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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이 많은 한 성우의 생각 .TXT
게시물ID : humorbest_8633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날아가도
추천 : 105
조회수 : 5793회
댓글수 : 2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4/04/09 20:36:57
원본글 작성시간 : 2014/04/09 19: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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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blog.naver.com/uomo99/40208575811
 
꼭 한 번 많은 분들께서 읽어보셨으면 하는 자형 선배님의 깊은 생각이 담긴 글입니다!
(꼭 먼저 선배님의 글을 읽어주세요!)

그리고 이 글을 읽고 나서 저도 늘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오늘은 한 번 꺼내볼까 합니다.
다소 긴 글이 될 수 있으니 여유 있을 때 찬찬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우가 자신의 연기를 항상 되돌아보고 끊임없이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당연한 일을 어느 정도 짬밥을 먹었다고 생각하면 그렇지 않게 생각하고,
그저 기계처럼 연기하기에 바쁜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이고,
그렇기에 자형 선배님 같은 분들이 계시다는 게 참 감사하고 존경스럽습니다.
지금도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 저를 비롯해 정말 많은 성우들이 항상 연기에 대한 목마름과,
오늘보다 내일 더 발전하고픈 열정으로 다양한 곳에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학예회가 아닌 살아있는 연기를 하고, 그 결과물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때론 무대위에서,
각자의 일을 마친 후 좋은 선생님을 모시고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접근 방법의 연기를 배우기도 하면서,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기능인이 아닌, 살아있는 연기를 전달하는 진정한 목소리 연기자가 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성우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론 가장 기본인 "시사"와 "리딩"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심지어 녹음실에 와서 대본에 줄긋는 성우가 드물지만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건,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도 자신의 연기에 대해 냉정히 평가내리고,
발전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우들이 정말 많기 때문입니다.

선배님 말씀대로 요즘 후배들은 정말 가혹할 정도로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시기에
 "프로페셔널리즘"을 강요 받습니다.

다소 다른 성우들에 비해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일의 물량 자체가 넘쳐나 함께 일을 하고
여러번의 기회를 다시 받던 그런 시대는 이미 끝난지 오래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기회도 쉽게 오지 않지만 그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두 번, 세 번의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저희 때도 선배님들이 "너희들 참 힘들 때 들어왔다!" 하셨었지만... 지금과는 비할 비가 못 됐었습니다.

그래도 저희 전속 때만해도 참 바쁘게 외화, 외화시리즈, 애니메이션, 다큐 등에 불려다닐 수 있을만큼 일감이 있었으니까요.

또 한가지 선배님 말씀에 깊이 공감하는 건,
 조금이라도 후배들에게 더 기회가 돌아가게 하기 위해 선배들이 자신들의 몸값에 합당한 페이를 스스로 책정하고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정해진 방송 사례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건 다시 협회 차원에서 새로운 안을 공감대안에서 짜내고,
각 방송사와 협상을 해야하는 부분이고 그걸 개인이 좌지우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 페이가 맘에 안들면 선배님처럼 녹음을 고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외의 부분입니다. 정확하게 성우료가 명시돼 있지 않은, 암묵적인 동의로 형성된 가격만 있는 외부 시장들.
거기엔 <게임, 외주 프로덕션에서 제작하고 녹음하는 모든 프로그램들, 광고, 극장판 더빙료 등>
애니메이션, 방송사 외화, 외화 시리즈, 라디오 출연료를 제외한 방대하게 많은 부분이 포함돼 있습니다.

어느 정도 경력과 그에 준하는 실력을 갖추게 된 성우는 그에 합당한 사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만큼의 가격을 지불하고라도 퀄리티를 높이고 싶은 클라이언트는 그를 캐스팅 할 것이고,
가격 대 성능비를 높여 신선한 목소리를 발굴해내고 싶은 클라이언트는 신인들을 등용할 기회를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저도 기회가 부족한 우리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기회가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몇 년전부터 페이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맞추기 힘드시다 하시는 분들껜 죄송하지만 녹음을 고사했습니다.
제 일이 좀 줄더라도 그래서 후배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돌아간다면
 그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고, 앞으로 성우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훌륭한 성우들이 끊임없이 계속 더 나와줘야 하니까요.

그런데... 멘붕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성우료 물어보실 때마다 페이를 왜 그렇게 많이 받으시냐고(결코 그렇게 터무니없이 많이 받지도 않습니다) 하는
 클라이언트들 중에 정말 많은 분들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더 선배님이신 ㅇㅇㅇ, ㅁㅁㅁ, xxx님들도 다 이 가격에 다 하시는데 맞춰주시죠?" 라구요.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가치관은 누구나 다 다른 법이니까요.
더 충격을 받았던 건, 제가 고사함으로서 후배들에게 기회가 돌아가리라 믿었던 일들이, 후
배가 아닌 이미 일을 충분히 하고 있는 다른 비슷한 연차의 성우나 선배님에게 돌아갔다는 걸 알게 됐을 때입니다.
오히려 일이 많지 않은 선배님들께 돌아갔다면 그건 보람있는 일이었겠죠.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는 건 자형 선배님 말씀대로 모두가 뜻을 함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겐 "우리"보다 "나"가 더 중요한 거죠. 아무리 단가를 정하고 약속해도 뒤에서 몰래 그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일을 하면....?
누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심지어 정확한 단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일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겠죠.
애니메이션 기본 출연료가 오히려 10여년전보다 1/3 가까이 떨어진 건 외부적인 요인보다 바로 그런 성우 내부적인 요인이 더 큽니다.
제 살 깎아먹은거죠. 우리 스스로.
물가상승률까지 고려한다면? 도대체 몇 배나 우리 일의 가치가 떨어진걸까요? 상상하기도, 계산하기도 싫습니다.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도 문제가 심각합니다. 원래 창작 애니메이션은 수입 애니메이션의 3배 사례를 받습니다.
 그만큼 제작진도, 성우들도, 감독님들도 고생을 많이하고 시간적으로도 오랜 작업시간을 요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출연료가 무너진 게 이미 오래전입니다. 물론 개중엔 정확한 사례를 지급하는 제작사들도 있습니다.
대부분 그 퀄리티나 작품에 대한 장인정신 또한 엄청납니다.

하지만 국산 애니메이션을 살리자는 취지로 마련된 방송 쿼터제가 오히려 질낮은 애니메이션들이 창궐하게 만든 종범이 됐습니다.
방송사는 쿼터제 채우기에 급급해서 퀄리티는 전혀 상관없이 무조건 낮은 가격으로 입찰하는 제작사 만화를 구입하여 쿼터를 채우게 되었고,
그에 발맞춰 정말 낮은 퀄리티로 제작된, 엔딩크레딧에 이름 올라가는 것조차 창피한 수준의 애니메이션이 주구장창 양산되었습니다.

편당 제작료 자체가 터무니없이 낮다보니 당연히 성우료도 덩달아 말도 안되는 수준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죠.

가끔 아예 녹음팀을 짜달라며 저에게 연락이 왔을 땐 그래도 최소한 용납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맞춰주면 후배들이 애니메이션을 경험하고
 목소리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해 볼 마음이 없지도 않았지만,
 프로 성우들에게 요구해선 안되는 수준의 성우료를 요구해 다 거절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제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해서는 안되는 그 가격에 그 일을 맡아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들이 수도 없이 반복되자 제가 해왔던 희생에 대한 회의가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광고를 하는 것도 아니고, 예능 멘트를 많이하는 것도 아니며, 자형 선배님처럼 나레이션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기에 그나마 유일하게 하고 있는 일과 마찬가지인 애니메이션까지 섭외를 거절할 수도 없습니다. 두 아들을 키우는 아빠로서, 양가에 미력하나마 계속 도움을 드려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릴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고사하면 다시 연락오기 힘든 많은 일들을 포기했었던 것에 대한 후회가 든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가장 노출이 많이 되는 일이, 연기로 여러분들 찾아뵙는 "작품들"이기에 이름은 있지만, 사실 수입은 광고 스타나, 나레이션 스타 성우들에 비하면...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너무도 상대적으로 열악하기도 합니다. (이런 말씀 드리면 걱정하시는 분들 계실텐데 그래도 저 못 벌진 않아요. 열심히 하는만큼 오히려 여러분 생각보다 많이 벌거에요. ^^)

애니메이션 한 작품하면 오전 시간, 혹은 오후 시간을 통으로 한꺼번에 3~4편을, 목을 혹사시킬대로 혹사시켜야, 보통 30분도 안 걸리는 간단한 나레이션, 멘트 녹음, 광고 기본 단가 수준의 사례를 받습니다.

시간을 워낙 오래 차지하다보니 여유 시간을 비워두기 어려워 다른 녹음 섭외를 받아도 못 하기 일쑤고, 두어번 반복되면 그곳의 연락은 끊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 프로그램 하나만으로도 대기업 연봉 수준의 큰 수입을 약속해주는 데일리 고정 나레이션 프로그램 등을 망설임없이 고사할 수 있었던 건, 제가 연기하는 걸 너무나 사랑한다는 그 한가지 이유, 그리고 감사하게도 늘 그런 제 선택을 존중해주는 배우자가 곁에 있어줬기 때문입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저는 성우라서 참 행복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꿔왔던 꿈을 이루고, 하늘같이 존경해오던 선배님들과 같은 작품안에서 함께 호흡하며 연기하고, 단 하루도 지겨워 본 적이 없는 행복한 일을 하는데... 수고했다고 보상까지 줍니다. 그리고 너무도 감사하게... 정말 많은 분들의 큰 사랑을 받고, 제 연기로 힘들고 괴로운 시기에 힐링을 받았다는 놀라운 이야기들까지 선물받고 있습니다.

모든 성우들의 일이 너무나도 많이 줄어든,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요즘! 그래도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고, 살아있는 진짜배기 연기를 쏟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눈 앞의 이익보다는 다가올 미래의 성우계 발전을 생각할 줄 아는 선후배, 동료들이 있어서 분명 새로운 황금기는 다시 돌아오리라 믿습니다.

갈 길은 멀고 해 나가야 할 일, 깨뜨려야 할 편견... 넘어야 할 벽은 끝도 보이지 않을만큼 높지만 포기하지 않고
 부딪혀 나가면 그 날은 분명히 올거에요. 더 크고 위대한 변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피 위에서 이루어진 혁명들도 처음엔 사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구자형 선배님이 준비하고 계시는 "오디오북"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그쪽에 팀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제가 참 좋아하는 '연기'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아름다운 누나를 통해
 이야기 많이 들었었거든요
. 구자형 선배님 말씀처럼 정말 처절하리만치 무너지고 부숴지고 있다고...
그런데 정말 쪽팔리고 창피하지만 너무 행복하고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그 천재 연출자님
! 저도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만나뵙고 신나게 깨져서 재조립 당해보고 싶습니다! ^^

늘 대한민국 성우들 응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성우를 사랑하는 팬이라고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출처 정재헌성우님 블로그 http://m.blog.naver.com/jaehe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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