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한[4] 대학생을 고문해서 죽이고도 모자라, 진실을 은폐하고 사건을 조작하려고 했다는 사실에 일반인조차 분노에 들끓었고, 따라서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전두환 정권은 노신영 국무총리, 장세동 국가안전기획부장, 정호용 내무부장관[5], 김성기 법무부장관, 서동권 검찰총장, 이영창 치안본부장 등 관계자기관장 전원을 경질하는 개각까지 단행하기에 이르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었다.
이후 6월 항쟁이 발발, 제5공화국은 그 명을 끝마치게 된다.
하지만 당시 경질된 고위인사들은 그뒤에도 잘먹고 잘살고 있다.
김성기 법무장관은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주택은행 이사장으로 출세했다. 사건 은폐축소를 시도했던 정구영 검사장은 노태우 정권에서 검찰총장이 되었고, 이를 진두지휘했던 서동권 검찰총장은 안기부장으로 3년 6개월 간 재직하면서 정권의 2인자 역할을 하였다.
정호용도 13대, 14대 모두 대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돼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이영창 치안본부장도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경북 경산-청도에서 당선되었다.
박처원 치안감은 출소 후에 고문경찰관들의 대부역할을 하면서 이근안의 은신도피를 지원했고, 단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다.결국 박종철군 사건으로 타격을 입은건 말단 경찰관들 몇 명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