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스타 손아섭. 손아섭은 CCTV 감시를 받지 않아도 충실히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선수다. 다른 롯데 선수도 마찬가지다(사진=롯데/스포츠춘추) |
사찰(査察) [명사] 1.조사하여 살핌. 또는 그런 사람. 2.주로 사상적(思想的)인 동태를 조사하고 처리하던 경찰의 한 직분.
사찰(伺察) [명사] 남의 행동을 몰래 엿보아 살핌.
때는 5월 25일 새벽. 장소는 울산 모 호텔.
롯데 선수 A는 야간경기를 끝마치고, 호텔에 있다가 잠시 밖으로 나갔다. 김밥을 사오기 위해서였다. A는 김밥을 산 뒤 곧바로 호텔로 돌아왔다. 이때까지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질 일들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날이 밝고. A는 모 코치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코치는 A에게 “새벽에 밖에 나갔지? 검은 비닐봉지 속에 뭘 넣어서 들어온 것이냐”고 추궁했다. A는 ‘네가 새벽에 뭘 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묘한 표정을 짓는 그 코치를 보며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그런 의구심을 이날만 품은 건 아니었다.
롯데 선수들 사이에선 ‘시범경기 때부터 구단이 우릴 감시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도 그럴 게 코치들이 ‘너, 새벽에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이 뭐야?’ ‘그 시간까지 뭘 하다 들어왔어?’ 등 자신들이 직접 보거나 체크하지 않았으면 알 수 없는 선수들의 호텔 입·출입 현황과 구체적인 모습을 자세히 묘사해 추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선수들은 호텔 직원들이 얼굴을 아는 선수들의 동정을 구단에 귀띔만 해주는 정도로 알았다. 구단이 조직적으로 자신들을 감시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롯데 선참 선수 B는 “A가 ‘이상하다’고 말할 때도 대부분 선수는 ‘설마 구단이 우릴 감시하겠느냐’는 의견이 많았다”며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곧이어 반전이 시작됐다. 이때 누군가 “구단이 CCTV로 선수들을 감시한다”는 사실을 선수단에 전해준 것이다. 야수 C는 “우리에게 ‘구단이CCTV로 우릴 감시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은 구단 내부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귀띔받았던 선수였다”며 “선수들 사이에서 구단 감시 의혹이 증폭되자 ‘혹시나’ 했던 사실을 선수단에 들려줬다”고 전했다.
용기 내 선수단에 구단 감시를 폭로한 D 역시 구단이 실제로 광범위한CCTV 감시를 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거나 구단의CCTV 감시를 알게 된 선수들은 한데 모여 대책을 강구했다. 그리고 울산에서 부산으로 이동하며 선수 대표가 최하진 구단 대표이사(사장)에게 전활 걸었다.
“사장님 직접 만나 뵙고 여쭤볼 말이 있습니다. 꼭 면담 시간을 내주십시오.”
CCTV 감시로 촉발된 롯데 선수단 항명 사건
세계 최고의 야구팬들인 롯데 팬의 응원 장면(사진=롯데) |
B는 “선수들이 구단의 CCTV 감시 사실을 알고서 깜짝 놀랐다”며 “그간 억눌렸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했다”고 회상했다. 그즈음 선수단은 구단 프런트에 불만이 많았다. 구단의 일방적인 연봉계약과 불합리한 대우 그리고 비인간적 언행 등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5월 25일 이전까진 집단행동은 고사하고, 억눌린 감정 역시 표출하지 않았다. 그러던 게 구단의 CCTV 감시로 폭발한 것이었다.
최 사장을 만난 선수들은 정중하지만, 냉정하게 CCTV 사건의 전말을 물었다. 질문은 사장과의 면담 전 총대를 메기로 한 최선참 J가 맡았다.
“누가 CCTV로 선수들을 감시했는가”라고 묻는 J에게 최 사장은 즉답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면담에 참석했던 G는 “사장님이 우리의 질문에 말을 돌리거나 다른 화제로 대화 방향을 바꾸려 노력할 뿐 확실한 답은 들려주지 않았다”며 “속으로 ‘뭔가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당시 선수들은 CCTV 감시의 주모자로 이 모 운영부장과 권 모 수석코치를 지목했다. G는 “선수들이 새벽에 뭘 했는지 가장 많이 알고, 가장 자주 혼을 낸 사람이 권 수석이었다”며 “이 부장 역시 CCTV 감시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다는 정황 증거가 상당히 많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특히나 그즈음 선수들은 이 부장과 권 수석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다.
B는 “구시대적 야구관이 느껴지는 권 수석의 지도방식에 대부분 선수가 반감을 나타내고 있었다”며 “대폭적인 연봉 삭감을 주도하는 등 단장 이상의 권한을 행사하는 듯한 이 부장에 대해서도 감정이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가뜩이나 두 이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던 선수들은 이 부장과 권 수석이CCTV 감시의 주모자일지 모른다는 확신이 서자 최 사장에게 이들의 퇴진을 요구했다. 만약 선수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5월 30일 서울 두산전부터 경기를 보이코트하겠다고 선언했다.
최 사장은 CCTV 감시건에 대한 구체적 해명은 뒤로 한 채 선수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다음날.
이 부장과 권 수석은 최 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최 사장은 두 이에게 “선수들이 원정 식사, 교통비, 훈련량 등에 불만이 많다”며 “내일부터 출근은 하되 현장에 내려오지 말라”고 일방적으로 지시했다.
두 이는 명확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지만, 최 사장은 재차 “선수들이 원정 식사, 교통비, 훈련량 등에 불만이 많다”고만 할 뿐 CCTV 감시 이야기는 일체 꺼내지 않았다. 결국 이 부장과 권 수석은 이날부터 출근은 하되 현장엔 내려가지 못하는 ‘이상한 처지’가 됐다.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자 야구계는 롯데 선수들의 집단행동을 ‘항명’ ‘쿠데타’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 부장과 권 수석은 ‘사상 초유의 선수단 CCTV감시를 주도한 악랄한 야구인’으로 묘사됐다. 하지만, CCTV 사건의 구체적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저 ‘설(說)’로만 떠돌 뿐이었다.
호텔 측 “롯데 높으신 분이 ‘CCTV 자료를 넘겨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롯데 프랜차이즈 스타 조성환의 은퇴 장면(사진=롯데) |
6월 중순. 기자는 올 시즌 롯데가 묵는 한 원정호텔을 찾았다. 그 호텔 관계자에게 “롯데 프런트가 선수들을 CCTV로 감시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관계자는 “프런트가 선수들을 직접 CCTV로 감시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소문이 ‘설(說)’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기자가 어느 정도까지 아는지 확인한 뒤 이내 난처한 표정으로 “프런트가 아니라 호텔 측에서 CCTV를 보고 수기로 작성한 자료를 구단 측에 전달해준 적은 있다”며 “우리 말고 다른 호텔도 롯데에 자료를 넘겨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우리만 잘못한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기자는 곧바로 “CCTV 자료를 누구에게 전달해줬느냐”고 물었다. 이 관계자는 “우리로부터 아침마다 자료를 넘겨 받은 사람은 롯데 프런트 직원이었다”며 “구체적으로 그 자료를 어떻게 활용했는지는 우리도 모른다”고 밝혔다.
그때 이 관계자가 들려준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그는 “3월 초 롯데 구단의 높으신 분이 직접 호텔을 방문해 ‘호텔 CCTV가 어디에 설치돼 있는지, 새벽 1시부터 오전 7시까지 선수들의 호텔 출입 기록을 확인해 구단 측에 전달해줄 수 있는지’를 꼬치꼬치 깨물었다”며 “‘선수단 관리 차원에서CCTV 자료가 필요하다’는 말에 아무 의심없이 ‘가능하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게 대개 원정호텔 계약은 구단 운영팀에서 담당하지, 구단의 ‘높으신 분’이 개입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호텔 관계자는 “왜 높으신 분이 원정 호텔 계약을 직접 담당하셨는지 우리도 잘 모르겠다”며 “확실한 건 그분이 CCTV 자료를 구단 측에 넘겨주는 걸 호텔 계약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프로야구단 유치는 웬만한 호텔이라면 거절하기 힘든 최고의 계약이다. 수익도 수익이지만, 호텔 홍보 효과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모 구단 운영팀 관계자는 “시즌 종료 후, 프로야구단 유치를 목적으로 많은 호텔이 로비를 펼친다”며 “구단 담당자에게 룸살롱 로비는 기본이고, 과거엔 뒷돈을 챙겨주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CCTV 자료를 구단 측에 넘겨주는 걸 계약조건으로 삼았다는 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며 “구단 사장이 직접 원정호텔을 물색하러 다녔다는 소린 더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롯데 구단의 높으신 분’의 실체는 누구였을까. 호텔 관계자는 기억을 더듬다가 이렇게 말했다. “롯데 구단 사장님이었습니다.”
롯데 구단의 불법 CCTV 감시에 응했던 호텔들 “롯데 사장이 요구했다.”
롯데 최하진 사장(사진 가운데)(사진=롯데) |
기자의 취재 결과 최 사장의 원정호텔 탐방은 3월 3일부터 6일까지 진행됐다. 이 기간은 롯데 선수단이 일본에서 막바지 전지훈련을 할 때였다. 최 사장은 선수단이 일본에 있을 때 구단 수행원과 함께 전국을 돌며 원정호텔 후보지를 둘러본 것으로 확인됐다.
최 사장이 탐방한 호텔은 8개였다. 이 가운덴 최 사장이 가지 못하고, 구단 직원을 시켜 방문한 호텔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최 사장이 직접 방문한 호텔들이었다. 최 사장은 호텔 관계자들과 만나면 반드시 두 가지 질문을 빼놓지 않고 했는데 첫 번째는 ‘호텔 CCTV가 어디 어디에 설치돼 있느냐’는 것과 두 번째는 ‘새벽 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선수들의 호텔 입·출입 CCTV자료를 우리 직원에게 넘겨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호텔들은 최 사장의 질문에 호텔 CCTV의 자세한 위치를 설명하며 “(CCTV자료를 구단 측에) 넘겨줄 수 있다”고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 놀랍게도 예외는 거의 없었다.
롯데의 요구에 응하기로 했다가 실제 계약까지 이어지지 않았던 모 호텔은 “롯데 직원이 찾아와 ‘선수단 관리 차원에서 CCTV 자료가 꼭 필요하다. 호텔 측에서 우리 쪽에 그 자료를 넘겨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와 ‘법이 허락하는 선에만 가능하다’고 답했다”며 “이후 롯데 측으로부터 연락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만약 롯데 측과 실제 계약이 이뤄졌어도 CCTV 자료를 구단에 넘겨줄 생각이었느냐”고 묻자 “‘절대 을’인 호텔은 ‘절대 갑’인 구단 측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방범 이외 목적으로 CCTV 자료를 구단에 제공할 시 엄연한 불법이기에 향후 파장을 고려해 구단 측 요구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입수한 최 사장의 원정 호텔 후보지 방문 자료에 보면 최 사장은 이미 시즌 전부터 CCTV 감시를 체계적으로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선수단이 국외 전지훈련 중일 때 원정호텔을 직접 물색한 것도 구단의 CCTV 감시를 사전에 소리소문없이 구축할 의도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자, 그렇다면 어째서 최 사장은 이토록 치밀하게 CCTV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 것일까. 최 사장의 지시를 받고 원정호텔 후보지를 돌며 호텔 측과CCTV 자료 제공건을 논의했던 구단 직원 C 씨는 “호텔 대부분이 구단 측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의사를 나타난 게 사실”이라며 “호텔 계약 조건으로CCTV 자료 전달건을 요구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C 씨는 최 사장이 CCTV 감시 시스템을 구축한 것에 대해선 “사장님의 깊은 뜻은 모르겠지만, 선수들이 다음날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하려면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며 “그래서 선수들 가운데 누가 호텔 밖으로 자주 나가는지 알고 싶어 하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몇 번이고 “사장님이 나쁜 의도로 CCTV 감시를 하신 것 같진 않다”며 “실질적으로 호텔에서 우리에게 준 자료도 ‘어느 선수가 새벽 늦게 들어왔습니다’하는 구두 통보 정도였지, 구체적인 자료를 전해준 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CCTV 감시 기간이 그리 길었던 것도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과연 사실일까? 정말 호텔 측은 구두로만 몇몇 선수의 호텔 입·출입 여부를 통보했던 것일까. 그리고 감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던 것’일까. 기자의 취재 결과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전국적·조직적·구체적으로 이뤄진 롯데의 CCTV 사찰
롯데 측이 작성한 원정 숙소 검토내용(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기자가 입수한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롯데 요구에 따라 진행된 호텔 측의CCTV 감시는 매우 광범위하고, 은밀하며 구체적이었다. 감시가 아니라 사찰이라 부르는 게 마땅한 수준이었다. 먼저 광범위함이다.
호텔 측이 건네준 자료를 바탕으로 롯데가 만든 ‘2014년 원정 안전 대장’에 보면 롯데의 CCTV 사찰에 협조한 호텔은 한 곳이 아니었다. 전국의 롯데 원정호 대부분이 CCTV 사찰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2014년 원정 안전 대장’엔 사찰 일자와 지역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원정지역에서 사찰이 벌어졌음이 적시돼 있다.
다음은 은밀함이다. 롯데 내·외부 관계자 그리고 호텔 측의 설명을 종합하면CCTV 사찰을 직접적으로 행한 쪽은 호텔이었다. 호텔은 롯데 측 요구에 따라 새벽 1시부터 오전 7시까지 CCTV를 통해 호텔을 입·출입하는 선수들을 집중 감시했다. 과거처럼 코칭스태프가 호텔 로비를 지키고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면 모를까, 호텔 측이 CCTV를 통해 은밀하게 감시했기에 선수들은 5월 25일이 되도록 구단의 사찰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마지막은 구체성이다. 롯데 관계자는 “사장님이 나쁜 의도로 CCTV 감시를 하신 것 같진 않다. 실질적으로 호텔에서 우리에게 준 자료도 ‘어느 어느 선수가 새벽 늦게 들어왔습니다’라는 구두 설명 정도였지, 구체적인 자료를 전해준 건 아니었다. CCTV 감시 기간이 그리 길었던 것도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4월부터 6월까지 롯데 측이 작성한 ‘2014년 원정 안전 대장’에 보면 사찰 일자와 선수들의 외출 시간, 귀가시간, 선수명, 선수들이 한 행동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특히나 ‘비고’란엔 특정 선수가 호텔에서 무얼 했고, 누구와 동행해 들어왔는지가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는데 작정하고 CCTV를 확인하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사생활을 구체적으로 명기한 건 충격 그 이상이었다.
롯데 관계자의 말대로 최 사장이 나쁜 의도가 아니라 선수단 관리 차원으로CCTV를 활용했다면 외출·귀가 시간만 적시할 일이었다. 그러나 롯데는 선수들의 매우 구체적인 사생활까지 기록하며 별도의 문서를 만들어 보관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호텔 측이 구두 설명에만 그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수들의 입·출입뿐만 아니라 구체적 동향까지 파악해 구단에 전달한 까닭이었다.
더 놀란 건 CCTV 사찰이 ‘단기간에 끝난 게 아니다’라는 점이었다.
사찰의 계획·주도를 담당한 구단 사장은 건재
롯데 측이 작성한 '원정 안전 대장'(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한 선수는 “구단에서 선수들의 동향 파악 정도만 한 것으로 알았지, 구체적으로 누가 몇 시에 호텔로 들어오고, 누구와 호텔에서 뭘했는지까지 파악할 줄은 몰랐다”며 “그걸 알았다면 최 사장과의 면담을 그리 쉽게 끝내진 않았을 것”이라고 목소릴 높였다.
중단된 줄 알았던 CCTV 사찰은 이후로도 계속 됐다. ‘원정 안전 대장’을 보면 5월 30일이 지나서도 사찰이 계속돼 6월까지 이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롯데 내부 관계자도 이를 순순히 인정했다. 그는 “선수들이 이른바 ‘쿠데타’를 일으킨 다음에도 최 사장은 CCTV 사찰을 계속 할 것을 지시했다”며 “선수들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6월에도 호텔 측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어느 선수가 몇 시에 누구와 들어왔는지 기록했다”고 털어놨다.
여기서 궁금한 게 있다. 엄연한 불법이자 인권 침해인 CCTV 사찰을 어째서 누구도 반대하고, 대항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향후 파장을 고려할 때 구단 관계자는 누군가는 최 사장의 지시에 항거하거나 만류할 법했다. 실제로 그렇게 한 이들이 있었다.
롯데 한 코치와 구단 직원은 “최 사장으로부터 CCTV 사찰을 지시받은 배재후 단장, 이 부장이 사장을 엄청 말린 것으로 안다”며 “사석에서 ‘이거는 아이다. 이러면 다 죽는다’하고 걱정하는 소릴 자주 들었다”고 귀띔했다.
CCTV 사찰 주모자로 꼽혔던 모 인사는 “사찰을 반대했던 게 사실”이라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사장님께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금까지 선수단 관리는 각 구단이 안고 있는 오랜 숙제입니다. 그렇다고 CCTV를 통해 선수 사생활을 감시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야간 경기 끝나고 호텔 돌아오면 자정인데, 낮 시간에 활동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새벽에 맥주 한잔 마시고, 친구들 만나는 건 이해해줘야할 문제입니다. 미국, 일본도 새벽에 선수들이 호텔 밖으로 나간다고 감시하진 않습니다. 프로 선수들이니 만큼 스스로 제어하는 게 맞지 싶습니다. 선수들도 기계가 아닌 만큼 숨 쉴 시간은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사장님 생각은 운동선수는 절대 술 마시면 안 되고, 야구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것 같았다. 재차 배 단장과 함께 말렸지만, 사장님의 결심이 원체 완고했다. 5월 25일 선수들이 반발한 뒤에도 위에서 ‘계속 (사찰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사장 설득에 실패한 이들은 사장 보고용인 ‘원정 안전 대장’에 선수단 출입 기록과 사생활 내용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키곤 했다. 그들은 사장의 CCTV사찰 지시를 김시진 감독과 선수에게 귀띔해주기도 했다. 모 인사는 “경남지역 원정경기 때 김 감독께 ‘여기 호텔 총지배인이 사장님과 가까운 사이입니다. 구단이 CCTV로 보고 있으니 선수들에게 조심히 행동하라고 전달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장님께 크게 혼날지 모릅니다’라고 말씀 드린 적이 있다”며 “선수 가운데서도 고참급 한 명을 불러 에둘러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고 털어놨다.
(사진 오른쪽) 최하진 대표이사. 구단 고위층의 경기, 선수단 운영 개입은 법적 문제까진 아니다. 그러나 CCTV 사찰은 다르다. 엄연한 법적 문제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팀을 위해 떠나야할 사람은 떠나야 한다. 중요한 건 법적 책임을 질 일이 있으면 져야 한다는 것이다(사진=롯데) |
그러나 CCTV 사찰을 계획·주도한 것으로 확인된 최 사장은 ‘후폭풍’의 중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가 선수들에게 CCTV 사찰을 반대한 이 부장과 권 수석의 보직해임을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이때만 해도 선수들은 사찰의 주체가 최 사장일 리 없다고 믿었다.
갑자기 ‘출근은 하되 현장에 나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이 부장과 권 수석은 서울로 올라가 최 사장을 만났다.
이 부장은 “사장님께서 CCTV 사찰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고 ‘선수들이 식사, 도구, 교통비 문제에 참 불만이 많더라. 권 수석의 강압적인 지도방식에도 반감이 많다’고 말씀하셨다”며 “마치 그 문제들 때문에 선수들이 반발하고, 결국 우릴 현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인 것처럼 설명하셨다”고 회상했다.
이 부장은 “최 사장이 권 수석에게 ‘당분간 해외에 나가 쉬고 있어라. 경비는 대주겠다’고 말씀하셨다”며 “최 사장의 지시에 따른 사람들이 되레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권 수석은 미국으로 날아가 구단 스카우트와 함께 외국인 선수를 물색했다.
이 부장은 “그때까지 우리가 CCTV 사찰건의 주모자이고, 사찰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2선으로 물러난 것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며 “최 사장은 끝내 선수들과 했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 부장과 권 수석은 나중에야 선수들로부터 자신들이 CCTV 사찰건의 주모자로 몰렸다는 걸 알게 됐다.
이 부장은 나중에 최 사장을 한 번 더 만났다. 그는 “‘다른 건 몰라도 권 수석과 저는 야구인입니다. 같은 야구인인 선수들과는 오해를 풀어야할 것 같습니다’하고 말씀드렸더니 사장께서 ‘선수들을 왜 만나나. 세월 지나면 묻힐 텐데···’하고 만류했다”며 “진실을 말하고 싶어도 구단 직원이 상사의 뒤통수를 치는 것 같아 억울하고 억울해도 참고 또 참았다”고 말했다. 이부장은 일련의 사태를 책임지는 의미에서 사퇴를 결심한 상태다.
CCTV 사찰이 끝난 건 6월이 지나면서부터였다. 롯데 관계자는 “최 사장이CCTV 사찰 보고를 하지 않아도 별 이야기가 없었다”며 “더 사찰을 진행했다간 큰 문제가 터질 것으로 예상하셨던 것 같다”고 전했다.
롯데 구단의 공식 입장은 아홉 글자.
기자가 입수한 롯데 최고위층의 선수간 개입 문서(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롯데 구단의 CCTV 사찰은 세계 스포츠 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찰 배경이 제아무리 순수했다고 해도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CCTV를 통해 감시했다는 건 ‘순수’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될 불법적인 행동이었다.
기자는 7월 이 문제를 기사화하겠다고 롯데 측에 알리며 공식 입장 표명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롯데는 “현재 치열한 4강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그 기사로 4강 싸움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경기력에 지장을 줄까 염려된다”며 “시즌 종료 후, 기사가 나갔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기자는 롯데 측 의견을 수용해 시즌 중엔 기사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롯데는 이후 CCTV 사찰건과 몇몇 사건의 비공개에만 몰두할 뿐 정확한 입장 표명을 외면했다.
CCTV 사찰은 그 위법성 만큼이나 치명적 위험이 숨은 중차대한 문제다. 선수들의 동향을 체크한 게 구단 직원들이 아닌 호텔 측이기 때문이다. 한 롯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우리 직원이 CCTV를 보고 체크했다면 그나마 낫다. 선수들도 같은 식구니까 우리끼리만 알고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호텔 직원들은 우리와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CCTV로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그걸 기록으로 남겼다면 언제든 유출 가능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선수들의 사생활이 위험에 처해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수들은 최근까지 CCTV 사찰건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전국적으로 그것도 치밀하고, 구체적으로 이뤄졌는지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 CCTV 사찰을 계획·주도한 ‘몸통’이 누군지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새롭게 드러나는 사실을 접하고, 크게 분노해있는 상황이다.
법무법인 현재의 손수호 변호사는 “CCTV 영상은 개인정보보호법의 ‘개인정보’에 해당한다”며 “이러한 개인정보를 ‘정보 주체(선수)의 동의없이 제3자(롯데)에게 제공한 자(호텔) 및 그 사정을 알고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고 설명했다.
특히나 손 변호사는 “선수들의 동의 없이 CCTV 영상을 롯데구단 관계자에게 전달한 호텔 측과 불법인지 알면서 호텔 직원으로부터 CCTV 영상을 제공받은 롯데구단 관계자 모두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개인정보를 중시하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구단이 소속 선수를 불법 사찰했다는 건 큰 충격이자 대단한 위법 행위”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손 변호사는 “CCTV 영상을 제공한 자들과 제공받은 자들은 민법 상의 공동불법행위를 한 것이므로, 이들은 선수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며 “비록 구단 직원(대표 이사 포함)과 호텔 직원(대표이사 포함)의 불법행위라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행한 행위가 업무상 불법행위이므로 직원의 사용주인 구단과 호텔도 사용자 책임에사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선수들은 그간 “CCTV 사찰건과 별도로 여러 문제 때문에 이 부장과 권 수석의 사퇴를 요구했다”며 “하지만, 최근 드러나는 여러 정황과 증거들을 고려할 때 더 큰 ‘몸통’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구단 최고위층이 현장의 고유권한인 경기 운영, 선수 기용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구단 최고위층이 연봉 협상 때 선수들에게 어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를 어떻게 관철하도록 지시했는지 자세한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다. 특히나 CCTV 사찰건을 최종 보고받은 이가 누군지 밝혀지고 있다. 이 부분은 기자가 정련된 기사로 다시 서비스할 예정이다.
기자는 11월 2일 롯데 최하진 사장에게 정식 공문을 보내 일련의 사건들과 관련한 공식 입장을 물었다. 공식 입장 표명 시 충분한 반론권을 약속했다. 그러나 롯데 구단이 보내온 답변은 매우 간명한 것이었다.
바로 ‘진위 파악을 하고 있다’라는 아홉 글자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95&aid=0000001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