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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세상은 빈틈없이 촘촘한 봄날이었다
게시물ID : lovestory_865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50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11/22 12:22:37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d-LvJ7Orhgg





1.jpg

최승자비가 와도 왔다가는

 

 

 

비가 와도 왔다가는 쉬어 가는데

죽음에서 삶을 그려내지 마라

 

눈이 왔다가도 쉽게 쉽게 떠나가는데

유한(有限)에서 무한(無限)을 그려내지 마라

 

가치 있는 것은 그냥 값진 것일 뿐

비교와 대조의 모사품은 아니니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죽음에서 삶을 그려내지 마라

유한(有限)에서 무한(無限)을 그려내지 마라


천도(天道)에서 인도(人道)로 바꾸지 마라







2.jpg

하상만작은 새의 발자국

 

 

 

작은 새가 꽃잎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갔다

바람은 불어서

바닥 위에 놓인 꽃을

어딘가로 몰고 가는데

발자국을 간직한 꽃잎만

날아가지 않는다

이파리를 떨다가

바닥에 그냥 붙어 있다

작은 새의 발자국이

꽃잎을 눌러 앉힌 것인데

작은 새는 가고 없다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꽃잎은 눌러앉아 있다

작은 새의 발자국을

지지대로 삼고서







3.jpg

이근일악어의 눈물

 

 

 

당신의 눈물 속엔 악어가 산다

악어는 꼬리를 휘둘러 그림자를 판다

익숙한 함정이지만

나는 늘 그것에 감응하여

메마른 그 그림자를 파 심연까지 내려간다

포개진 깊은 관계가 드리운

또 다른 그림자가 짙다

그 짙음 속에선 독이 철철 흘러나오고

독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난

마치 당신이 살짝 흘기는 농담인 양

그것을 받아 마신다

처참히 삼키고

또 삼켜지고 싶어

내 피톨에 가득 차오른 그 독으로

불가항력의 당신과

악어 사이를 찰나에 꿰뚫고 말리라

 

뒤늦게 당신은 눈물을 삼키려 애쓰지만

한껏 벌어진 악어의 입속을 향해

질주하는

치명적인 피는 이미 뜨겁게 들끓고







4.jpg

이영옥행방

 

 

 

어디에서 날아 왔는지

꽃잎 한 장이 방충망에 붙어 어깨를 떨고 있다

아무도 없는 여기서 한참이나 울었던 것 같다

저 슬픔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일까

읽던 책 속으로 다시 시선을 내리는데

아까보다는 조금 더 위쪽으로 자리를 옮겨

눈물을 찍어대고 있다

꽃이 열매에게 제 자리를 내어줘야 할 때

어디로 뛰어 내려야 할지 도무지 방향을 알 수 없을 때

꽃이 고운 제 빛깔을 거두며 어두워지려할 때

옆에서 아무도 다독여 준 이가 없었구나

이쪽 철망에 걸러진 삶이

저쪽 철망으로 몸을 끼워 보지만

세상은 빈틈없이 촘촘한 봄날이었다







5.jpg

유치환바위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哀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바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비정(非情)의 함묵(緘默)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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