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공주
정의
한국의 망자천도굿인 서울 지역 진오기굿의 말미거리, 호남 지역 씻김굿의 오구풀이거리,
동해안 지역 오구굿 발원굿에서 구연되는 장편서사무가.
지역에 따라 바리데기, 비리데기라고도 부른다.
원래는 서사무가의 주인공 이름이지만 최근에는 일반적으로 서사무가 각 편의 대표적인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용
바리공주는 서울 지역에서 부르는 명칭으로, 호남이나 동해안 지역에서는 바리데기라 부른다.
망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천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높이 받드는 의미에서 바리공주라 부르는 것이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90여 편의 각 편이 채록ㆍ보고되어 있어 전승 양상을 알 수 있다.
지역에 따라 편별로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인 서사 단락은 동일하다.
#본편[주석으로 다른 버전의 글을 보충해서 넣습니다. 남장버전,여장버전, 석가가 카메오로 등장하는 불교버전 등등 판본이 워낙 다양함]
오구신 바리데기
서정오
옛날 옛적 인간 땅 삼나라에 오구대왕이라는 임금이 살았는데, 나이가 찼는데도 장가를 가지 않고 혼자 살았어.
신하들과 백성들이 보기에 안 되어서 어서 빨리 왕비를 맞아들이라고 권했지.
오구대왕이 처음에는 사양하다가 많은 사람이 자꾸 권하니까 그 말을 옳게 여겨 왕비를 맞아들이기로 했어.
나라 안 여러 처녀 중에서 왕비감을 고르는데, 길대라는 처녀가 슬기롭고 아름다워서 오구대왕 마음에 쏙 들었어.
왕비를 길대아기씨로 정하고 날을 받아 혼례 준비를 하는데, 이 때 하늘 세상 천하궁에 사는 가리박사라고 하는 점쟁이가
삼나라에 들렀어.
대왕궁에 와서 혼례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대왕님, 대왕님 지금 길대아기씨와 혼례를 올리시면 딸 일곱을 낳으실 것이요,
기다렸다가 내년에 혼례를 올리시면 아들 일곱을 낳으실 것입니다.”
하거든. 오구대왕이 그 말을 듣고 그냥 웃어 넘겼어.
“딸 일곱이 아니라 일흔일곱을 낳는다 해도 내년까지 못 기다리겠다. 어서 혼례 준비를 하여라.”
그래서 칠월 칠석으로 날을 받아 혼례식을 올렸지. 길대아기씨는 길대부인이 됐어.
오구대왕과 길대부인은 부부가 되어 금실 좋게 잘 살았어.
그 해 겨울이 가고 봄이 되니까 길대부인 배가 점점 불러오더니 달이 차서 첫아기를 낳았어. 낳고 보니 딸이야.
“첫 딸은 복덩이 딸이니라. 본 이름은 청대공주요 본 별명은 해님데기라 하여라.”
오구대왕이 기뻐하면서 아기 이름을 지어주고, 앞산에 별궁을 짓고 유모와 궁녀를 딸려 잘 키웠어.
그 이듬해가 되니까 또 길대부인 배가 달덩이처럼 불러오더니 달이 차서 둘째 아기를 낳았어. 낳고 보니 또 딸이야.
“둘째 딸은 살림 불릴 딸이니라. 본 이름은 홍대공주요 별명을 달님데기라 하여라.”
오구대왕이 기뻐하면서 아기 이름을 지어 주고, 뒷산에 별궁을 짓고 유모와 궁녀를 딸려 잘 키웠어.
그 이듬해가 되니까 또 길대부인 배가 항아리처럼 불러오더니 달이 차서 셋째 아기를 낳았어. 낳고 보니 또 딸이야.
“셋째 딸은 노리개 딸이니라. 본 이름은 녹대공주요 별명을 별님데기라 하여라.”
오구대왕이 기뻐하면서 아기 이름을 지어 주고, 동산에 별궁을 짓고 유모와 궁녀를 딸려 잘 키웠어.
그 이듬해가 되니까 또 길대부인 배가 박덩이처럼 불러오더니 달이 차서 넷째 아기를 낳았어. 낳고 보니 또 딸이야.
“넷째 딸은 재롱둥이 딸이니라. 본 이름은 황대공주요 별명은 물님데기라 하여라.”
오구대왕이 기뻐하면서 아기 이름을 지어 주고, 서산에 별궁을 짓고 유모와 궁녀를 딸려 잘 키웠어.
그 이듬해가 되니까 또 길대부인 배가 장독처럼 불러오더니 달이 차서 다섯째 아기를 낳았어.
이번에는 아들 보기를 은근히 기다렸는데 낳고 보니 또 딸일세.
“다섯째 딸은 덤으로 얻은 셈 치자꾸나, 본 이름은 흑대공주요 별명은 불님데기라 하여라.”
오구대왕이 조금 섭섭해하면서 아기 이름을 지어 주고, 남산에 별궁을 짓고 유모와 궁녀를 딸려 잘 키웠어.
그 이듬해가 되니까 또 길대부인 배가 남산만하게 불러오더니 달이 차서 여섯째 아기를 낳았어. 낳고 보니 또 딸일세.
“어허, 이것 낭패로다. 아기라고 하는 것은 아들 낳으면 딸도 낳고 딸 낳으면 아들도 낳는 줄 알았더니,
우리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딸만 내리 여섯을 낳는단 말인가. 여섯째 딸은 과연 섭섭이 딸이로구나.
본 이름은 백대공주요 별명은 흙님데기라 하여라.”
오구대왕이 몹시 섭섭해하면서 아기 이름을 지어 주고, 북산에 별궁을 짓고 유모와 궁녀를 딸려 잘 키웠어.
그 이듬해가 되자마자 오구대왕이 올해에는 꼭 아들을 보리라 하고, 길대 부인과 더불어 동개남상주절, 서개남금수절,
영험 있다는 삼신당을 찾아다니며 공을 들였어.
금돈 삼백 냥과 은돈 삼백 냥에 이슬 맞힌 쌀 석 섬 서 말을 바치고 밤낮으로 공을 들였더니 하루는 길대부인이 잠깐
조는 사이에 꿈을 꿨어. 무슨 꿈을 꾸었는고 하니 하늘에서 청룡, 황룡이 날아와 품에 안기고 양 무릎에 흰 거북과 검은 거북이
앉고 양어깨에 해와 달이 돋아나는 꿈을 꿨어.
오구대왕에게도 그 말을 했더니 대왕도 똑같은 꿈을 꿨다면서 틀림없이 아들을 낳는 꿈이라고 좋아하거든.
아니나 다를까, 그러고 나서 얼마 안 되어 길대부인 배가 점점 불러오는구나.
부인이 온갖 정성을 다해서 아기를 낳을 채비를 했지.
아들을 낳으면 덮어 주려고 비단 공단에 금실, 은실로 수를 놓아 포대기를 만들고 아들 낳으면 입히려고 비단 공단에 금실,
은실로 수를 놓아 바지저고리도 만들었어. 이것을 옥함에 고이고이 넣어놓고, 들며 보고 나며 보고 볼에 대 보고 쓰다듬어
어루만지며 온갖 사랑을 다 쏟았어. 이윽고 달이 차서 일곱째 아기를 낳았는데, 어허, 이런 변이 있나.
낳고 보니 또 딸이로구나.
“에잇, 이제 딸이라는 말 듣기도 싫고 딸아이 얼굴도 보기 싫다. 당장 갖다 버려라.”
오구대왕이 역정을 내어 벼락같이 호령을 하네. 어느 영이라 거역할까. 하릴없이 아기를 갖다 버리는데,
마구간에 버리니 말이 쫒아 나오고, 외양간에 버리니 소가 쫓아 나오네. 오구대왕이 또 벼락같이 호령을 하기를,
“그런 데 버릴 것이 아니라, 멀리 가서 아주 돌아오지 못하도록 옥함에 깊이 넣어 강물에 띄워 보내라.”
하기에, 하릴없이 옥함에 아기를 넣었어. 본디 아들 낳으면 덮어주고 입혀 주려고 비단 공단 포대기와 바지저고리를 만들어
넣어 뒀던 그 옥함에다 아기를 넣었지. 이 때 길대부인이 울면서 오구대왕에게 간청했어.
“여보시오, 대왕님. 버릴 때 버리더라도 아기 이름이나 지어 주오.”
“버릴 아이 본이름이 무슨 소용 있으리오. 본이름은 그만두고 별명만 지어 주되 바리데기라 하시오.”(0)
아기 이름 ‘바리데기’ 네 글자를 비단 공단 포대기와 비단 공단 바지저고리에 수놓아 아기와 함께 옥함에 넣고 자물쇠를
꼭 채웠어. 길대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옥함을 안고 강으로 가 여울에 던지니, 옥함이 그 자리에서 빙빙 돌다가 도로 땅으로 올라오네.
주워서 다시 던지니 또 그 자리에서 빙빙 돌다가 도로 땅으로 올라오더니, 세 번째 던지니까 그제야 여울 따라 물결 따라 출렁출렁
춤을 추며 떠내려가더래.
바리데기를 실은 옥함은 둥실둥실 두둥실, 물결을 타고 바람을 타고 자꾸 자꾸 떠내려갔어.
몇날 며칠을 떠내려가다가 어느 마을에 닿았는데, 이 때 마침 그 마을 사람들이 고기를 잡으러 강에 나왔다가 옥함을 건져서 마을로
가지고 갔지.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서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이 사람 저 사람이 달려들어 열어 보려고 했지마는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어서
도무지 열 수가 없네. 아무리 힘센 사람이 열어도 안 열리고, 아무리 재주 좋은 사람이 열어도 안 열려.
이 때 웬 거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그 마을을 지나가다 그 자리에 왔어.
거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그 옥함에 가까이 다가가니까, 손도 대지 않았는데 거짓말처럼 자물쇠가 철컥 하고 풀리면서 함 뚜껑이
스스로 열리더래. (1)
함 안을 들여다보니 포대기에 싸인 예쁜 아기가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거든. (2)
포대기를 들쳐보니 바리데기 이름 넉 자가 똑똑하게 새겨져 있어.
마을 사람들이 이상히 여기고 거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물어봤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대체 어디에서 온 누구십니까?"
"우리 내외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빌어먹는 거지로서, 이름은 비리공덕이라고 하오."
“두 분이 옥함을 열었으니 아기를 데려다 키우십시오.”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몸이 어찌 아기를 키우겠소?
“우리가 뒷산 언덕에 집을 한 채 지어 줄 터이니, 거기에 살면서 아기를 키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이 뒷산 언덕에 오막살이 초가집을 한 채 지어 줬어.
비리공덕 할머니와 비리공덕 할아버지는 그 날부터 그 초가집에 살면서 아기를 정성으로 키웠어.
비리공덕 할머니는 동네방네 다니며 동냥젖을 얻어 먹이며 키우고, 비리공덕 할아버지는 날마다 강에 나가
고기를 잡아다 먹이며 키웠지.
바리데기가 자라 아장아장 걸어다닐 무렵이 되자, 비리공덕 할머니는 바느질과 길쌈을 가르치고 비리공덕
할아버지는 글공부와 고기잡이하는 법을 가르쳤어.(3)
어느덧 세월이 흘러 흘러 바리데기 나이 열다섯 살이 됐지.
이 때 바리데기 아버지 오구대왕이 몹쓸 병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아 눕더니 일어날 줄을 모르네.
온갖 좋다는 약을 다 써 보고, 용하다는 의원을 다 불러다 보였지만 낫지를 않아.
근심에 싸여 하루하루 날만 축내고 있는데, 하루는 천하궁 가리박사가 와서 점괘를 이리 뽑아 보고 저리 뽑아 보고 하더니
혀를 끌끌 차면서 이런 말을 하는구나.
“대왕님, 대왕님. 이 병에는 백 가지 약이 소용없고 단 한 가지 약만 효험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서천서역국 동대산에서 솟아나는 약물입니다.”
가리박사가 이 말을 남기고는 바람같이 가 버리네. 약이 있다는 말은 반가우나, 서천서역국은 삼나라에서 땅길로 만 리,
물길로 만 리나 떨어진 곳에 있거든. 그 먼 곳에 누가 가서 약물을 떠 오랴.
길대부인이 생각 끝에 맏딸 청대공주 해님데기를 불러 물어 봤어.(4)
“복덩이 딸 청대공주 해님데기야. 앞산에 별궁 짓고 유모 궁녀 딸려 키운 내 딸아.
네가 서천서역국 동대산에 약물 뜨러 갈 테냐?”
“나는 곱게 자라 여태 이 궁궐 밖을 한 발짝도 나가 본 적이 없는데, 그 먼 길을 어찌 가란 말입니까? 못 갑니다, 못 갑니다.”
길대부인이 하릴없이 둘째 딸 홍대공주 달님데기를 불러 물어 봤어.
“살림 불릴 딸 홍대공주 달님데기야. 뒷산에 별궁 짓고 유모 궁녀 딸려 키운 내 딸아. 네가 서천서역국 동대산에 약물 뜨러 갈 테냐?”
“나는 길눈이 어두워 궁궐 뒤뜰 꽃밭에만 가도 길을 잃고 헤매는데, 그 먼 길을 어찌 가란 말입니까? 못 갑니다, 못 갑니다.”
길대부인이 하릴없이 셋째 딸 녹대공주 별님데기를 불러 물어 봤어.
“노리개 딸 녹대공주 별님데기야. 동산에 별궁 짓고 유모 궁녀 딸려 키운 내 딸아. 네가 서천서역국 동대산에 약물 뜨러 갈 테냐?”
“나는 아이 셋을 낳아 날마다 먹이고 입히고 씻어 주느라 쉴 틈이 없는데, 그 먼 길을 어찌 가란 말입니까? 못 갑니다, 못 갑니다.”
길대부인이 하릴없이 넷째 딸 황대공주 물님데기를 불러 물어 봤어.
“재롱둥이 딸 황대공주 물님데기야. 서산에 별궁 짓고 유모 궁녀 딸려 키운 내 딸아. 네가 서천서역국 동대산에 약물 뜨러 갈 테냐?”
“나는 날마다 우리 남편 밥 해주고 옷 빨아 주고 자리 치워 주느라 바쁜데, 그 먼 길을 어찌 가란 말입니까? 못 갑니다, 못 갑니다.”
길대부인이 하릴없이 다섯 째 딸 흑대공주 불님데기를 불러 물어 봤어.
“덤으로 얻은 딸 흑대공주 불님데기야. 남산에 별궁 짓고 유모 궁녀 딸려 키운 내 딸아. 네가 서천서역국 동대산에 약물 뜨러 갈 테냐?”
“나는 몸이 약해 문구멍 바람만 쐬어도 고뿔 걸리고 열 발짝만 걸어도 발병 나는데, 그 먼 길을 어찌 가란 말입니까? 못 갑니다,
못 갑니다.”
길대부인이 하릴없이 여섯 째 딸 백대공주 흙님데기를 불러 물어 봤어.
“섭섭이 딸 백대공주 흙님데기야. 북산에 별궁 짓고 유모 궁녀 딸려 키운 내 딸아. 네가 서천서역국 동대산에 약물 뜨러 갈 테냐?”
“나는 수줍음이 많아 낯선 곳에는 못 가고 낯선 사람을 못 보는데, 그 먼 길을 어찌 가란 말입니까? 못 갑니다, 못 갑니다.”
딸 여섯이 죄다 못 간다 하니 세상 천지에 이럴 수가 있나.
길대 부인이 탄식하며 생각해 보니, 낳자마자 버렸던 일곱째 딸 바리데기가 만약에 살아 있으면 나이 열여섯 살이겠거든.
눈 먼 자식이 효도한다고, 행여 바리데기를 찾으면 서천서역국 동대산에 약물 뜨러 갈지 누가 아나.
길대부인이 행장을 꾸려 가지고 바리데기를 찾아 나섰어. (5)
열다섯 해 전 옥함을 띄워 보낸 강에 가서 나룻배를 타고 물이 흐르는 데로 떠내려 갔지.
떠내려 가면서 큰 소리로 바리데기를 불렀어.
“버린 딸 바리데기야. 던진 딸 바리데기야. 네 어미가 너를 찾으니, 네가 만약 살았으면 산 몸으로 나오고,
네가 만약 죽었으면 혼백이라도 나오너라.”
이렇게 애타게 딸의 이름을 부르면서 세 이레 스무하루 동안이나 강물따라 둥둥 떠내려 갔어.
떠내려가다가 마침내 바리데기가 사는 마을까지 가게 됐지. 거기서 소리쳐 딸을 불렀어.
“버린 딸 바리데기야. 던진 딸 바리데기야. 네 어미가 너를 찾으니, 네가 만약 살았으면 산 몸으로 나오고,
네가 만약 죽었으면 혼백이라도 나오너라.”
이 때 바리데기는 집에서 바느질을 하다가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어.
자기는 지금까지 비리공덕 할머니가 어머니인 줄 알고 비리공덕 할아버지가 아버지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제 이름을 부르면서 어미가 찾는다 하니 깜짝 놀랄밖에.
“어머니, 아버지. 밖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어미가 찾는다 하니 이게 웬일입니까?”
비리공덕 할머니와 비리공덕 할아버지가 그제서야 사실을 다 털어놓았지.
“바리데기야, 바리데기야. 너는 본래 우리가 낳은 딸이 아니다.
옥함에 넣어져 강물에 떠내려온 것을 건져다 우리가 길렀느니라. 이제 네 친어머니가 온 것 같으니 어서 나가 보아라.”
그리고 깊이 숨겨 두었던 옥함과 포대기와 바지저고리를 꺼내 줬어.
그러고 나서 비리공덕 할머니와 비리공덕 할아버지는 바리데기를 남겨 두고 훌훌 바람같이 어디론가 떠나 버렸지.
바리데기가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하직 인사를 드리고 나서 강으로 나갔어.
떠내려오는 배를 잡고 길대부인을 만나서, 옥함과 포대기와 바지저고리를 내놓았지.
길대부인이 보니 열다섯 해 전에 아기 넣어 강물에 띄워 보낸 옥함이 틀림없고, 바리데기 네 글자를 손수 수놓아
함께 넣은 포대기와 바지저고리가 틀림없거든.
“네가 정녕 내 일곱째 딸 바리데기란 말이냐? 너를 찾아 세이레 스므 하루 동안이나 헤매었더니 이제야 찾았구나.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바리데기가 어머니 길대부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갔어.
돌아가서 병든 아버지 오구대왕한테 열다섯 해 만에 처음으로 문안을 드렸지.
그러고 나니 어머니가 바리데기를 불러 앉혀 놓고 묻는구나.
“바리데기야, 바리데기야. 네 아버지 병에는 오직 서천서역국 동대산 약물만이 효험이 있다 하니,
네가 서천서역국 동대산에 약물 뜨러 갈 테냐?”
“아버지 병환 고칠 길이라면 천 리고 만 리고 가겠습니다.”
바리데기가 선선히 대답을 하고, 곧바로 길 떠날 채비를 했어.
머리에 수건 질끈 동여매고 호리병 하나 옆구리에 차고 짚신 한 죽 어깨에 둘러메고 신들메를 단단히 조이니 채비도 끝났어.(6)
바리데기는 집을 나서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자꾸만 걸어갔지.고개도 넘고 개울도 건너고 가시밭길도 지나 자꾸만 갔지.
몇날 며칠을 가다가 보니 웬 머리 허연 할아버지가 길가에서 밭을 갈고 있어. 그런데 맡이 어찌나 넓은지 끝이 안 보여.
“밭 가는 저 할아버지, 서천서역국은 어디로 가나요?”
“이 밭을 다 갈아 주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석 자 깊이로 고르게 갈아 주면 가르쳐 주지.”
바리데기가 밭에 들어가 소에 쟁기를 지우고 ‘이랴 이랴’ 소를 몰아 밭을 갈았어.
끝이 안 보이는 너른 밭을 석 자 깊이로 고르게 갈았어.(7)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해서 아흐레 밤 아흐레 낮이 걸려 다 갚았어. 다 갚아 주니 할아버지가 길을 가르쳐 주는데,
“이 길을 따라 아홉 고개를 넘어가니 과연 개울이 하나 있고, 거기에 웬 할머니가 앉아서 빨래를 하고 있어.
그런데 빨랫감이 얼마나 많은지 산더미만해.
“빨래하는 저 할머니, 서천서역국은 어디로 가나요?”
“이 빨래를 다 해주되, 검은 빨래는 희게 하고 흰 빨래는 검게 하면 가르쳐 주지.”
바리데기가 팔을 걷어붙이고 앉아 빨래를 했어. 검은 빨래는 희게 하고 흰 빨래는 검게 했어.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해서 아흐레 밤 아흐레 낮이 걸려 다 했어. 다 해주니 할머니가 길을 가르쳐 주는데,
“이 길을 따라 아홉 개울을 건너가면 숯 씻는 사람이 있을 터이니 거기 가서 물어 보아라.”
하거든, 바리데기가 길을 따라 아홉 개울을 건너가니 과연 초가집이 한 채 있고 거기에 웬 머리 허연 할아버지가
커다란 함지에 숯을 가득 담아 놓고 씻고 있어. 검디검은 숯을 하나하나 씻어서 말갛게 만들어 놓고 있더란 말이지.
“숯 씻는 저 할아버지, 서천서역국은 어디로 가나요?”
“이 숯을 다 씻어 주되, 숯에서 말간 물이 나올 때까지 씻어 주면 가르쳐 주지.”
바리데기가 함지 앞에 앉아 숯을 씻었어. 숯이라는 게 물에 씻는다고 금방 말개지나? 씻어도 씻어도 깜장 물만 나오더니
아흐레 밤 아흐레 낮 동안 온 정성을 다해 씻으니까 숯에서 말간 물이 나오더래. 다 씻어 주니 할아버지가 길을 가르쳐 주는데,
“이 길을 따라 아홉 가시밭길을 지나면 밭에서 풀 뽑는 사람이 있을 터이니 거기 가서 물어 보아라.”
하거든. 바리데기가 길 따라 아홉 가시밭길을 지나니 과연 길가에 밭이 있고 거기에 웬 할머니가 앉아서 풀을 뽑고 있어.
그런데 풀 한 포기 뽑고 나서 손 모아 나무아미타불을 외고, 또 한 포기 뽑고 손 모아 나무아미타불을 외는 거야.
“풀 뽑는 저 할머니, 서천서역국은 어디로 가나요?”
“이 밭의 풀을 다 뽑아 주되, 풀 한 포기 뽑을 때마다 ‘나무아미타불’을 외면서 뽑아 주면 가르쳐 주지.”(8)
바리데기가 밭에 들어가 풀을 뽑았어. 풀 한 포기 뽑고 손 모아 ‘나무아미타불’을 외고, 또 한 포기 뽑고 손 모아 ‘나무아미타불’을
외며 뽑았어. 뽑고 또 뽑아도 풀이 안 없어지더니, 아흐레 밤 아흐레 낮 동안 온 정성을 다해 ‘나무아미타불’을 외며 뽑으니까 드디어
풀이 다 없어졌어. 다 뽑아 주니 할머니가 꽃 한 송이와 방울 하나를 주면서,
“이 길을 따라가다가, 만약에 높아서 못 가거든 꽃을 던지고 깊어서 못 가거든 방울을 흔들어라.”
하거든. 꽃 한 송이와 방울 하나를 받아 가지고 길 따라 자꾸 갔지.
가다가 보니 문득 높디높은 산이 앞을 가로막는데, 꼭대기는 하늘에 닿고 길이란 길은 깍아지른 벼랑이라 한 발짝도 오를 수가 없어.
이리로 오를까 저리로 오를까 빙빙 돌다가 사흘이 지나고, 한 발짝 오르다 미끄러지고 두 발짝 오르다 미끄러지면서 사흘이 지났어.
문득 할머니가 주신 꽃이 생각나서 그 꽃을 꺼내어 던졌지. 그랬더니 그 높은 산이 스르르 내려앉아 평평한 길이 되는 거야.
또 길을 따라가다가 보니 문득 깊디깊은 바다가 앞을 가로막는데, 아무리 가벼운 것도 여기서는 다 가라앉아서 건널 수가 없어.
배도 가라앉고 뗏목도 가라앉고, 심지어 새 깃털도 가라앉는 곳이야.(9)
이리 보고 한숨 쉬고 저리 보고 한숨 쉬다가 사흘이 지나고, 앉아 울다 서서 울다 사흘이 지났어.
문득 할머니가 주신 방울이 생각나서 그 방울을 꺼내어 흔들었지.
그랬더니 하늘 높은 곳에서 오색 무지개다리가 천천히 바다 위에 척 걸리는 거야. 그 무지개 다리를 타고 무사히 바다를 건넜지.
바다를 건너 삼천 리를 더 가니 서천서역국이고, 또 삼천 리를 더 가니 동대산이야.
동대산에 썩 들어서니 웬 총각이 길을 지키고 섰는데, 가만히 보니 키는 하늘에 닿고 눈은 등잔 같고 얼굴은 박박 얽은 데다 다리는
절름발이요 팔은 곰배팔이야.(10)
“나는 동대산 산지기 동수자요만, 그대는 뉘시기에 나는 새도 못 넘는 구름산을 넘고 새깃털도 가라앉는 칠흑바다를 건너 이곳까지 오셨소?”
“삼나라 오구대왕의 일곱째 딸 바리데기가 아버지 병환 고칠 약물 뜨러 왔습니다.”
“그러면 길 값 삼만 금은 가져오셨소?”
“급히 오느라 못 가져왔습니다.”
“물 값 삼만 금은 가져오셨소?”
“급히 오느라 못 가져왔습니다.”
“구경 값 삼만 금은 가져오셨소?”
“급히 오느라 못 가져왔습니다.”
“그러면 나와 혼인하여 삼 년을 살되, 길 값으로 삼년 동안 나무를 해주고, 물 값으로 삼 년 동안 물을 길어 주고,
구경 값으로 삼년 동안 불을 때어 주오. 그리고 아들 삼 형제를 낳아 주면 약물터에 데려다 주겠소.”(11)
바리데기가 동수자와 혼인을 하여 삼년 동안 같이 사는데, 하늘을 지붕 삼아 땅을 구들 삼아, 해와 달을 등불 삼아 산을 병풍 삼아,
금잔디를 이불 삼아 나무등걸을 베개 삼아 살림을 했어.
삼 년 동안 길 값으로 나무를 해주고 물값으로 물을 길어 주고 구경 값으로 불을 때 줬어. 그러는 동안 아들 삼 형제도 낳았지.
삼 년이 지나 길 값, 물 값, 구경 값을 다 치르고 아들 삼 형제를 낳아 주니 비로소 동수자가 바리데기를 약물터에 데리고 가는 거야.
약물터는 거기서도 삼천 리를 더 가야 하는데, 가는 도중에 보니 아주 넓고 아름다운 꽃밭이 있더래.
넓디넓은 꽃밭이 하늘 아래 끝도 없이 펼쳐졌는데, 난생 처음 보는 꽃이 울긋불긋 눈부시게 피어 있고 꽃향기가 천지에 가득하더래.
바리데기가 동수자에게 물었어.
"여기는 어디이기에 이렇게 많은 꽃이 피어 있습니까?“
“여기는 서천꽃밭이라오.”
서천꽃밭 꽃구경을 하면서 가다가 한 곳에 이르니 칠흑같이 검은 꽃이 피어 있어.
“이것은 무슨 꽃입니까?”
“그것은 죽은 사람 뼈를 살리는 뼈살이꽃이오.”
그 꽃을 한 송이 따러 품속에 넣었지.
또 한 곳에 이르니 살빛처럼 샛노란 꽃이 피어 있어.
“이것은 무슨 꽃입니까?”
“그것은 죽은 사람 살을 살리는 살살이꽃이오.”
그 꽃도 한 송이 따서 품 속에 넣었지.
또 한 곳에 이르니 핏빛처럼 새빨간 꽃이 피어 있어.
“이것은 무슨 꽃입니까?”
“그것은 죽은 사람 피를 살리는 피살이꽃이오.”
그 꽃도 한 송이 따서 품속에 넣었지.
또 한 곳에 이르니 물빛처럼 새파란 꽃이 피어 있어.
“이것은 무슨 꽃입니까?”
“그것은 죽은 사람 숨을 살리는 숨살이꽃이오.”
그 꽃도 한 송이 따서 품속에 넣었지.
또 한 곳에 이르니 눈처럼 새하얀 꽃이 피어 있어.
“이것은 무슨 꽃입니까?”
“그것은 죽은 사람 혼을 살리는 혼살이꽃이오.”
그 꽃도 한 송이 따서 품속에 넣었어.
서천꽃밭을 지나니 험한 바위 골짜기요, 바위 골짜기를 지나니 가파른 벼랑이야.
벼랑을 지나니 우거진 가시덤불길이요, 가시덤불길을 지나니 끝없는 자갈밭이야.
이렇게 멀고 험한 길을 걷고 또 걸어서 드디어 약물터에 이르렀어.
약물터에 이르니 커다란 거북 모양 바위가 하늘로 솟았는데, 그 거북 입에서 약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더래.
그런데 얼마나 더디 떨어지는지 아침에 한 방울, 한낮에 한 방울, 저녁에 한 방울, 이렇게 하루 세 방울밖에 안 떨어져.
바리데기가 그 아래 앉아 기도하고 절하며 호리병에 약물을 받기를 석 달 열흘 동안 받았어.
그러니까 호리병에 약물이 가득 차더래.
이제 바리데기가 집으로 돌아갈 차례야. 그 동안 곁에서 지켜 주던 동수자가 말하기를,
“나는 본래 하늘 옥황궁의 문지기였는데, 죄를 짓고 동대산 산지기로 내려온 바 되었소.
옥황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와 혼인하여 아들 셋을 낳는 사람이 있으면 도로 하늘로 불러 올리리라 하셨는데,
마침 그대가 나와 혼인하여 아들 셋을 낳았기로 나는 이제 죄를 씻고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소. 부디 조심해서 돌아가시오.“
하고는 구름을 불러 타고 하늘도 올라가 버리는 거야. (12)
바리데기는 하릴없이 아이 셋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데, 첫째는 걸리고 둘째는 업고 막내는 안고 나는 듯이 달려 집으로 돌아갔어.
약물터에 올 때는 그렇게나 멀고 험하여 힘들던 길이 돌아갈 때는 얼마나 쉬운지 몰라.
부처님의 도움인지 옥황상제의 도움인지, 땅도 평평해지고 물도 얕아지고 천 리가 백 리로 줄고 백 리가 십리로 줄어 어느덧
삼나라에 다 왔어.
삼나라(13)에 이르니 길가 논에서 농부들 여럿이 모를 심으며 노래를 부르는데, 가만히 들어 보니 이런 노래일세.
“얼럴럴 상사뒤여 얼럴럴 상상뒤여. 불쌍하다 오구대왕 불쌍하다 길대부인.
효성스런 일곱째 딸 바리공주 바리데기 서천서역국 동대산에 약물 뜨러가더니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이 없고,
이제나저제나 소식만 기다리다 불쌍한 오구대왕 불쌍한 길대부인 한 날 한 시에 죽어 혼백이 되었네.
얼럴럴 상사뒤여 얼럴럴 상사뒤여.”
들어 보니 다른 소리가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리거든.
바리데기는 정신을 못 차리고 엎어지며, 자빠지며 허둥지둥 궁궐로 달려갔어. 궁궐 앞에 이르니 벌써 상여가 나오는 거야.
마흔여덟 상두꾼이 흰 꽃 덮인 상여를 메고 ‘에헤뒤야 에헤뒤야’ 소리를 메기고 받으며 나와.
여섯 언니는 흰가마 타고 여섯 형부는 흰 말을 타고 상여를 따라 나오는 거야.
이 때 바리데기가 달려가 두 손을 높이 들어 상여를 세웠어.
그러니 여섯 언니 여섯 형부가 달려들어 바리데기를 밀쳐내면서 마구 야단을 치네.
“너는 서천서역국 동대산에 약물 뜨러 간다더니 여태 무엇하고 노닥거리다가 이제야 오는 게냐?
네가 늦게 온 탓에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무슨 염치로 상여를 세우느냐? 어서 썩 비켜라.”
바리데기가 그 말에는 대꾸도 않고 상여 문을 열었어. 상여 문을 여니 관 두 개가 나란히 누워 있어.
관 두껑을 차례로 열어 보니 아버지 오구대왕과 어머니 길대부인이 자는 듯이 누워 있어. (14)
품 속에서 꽃을 꺼내어 차례로 아버지, 어머니 몸에 올려놨지.
“아버지, 어머니. 이 꽃은 뼈살이꽃입니다.”
뼈살이꽃을 올려놓으니 뽀드득뽀드득 뼈가 살아 붙고,
“아버지, 어머니. 이 꽃은 살살이꽃입니다.”
살살이 꽃을 올려놓으니 몽실몽실 살이 살아 돋아나고,
“아버지, 어머니. 이 꽃은 피살이꽃입니다.”
피살이꽃을 올려놓으니 발그스름하게 피가 살아 돌고,
“아버지, 어머니. 이 꽃은 숨살이꽃입니다.”
숨살이꽃을 올려놓으니 새록새록 숨이 살아 나오고,
“아버지, 어머니. 이 꽃은 혼살이꽃입니다.”
혼살이꽃을 올려놓으니 혼이 번쩍 살아 생겨서, 하늘 보고 절하고 물푸레나무로 세 번을 치니 아버지, 어머니가 기지개를
켜고 긴 숨을 쉬면서 벌떡 일어나 앉더래.
“이게 잠결이냐, 꿈결이냐? 여기가 어디냐?”
“이게 누구냐? 우리 일곱째 딸 바리데기가 돌아왔구나.”
“예, 어머니. 제가 돌아왔습니다. 아버지, 이 약물 드시고 어서 기운 차리십시오.”
바리데기가 호리병에 받아 온 약물을 드리니, 오구대왕이 받아서 단숨에 꿀꺽꿀꺽 마시고 그만 병이 씻은 듯이 나았어.
이렇게 해서 오구대왕의 병을 고치고, 그 뒤로 바리데기는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아들 삼 형제와 함께 오래오래 잘 살았대.
잘 살다가 바리데기는 오구신이 됐는데, 오구신은 죽은 사람을 저승길로 이끌어 주는 일을 맡아 보는 신이란다.
언월도와 삼지창, 방울과 부채를 들고 이끌어 주는 일을 맡아 보는 신이란다.
언월도와 삼지창, 방울과 부채를 들고 ‘이리 오라, 이리 오라’고 영혼을 이끌어 주지.
사람이 죽으면 누구든지 바리데기가 이끄는 대로 저승길을 가게 되는 거야.
비리공덕 할머니와 비리공덕 할아버지는 저승길을 지키는 신이 됐어.
요새도 사람이 죽으면 노제라는 걸 지내는데, 노제에 차린 음식은 비리공덕 할머니와 비리공덕 할아버지가 받아 먹는단다.
그리고 바리데기 아들 삼 형제는 저승 시왕이 됐지.
저승 시왕이라고 하는 것은 저승을 다스리는 왕이 모두 열 이어서 그렇게 부르는데, 그 중에 으뜸은 염라대왕이고 나머지
아홉은 초공 삼 형제, 범을임금 아들 삼 형제(15), 바리데기 아들 삼 형제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