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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마수걸이 자유
게시물ID : readers_149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틀스
추천 : 1
조회수 : 26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8/16 02: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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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생 도착!
 
*
 
책은 빛이 넓히지 못하는 시야를 보게끔하는 도구이다.
 
*
 
 
  왜 이러시는 건데요...”
  손발이 의자에 꽁꽁 묶인 채, 차가운 쇠사슬에 몸부림치며 울고 있는 한 소녀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 그에게 물었다. 그는 소녀의 떨리는 목소리를 비웃는다는 듯 소녀의 얼굴 앞 가까이 다가가 비열하게 웃음 짓고는 악취 나는 향을 내뿜으며 입을 열었다.
  “다물어.”
그는 소녀를 향해 외마디를 하고는 소녀 맞은편에 앉아서 묵묵히 일그러지는 소녀의 표정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소녀는 물덩이를 삼키고 고개를 도리돌 저으며 말했다.
  이건 아니에요. 당신도 이런 걸 원하는 게 아니잖...”
소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녀의 입 안으로 구겨질 대로 구겨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종이가 들어왔다. 그가 발광하며 웃었다.
  내가 원하는 건 이거야.”
소녀의 몸을 휘감고 있는 쇠사슬에 흩뿌려져있는 눈물조각들을 만지작거리며 그가 웃었다.
  이미 선을 넘었다고. 되돌아갈 수 없어.”
소녀가 구겨진 종이덩어리를 뱉으며 말했다.
  전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그는 소녀에게서 떨어진 종이를 주우며 되받았다.
  “맞아, 넌 사라지지 않아. 내가 이 종이쪼가리처럼 될 뿐.”
  아니요!”
흔들리는 쇠사슬 소리와 함께 고동치는 외침에 순간 그의 몸짓이 멈추었다.
  왜 자꾸 당신과 떨어져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당신 눈앞에서 사라진다면 저는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게 되는 건가요? 당신과 손잡지 못하게 되는 것이 제가 당신을 버린 것이 되나요? 당신의 반사된 눈빛에, 떨고 있는 추호 하나하나에, 뜨거운 것에 펌프질하는 가슴에, 머릿속 가만히 있어도 재생되는, 잊을 수 없게 각인되어있는 기억의 파편들이 제가 전부 여기 있다고 하는데. 제가 남아 있다는 걸 어떻게 모르실 수 있는 거죠?”
그의 눈빛이 침묵했다.
  “저를 안식처로 삼지마세요. 제가 보이는 것도, 볼 수 있는 것도 결국 다 당신 때문 아니었나요?”
눈물 어린 얼굴과 애수 서린 얼굴이 서로 마주했다.
  가지 마.”
  잊지 않기를. 선택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 아님을.”
  “가지 말아줘.”
그가 발걸음을 떼며 소녀에게 손을 뻗었다.
  투쟁하세요.”
그 외침을 마지막으로, 소녀는 사라져버렸다.
  들리지 않는 격발음. 의자를 향해 떨어지는 마찰음. 녹 낀 쇠사슬에 두고 간 체취.
  말라버린 투명 액체에게 드디어 갈증을 달래 줄 시간이 접근한다.
서서히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오는 고요는 천천히 장식을 개시한다.
그는 그렇게 찬찬히 부서져 내렸다.
 
 
*
 
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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