나 받아먹는 인간의 삶을 벗어나 복잡한 것들을 모두 떨쳐내 버리고서 단순히 살기 위해, 날기 위해 나는 그 새들의 비행법이 아름답다 생각했다. 그래서 너무도 부러웠다.”
그리고는 강물을 향해 한숨인지 푸념인지 모를 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아버지가 제 힘으로 지은 목교를 아버지의 힘으로 무너뜨려 버린 것만으로 이리 무기력해 지는데, 저들은 저리 자유로이 넘나드는구나. 나도 다 잊고 새가 되어 저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승호는 비틀비틀 끊겨버린 다리 위를 걷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그의 몸이 정말로 새가 된 듯 가벼워짐을 느꼈다. 속박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통할 곳 없는 외로움도, 실패에서 오는 아픔도, 강압에 굴복해야 했던 슬픔도 모두 그의 몸을 벗어났다. 자유. 경외심이 들 정도의 자유가 그의 몸을 끊어진 다리의 건너편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려워 왔다. 승호라 하는 인간이 인공의 날개를 펼쳐 이상의 세계를 향해 뛰쳐나가는 한 마리의 새가 되어 가고 있었다.
“도련님!”
동순이 급하게 달려와 그의 날개를 꺾기라도 하려는 듯 뒤에서 승호를 부둥켜안았다. 급하게 뛰어오는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동순의 붉은 스카프가 계곡을 향해 떨어져갔다. 꿈을 꾸는 듯 하던 승호는 계곡물을 향해 떨어져가는 붉은 스카프를 보며 동순이 보고 싶어 하던 바닷가의 일몰과 같다고 생각하며 정신이 아찔해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새벽에 감수성이 폭발해서 대충 씁니다. 클라이맥스파트를 사랑하는 사람이다보니 발단 전개 위기 느긋하게 짜다가 갑자기 필이와서 절정및결말만 설사처럼 사정없이 배설해버렸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