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콸콸- 쏟아져 나오는 물을 손으로 한움큼 집어
얼굴에 세차게 들이부었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봤다.
분명히 있다.
누구인지 모를 한 사람의 뒷모습이….
[내용상 잔인하고 끔찍한 표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심약하신 분은 읽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수년 전, 내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야 했던 살인사건 이 후였다.
평소와 다를 것 없던 주말 저녁. 저녁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던 집에 괴한이 쳐들어 왔다.
초대되지 않은 손님에 의해 집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한 시간이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나는 부모님과 누나 세 명의 가족을 모두 잃어버렸다.
문을 열어준 누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쓰러졌고 거실에서 티비를 보던 아버지 역시 등 뒤에서 들어오는
날카롭고 흉악한 칼날을 피할 기회조차 받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주방에 계시던 어머니는 살인자에게 격렬히 대항하셨고, 시끄러운 소리에 내가 방에서 나왔을 땐
살인마는 이미 힘 없이 추욱 쳐진 어머니의 시체에 욕설을 퍼부으며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감지 못한 어머니의 한 쪽 눈에선 하염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단정하던 어머니의 단발머리는 가위와 칼로 끔찍하게 잘려있었다.
겁에 질려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경찰이 오기만을 기도하며 방 안에서 범인과 대치하던 나는
이윽고 시끄러운 소리를 수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한 이웃에 의해
목숨만은 구해졌다.
세 가족의 장례식을 지내고 정신 없는 몇 달을 보내고 나니 통장에는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할 만큼의 큰 돈이 들어와있었다.
가족의 목숨과 맞바꾼,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았던 돈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 뒷모습을 봤을 땐, 심약해진 마음 탓이라 생각하며 존재를 부정하려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뒷모습은 점점 더 확실하고, 또렷하게 나에게 존재를 드러냈다.
공황장애와 사회 공포증으로 집안에만 쳐 박혀 있던 시절엔 정체를 알 수 없는 뒷모습과 단 둘이 한 집에 있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서 사고 이후로 꼭 필요한 일이 있는게 아니면 나가본 적 없는 집을 스스로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과 관계 없이 뒷모습은 어디서든 나타났고, 얼마 동안 이런 생활을 반복하고
결국 난 나에게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뒷모습으로 우두커니 서있는 그것을 그냥 인정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가끔 뒷모습이
무언가를 향해 미친 듯이 몸을 흔들며 기괴한 몸짓으로 팔다리를 휘저을 때 면
그 날 저녁 뉴스의 헤드라인에서는 어김없이 아무 이유 없이 끔찍하게 살인 당한 사람의 뉴스를 볼 수 있었다.
처음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으나,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있은 후 나는 깨달았다.
뒷모습은 사람을 죽이고 있는거야.
뒷모습이 사람들을 죽인 범인이라는것을 확신했을 때, 언젠가 이 녀석이 자신이 끔찍하게 처리해버린 사람들처럼
나 역시도 죽여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아무리 뒷모습에게 저주를 퍼붓고 소리를 질러도
뒷모습은 그냥 망부석처럼 서있기만 할 뿐 이였고, 결국 먼저 나가떨어져버리고 만건 내 쪽이였다.
뒷모습을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가끔 뒷모습이 사람을 죽이기 전에 보이는 행동을 할 때면
속으로 조용히 뒷모습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할 사람을 위해 마음 속으로 명복을 빌어줄 뿐이였다.
그렇게 나는 아주 느리지만 확실하게 사고 이전의 내 삶을 찾아가고 있었고,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뒷모습은 먼 발치서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였다.
그러던 중 그녀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