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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을 주었다 #8
게시물ID : panic_863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돌아저씨
추천 : 3
조회수 : 152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2/19 02: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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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한가로이 로비에 앉아 쓰디 쓴 커피를 들이켰다. 초조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조그마한 각성제라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바삐 오가는 회사 사람들을 주시하다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오후에는 늘 그렇 듯 영업을 위해 사무실에 들어가야만 했지만 오늘은 계획을 틀어야 했다. 검은 그림자들. VIP 고객이 곧 방문할 예정이었다.


 "거기서 계속 그러고 있을거야?"


 마침 지나가던 강 사원이 내게 말을 걸었다.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 얼굴을 보니 내 걱정을 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응. 일단은."

 "하... 걔네들 오면 뭐 어떻게 할려고 그러는거야?"

 "나도 잘은 모르겠어."

 
 사실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아니, 계획할 껀덕지가 없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막상 그들을 만난다고 해서 그들에게 직접 추궁할 수는 없었다. 출신지가 '지옥' 이 아닌 '천국' 이라는 사실을 내 입으로 꺼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욱이, 그런 정보 하나만을 가지고 구원에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의구심을 어떻게 풀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맞지 않는 퍼즐조각이라도 들고서 짜맞추기 위해 무언가 행동해야 했다.
영업을 하면서 느꼈던 그 불합리하고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순간들에 대한 답안이 내게는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 알았다."

 
 강 사원이 말을 끝내고서는 복도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천천히 지켜보고 나니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그들의 방문일정에 맞춰 기다리고 있자니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걸까.


 다시 커피를 들이켰다.


.
.
.



 "네네. 이쪽으로 오시죠."


 부장님의 말소리가 또렷하게 로비 한 쪽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황급히 테이블 뒤로 숨어 소리가 나온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 그렇듯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부장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검은 그림자들이 부장님의 손길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부장님과 검은 그림자들이 로비 한쪽으로 사라지자, 서둘러 테이블에서 나와 그들을 쫓았다. 행여나 들킬세라 발걸음을 조심히 옮겼다. 형체도 얼굴도 없는 그들을 따라가자니 왠지 모를 두려움이 살짝 적셔왔다. 앞을 보고 걸으면서도 뒤통수에 숨겨 놓은 눈이 뒤따라오는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다행히도 그들이 소회의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들키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벽 모서리에서 나와 소회의실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에 얼굴을 대고 귀를 기울였다. 왠지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허허. 아닙니다. 얼른 시작하시죠.

 -오늘도 바쁘겠어요.


 소회의실 내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잡담을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복도에서 누가 걸어오고 있지 않을까 고개를 돌려 양옆을 확인하면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번 달 매출이 꽤 좋네요. 계속 상승세인 점이 마음에 들어요.

 -아, 예. 감사합니다. 회사 전직원 모두 열심히 업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힘써주시니 저희도 저쪽 세상보다는 이쪽에 더 신경쓸게 많아요.

 -과찬이십니다.


 또 다시 '저쪽 세상' 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일단 인구현황좀 볼까요.

 -네. 그럼 이쪽을.


 이후로 부장님이 소회의실 안 쪽 단상으로 가셨는지 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조급해진 마음을 차분히 누르면서 더욱 더 귀에 집중했다. 


 -흥미롭군요. 그렇죠?

 -마음에 듭니다. 이 정도 추세라면 걱정 없어도 되겠어요.

 -악마분들이 좋아하시겠어요. 호호.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실 악마분들이 인력이 없다고 하도 난리를 치니.

 -뭐 저희 입장에서도 좋은 거래긴 하죠. 잉여인력을 가지고 있어봤자 득이 되는 건 없으니.

 -생각한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부장님의 이야기가 끝난 것 같았다.


 -그나저나 또 보고싶은데...

 -그렇죠? 저도 막 갈증이 날 참이었어요.

 -부장님. 이번에도 준비 좀 부탁드릴게요.

 -준비라면... 어떤...?

 -요번에 있었던 일이었죠?

 -아, 맞아요. 그럴거에요. 8일 전이에요.

 -8일전이라면... 어떤 분들...?

 -그, 여자와 어린 아이였었는데...


 검은그림자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조용히 그들의 대화가 다시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동안의 시간이 지나고 부장님의 말 소리가 들렸다.


 -아, 예. 찾았습니다. 교통사고. 맞습니까?

 -예, 예. 맞아요! 그거에요.

 -빨리 준비해 주시겠어요?

 -네,네. 알겠습니다.

 -주스 있어요? 이왕이면 오렌지 주스가 좋겠는데.

 -저는 시원한 물로 좀 부탁드릴게요.


 한동안 어수선한 소리가 들리더니 곧 조용해졌다. 나는 천천히 문에서 몸을 뗐다. 이대로 업무 이야기는 끝난 것 같았다.
 뭔가 중요한 이야기가 오고갈 줄 알았지만 얻은 게 없었다. 그나마 '저쪽 세상' 이라는 말을 비추어볼 때 분명 '지옥' 이 아닌 '천국' 이라는 세상이 존재함은 분명했다.
 왠지 모를 아쉬움이 살짝 묻어나왔다. 호기심을 채워줄만한 무언가를 얻어내지 못함에서 온 비참함이었다. 아무 계획 없이 이 곳에 온 내가 너무도 생각이 짧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서히 소회의실에서 몸을 돌려 가려는 찰나에 안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그래요. 이거라니까.

 -정말 언제봐도 대단한 영상이에요.


  검은그림자들의 웅성거림에 나는 다시 몸을 기울였다. 큰 폭발음과 함께 귀를 찢을 정도의 괴음이 계속해서 새어나왔다. 그리고 어떤 여자의 신음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져나왔다.

 낯익은 신음소리였다. 기억 너머 어딘가에 들어봤던 목소리였다. 묘한 기분이 들자 두근거림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다시 돌려주시겠어요?

 -네,네.


 잠시간의 정적이 지나고 차가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큰 폭발음과 함께 여자의 신음소리가 문 너머로 흘러나왔다.


 -정말, 정말. 못 참겠어요!

 -하하하.


 신음소리와 웃음소리가 오묘하게 섞여 내 귀를 괴롭혔다. 왠지 모를 분노심이 솟구쳤다. 알 수 없는 두근거림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숨소리도 차차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얼얼한 느낌이었다.


 이윽고 여자의 신음소리가 ,몇 일 전 구원의 기회를 위해 아이를 안고 화물차에 몇 번이고 치였던 여자임을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분노 섞인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회의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쾅!!!


 일제히 모두가 내게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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