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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침묵의 숲
게시물ID : readers_148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위기탈춤No.1
추천 : 6
조회수 : 29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08/14 21:4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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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방송에서 나온 신문 배달하는 할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셨죠.

독서는 정신을 살찌운다.

혼자만 살찌울게 아니라 책게에서 함께 읽은 것을 나누면 곱절이 되어 돌아옵니다.

몸은 살 안찌니까 걱정 ㄴㄴ

책게 많이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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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숲에는 세 가지 규칙이 있었다.

첫째, 리더에게 복종할 것.

둘째, 남의 치부를 리더외의 다른 이에게 드러내지 말 것.

셋째, 절대로 침묵할 것.

내가 침묵의 숲에 들어가 제일 처음에 만났던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기에 어두침침하고 우울한 침묵의 숲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았던 그녀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들을 입 밖으로 내는 일이 없었다. 철저하게 침묵의 숲 규칙을 준수하는 사람이었다.

말이라는 것이 없는 침묵의 숲에서 유일한 의사소통 도구는 글이었다. 숲 게시판은 항상 그녀를 마녀로 모는 사람들의 게시 글이 즐비했고 나 또한 뭔가 음울한 분위기의 침묵의 숲과 화사한 분위기의 그녀 사이의 괴리감으로 인해 그녀가 마녀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절대로 침묵해야 한다는 숲의 규칙을 깨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매월 1일은 이 침묵의 숲 리더인 레트의 연설이 있는 날이었다. 유일하게 침묵의 숲 룰을 깰 수 있는 사람. 숲보다는 바깥세상에서 산 날이 더 많았던 내게 그의 행동은 충분히 독재자스럽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그런가 보다 하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 레트의 연설은 간단했다. 그동안 숲 사람들이 모아놓은 돈을 좀 더 많은 바깥사람의 유입의 용이함을 위해 쓰겠다는 것. 모두가 동의하는 듯 했다. 그저 숲 광장엔 사각사각 거리는 연필 굴리는 소리만 들릴 뿐 어느 누구도 더 이상 레트를 바라보지 않았다. 레트는 만족한 듯 광장을 인자한 미소로 내려다보고 곧 자신의 참모진들과 함께 돌아갔다.

그날이었나 보다. 그녀가 사실은 마녀가 아니라 성녀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

레트의 연설이 끝나고 모두가 돌아간 그 광장에서 그녀는 울고 있었다. 답답한 듯이 가슴을 쥐어뜯고 있던 그녀의 손이 바닥을 긁었고 곧 손톱이 빠져 피가 철철 나고 있었다. 서둘러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다가가 수첩에 괜찮으냐 적으려고 했다.

“너도 병신이니? 입이 달렸는데 왜 말을 못해!”

너무 오랜만에 듣는 일반인의 음성이라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 뒤로 그녀와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우리 둘만이 아는 장소에서 우리 둘만이 이야기했고 함께 밥을 먹었다. 리베르타(Libertar)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침묵의 숲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이곳에 거주하던 원주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녀가 알고 있는 그 지식의 방대함이란...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그녀에게서 지식을 배웠다. 탄산음료처럼 시원하고 달았다. 꼭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 그녀의 것이 되어가는 것 같아 기뻤다. 온전히 그녀가 나를 가져주기를 원했다. 남녀 간의 끈적끈적한 에로스적 사랑이 아니라 아가페적 사랑. 하지만 그녀는 온전히 나를 가져주지 않았다.

“나는 널 사랑할 준비가 됐지만 넌 아직이야. 멀었어.”

[어째서요?]

멀뚱히 내가 적은 수첩을 본 그녀는 아직도 모르겠냐는 식으로 내 이마를 검지로 슥- 밀었다.

[난 선생님을 사랑할 자신 있어요. 내가 지켜줄 수 있다고요. 왜 저를 못 믿으세요.]

“왜 입을 열지 않니? 나를 사랑한다면 입을 열어야해.”

그녀의 말을 듣고도 난 섣불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이미 요주의 인물인 그녀가 침묵의 숲 룰을 깨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겠지만 온지 막 반년이 된 나는 계속 숲에 정착해서 살려면 숲 감시자들의 눈에 띄면 곤란했다. 그녀와 함께 있으려면 입을 열어선 안됐다. 함께 있고 싶어 그러는 것을 몰라주는 그녀가 미웠다.

내가 계속 입을 열지 않자 그녀는 서서히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늘 있던 약속의 장소엔 잘 나타나지 않았고 무엇을 하는지 광장의 숲 게시판에 열심히 무언가를 적어놓았다. 아무리 그녀라도 대놓고 침묵을 깨는 룰을 만민 앞에서 할 수가 없으니 사람이 없는 이른 새벽시간이나 아주 늦은 밤에 도둑처럼 몰래 글을 게시해놓고 사라졌다.

얼마 뒤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레트가 숲 사람들을 모두 소집했다. 광장은 여전히 사각사각 거리는 연필 소리만 가득했고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에- 요새 굉장히 안 좋은 소문이 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괜한 선동에 이끌려 다니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혹여 여러분들의 눈을 감기고 귀를 막고 머리를 덮는 선동꾼이 누군지 알고 있다면 바로 이 리더에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의 자유를 빼앗았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항상 입을 단속하여 나쁠 것이 없습니다. 침묵의 숲에서 침묵은 전통입니다. 이 전통이 무너지면 곧 이 숲 공동체도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잘 유념하시고 부디 이 숲 공동체를 위한 일꾼이 되어 주십시오.”

그로부터 얼마 뒤 레트는 임기를 다 채우고 물러나게 되었다. 숲 공동체는 투표를 통해 다음 리더를 정했는데 애석하게도 레트의 라이벌이었던 레그혼이 리더에 당선되었다. 레트에 비해 모든 것이 밀렸던 레그혼이었지만 이 숲 공동체에도 인물이 없긴 없었는지 가장 낫다며 찍어준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레트가 은근슬쩍 밀어줬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소문이었을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정말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그럼 뭐죠? 세상은 너무나 조용해요. 마치 아는 사람들만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는 세상 같아요.]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리베르타에게 이 의문에 대해 이야기 했더니 그녀는 슬픈 눈을 한 채 답답하다는 듯 되물어왔다.

“내가 늘 말했잖니. 넓게, 높게 봐야한다고. 아무도 얘기하지 않으니까 모르는거야. 평생 그렇게 입닫고 있을 거라면 이젠 나를 아는 척하지 말아다오.”

얼마 뒤 레그혼은 강력한 정치를 펼쳤다. 숲 감시자들을 늘리고 선동꾼이라 일컬어지는 자들을 잡아들였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선동꾼이라 불리는 자들이 숲에서 추방되는 수가 많을수록 리베르타의 모습도 서서히 야위어갔다. 화사했던 모습도 이젠 초라해질 정도로 차마 눈뜨고 못 볼 정도로 그녀의 모습은 추해져가기 시작했다.

“숲을 떠날거다.”

[가지마세요, 선생님. 저는 아직 당신께 배울 것이 많아요.]

“난 더 이상 너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 다만 네가 나를 사랑할 자격이 되는지는 네 행동을 보고 판단할게.”

돌연 숲을 떠나겠다고 내게 선언한 그녀는 더 이상 나를 향해 웃어주지 않았다.

“레그혼은 정당한 방법으로 리더가 된 것이 아니야. 그건 의문이 아니라 사실이야.”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숲에서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숲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과거 레트가 숲 공동체 예산으로 만들었던 바깥세상 사람의 유입을 위한 통로가 부실공사로 인해 무너져 내렸고 광장으로 나가면 서서히 입을 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물론 감시자와 새 리더인 레그혼이 없을 경우였지만.

그녀는 그냥 떠난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해야 할 행동 또한 명백해졌다.

다신 그녀가 무시하는 병신이 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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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세월호를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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