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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 남자의 살아온 이야기-1
게시물ID : gomin_8662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Z2dlZ
추천 : 12
조회수 : 562회
댓글수 : 43개
등록시간 : 2013/10/13 06:29:02
 
그냥 재미도 없고 지루한, 어릴 때부터 제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요즘 제가 가슴이 많이 아픈일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제 인생을 모두 엎어버릴 만큼요 ㅎㅎ
 
그냥 제 얘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거 만으로도 슬픔을 참는데 도움이 될 거 같아 글을 씁니다.
 
글 솜씨도 없고 그저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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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은 내가 돌이 되기도 전에 이혼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아버지의 심한 폭력에 어머니가 갓난 애기인 날 버리고 도망갔죠
 
그 후 할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자랐는데
 
아버지는 당신의 어머니였던 할머니께도 분노가 많았습니다
 
두 분은 서로 원망이 많았죠.
 
 
할머니 얘기를 하자면,
 
한량이었던 할아버지와 이혼하신 후 홀로 4남매를 키워내신 분입니다
 
밭농사와 야채장사 같은 걸 하시면서요
 
내가 어릴 때 기억하는 할머니 모습은 등이 심하게 굽어서 거의 기역자로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시는 모습입니다.
 
젊으실 적은 안 그러셨지만. 모진 육체노동에 잘 먹지도 못하셔서 서서힘 굽어가셨다 하셨습니다
 
내가 어릴때도 장사를 하시고 일을 하셨습니다.
 
거의 70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육신이 평안하질 못하셨던 분이고
 
불쌍한 인생을 사시다, 가실 때도 불행하게 가신 분입니다.
 
 
내가 대여섯살인 어릴때 부터 아버지는 나를 때렸는데 그걸 말려주시고 막아주신 분이 할머니였습니다
 
나를 몸으로 막다가 분노한 아버지의 매질을 대신 맞기도 했죠
 
그런 삶이 반복되자 연로하신 할머님도 많이 지쳐가셨을 겁니다. 불쌍하신 분입니다
 
 
손주인 내게는 자애로웠던 할머니가 어느순간부터 변해가셔서,
 
내게도 화를 내시고 매를 드시기도 하셨었습니다
 
할머니가 내게 정체모를 분노를 터트리며 자신의 인생을 한탄할 때면
 
어린 나는 무서워 눈을 꼭 감고 자는 척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는 또, 그 때쯤에 약간의 치매 증세도 있으셨습니다
 
한번 씩 이상해 지셨다가 정상으로 돌아오시길 반복했는데
 
점점 이상해지는 주기가 더 길어지고 증상이 안 좋아졌던 거 같습니다
 
가끔씩 정신이 드신 날은,
 
삶에 대한 분노로 내게 무서웠던 할머니가 아닌,
 
어릴 때 날 사랑해 주시던 할머니로 돌아가 날 보듬어 주셨던 기억이 나요
 
- 아이고 이 불쌍한 것. 내 죽으면 누가 보살필꼬.. 하셨죠
 
그런 할머니가 그립네요. 죄송합니다 할머니.. 
 
 
할머니는 내가 초2 올라가는 겨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날도 지친몸을 이끌고 리어카를 끌고 장사를 나가셨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시는 길 도중에.. 그 한 평생 고됐던 몸을 그대로 영영 누이셨습니다.
 
할머니가 돌아오질 않아 아버지가 찾으러 나갔다가 동네어귀 과수원 옆길에 리어카 옆애
 
누워 계신걸 발견 한 겁니다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너무 가슴이 아프네요.
 
 
그 어렸던 나는 할머니를 이제 볼 수 없음에 슬프기도 했지만
 
그 보다 이제 아버지와 둘이 살아야 한다는 게 더 무서웠어요
 
이제 나를 지켜줄 할머니가 없으니까
 
 
우리 아버지는..
 
마음의 병이 깊으신 분입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은 알 수 없지만
 
어떠한 연유로 인해서 세상을 보는 눈이 크게 삐뚤어지신거 같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만난 거죠.
 
아버지는 날 참 많이도 때렸습니다
 
주먹으로 발로 몽둥이로.
 
머리가 깨진 적도 있고 휘두르는 우산끝에(옛날 우산은 끝이 뾰족한 쇠였죠?^^)
 
살갗이 날아가 지금도 왼쪽팔에 흉터가 있습니다.
 
이 흉터애기를 좀 하자면,
 
그 때가 여름이었는데 살갖이 날아가 상의 하의가 다 피에 젖을 정도로 피가 많이 났습니다
 
병원을 데려갔으면 지금처럼 심한 흉터는 안남았을 건데
 
그냥 반창고를 붙이고 가루약을 뿌리고 말아서
 
더운 여름 내내 진물이 나고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께 목을 졸린적도 있고 제게 칼을 드신 적도 있습니다
 
- 니를 보면 니애미가 생각이 난다. 그 X같은 X. 니가 태어나서 내인생이 망쳤다. 차라리 니발로 집을 나가그라 나도 새인생 살게
다른 집 애들은 헤실헤실 웃기도 잘 웃고 명랑해서 부모들한테 힘을 주는데 니는 아가 왜 글로?
니는 니애미 더러운 피를 물려받은 쌍늠이다.더러븐 XX
 
조금씩 커 가면서,
 
맞는 폭력보다 아버지의 저 말들이 날 괴롭게 했습니다
 
이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사랑하고 따르는 아빠가 내게 왜 저러실까. 엄마는 왜 날 버리고 갔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하면서 혼자 울기도 마니 울었죠 ㅎㅎ
 
아버지 말대로라면..
 
날 낳아주신 어머니는 다른남자와 눈이 맞아 날버리고 도망간 창녀같은 여자였죠
 
- 아 나는 더럽고 추한 태생이구나. 다른애들하고 나는 다르구나. 나는 집도 못살고 엄마도 없고 아버지한테 매일 이렇게 맞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런걸 알면 누가 나와 어울려줄까..-
 
알게 모르게 점점 주눅이 들어갔고 어릴때 내 성격을 형성한 젤 큰 요인이었습니다
 
불우한 가정에 꽤죄죄한 몰골에 그늘진 아이였던 날 선생님들도 싫어하거나 무관심 했습니다
 
보살핌을 받는다는게 뭔지 몰랐습니다
 
누군가 날 아껴주고 사랑해 준다는 거..
 
 
12살 때 한 번 죽으려고 한 적이 있어요
 
고향에 낙동강이 흐르는데 거기 다리가 몇 개 있어요.
 
그 날은 평소보다 좀 심했습니다
 
모진 매질과 주먹질 발길질 보다 가슴에 상처를 내는 아버지의 말들이
 
그날 절 그 난간위로 몰았습니다
 
난간에 올라서서 한참을 울면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다 끝내 내려왔던 기억이 납니다
 
 
겨우 겨우 학창시절을 버티고 고등학교로 올라갔을 때
 
아버지가 날 대학을 보낼 생각이 없다는 걸 알게되고
 
17살에 집을 나왔습니다. 웃긴게..반에 실장이 집을 나간겁니다 ㅋㅋ
 
지금까지는 지루했죠?
 
집을 나가서는 좀 재밌습니다^^
 
 
빈손으로 몇만원 들고 무작정 나온 나는 노가다현장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었습니다
 
노가다 일당을 매일 안 주고, 몇일치를 몰아서 주는 대신에 돈을 더 쳐준다는 말에 속아서 때여 보기도 했고
 
다 끝내면 일찍 보내준다는 말에 죽을 똥 살 똥 일을 마치면, 내가 언제 그런소리했냐는 식의 발뺌도 겪었고요
 
겨울에는 일이 없어서 며칠 씩 굶는게 일이었습니다
 
그럴때면 배가 너무 고파 주인집 냉장고를 새벽에 몰래 열어 깍뚜기 같은 걸 훔쳐먹고 그랬죠
 
밥을 굶는데 방세 낼 돈이 있었을까요?
 
한 겨울에 빈손으로 쫒겨났습니다. 짐은 나중에 밀린방세 가져와서 받아가라고.
 
그 해 겨울 2000년도 경남진주는,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15년만에 한파가 닥쳐서 영하 18도까지 내려간 겨울이었습니다 ㅋㅋ
 
좁은골목구석이나 주차장 차뒤에 웅크리고 앉아 밤을 지새다가 날이 밝으면 인력사무소로 가
 
밤새 떨었던 몸을 녹였습니다
 
그러길 일주일인가 겨우겨우 3일짜리 일을 맡아 돈 십마넌여를 만들고
 
급한데로 허름한 여인숙방을 잡아 추위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아주머니 지금도 얼굴이 기억이 나는데,
 
내가 일을 못하고 하루종일 방에서 굶고 있으면
 
부추전을 부쳐서 먹으라고 주시곤 했습니다
 
지금도 감사 드립니다.
 
돈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는 일을 못하는 날 끼니를 
 
초코파이(슈퍼에 묶음으로 파는 파란색 초코파이.롯데였나?)
 
아니면 마찬가지로 시장슈퍼에 팔던 밀가루식빵과, 마찬가지로 브랜드없는 대용량 1키로짜리 햄으로 때웠습니다
 
(왜 햄이냐면, 아무것도 모르는 제 생각에도 초코파이나 식빵같은 밀가루만 먹으면 영양이 많이 부족할 거 같은데,
 
고기는 비싸서 안 돼고 그것 비슷한 햄을 먹자! 해서 햄입니다. 그냥 포장 벗겨서 조금 씩 깨물어 먹고 뒀다 또 먹고 했습니다 ㅋㅋ)
 
 
그.러.다.가!
 
진짜 큰 기회가 찾아옵니다.
 
진주에 상하수도 처리장을 새로 짓는데 겨울내 거기서 붙박이로 일을 할 수 있게 된겁니다
 
하루일당도 45000이나 쳐주고(그 때당시 인력 사무소에서 수수료 제하고 받았던 돈이 33000~35000입니다)
 
대신 월급으로 몰아서 주겠답니다
 
희망에 들떳습니다.
 
-월급을 받으면 밥솥을 사고 쌀을 사고 계란도 사놔야지
 
햄이랑 참치도 잔뜩사고 끼니 걱정 없이 먹어야지
 
작은 냉장고를 하나사면 여름에 시원한 물을 언제나 마실 수 있는데 살까?
 
겨울은 대충버티고 봄에 입을 잠바를 하나살까?..등등
 
 
새벽에 현장에 나가면 나무판자로 세워놓은 작은 공간에 아저씨 한 분만 계셨고
 
그 넓은 현장에는 겨울내내 저와 그 아저씨만 있었습니다
 
가자마자 육개장 컵라면 작은 걸 하나먹고 7시가 채 안돼서 바로 일을 시작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공사현장에 널려있는 쓰레기들은 포대에 담아 버리는 곳에 모아두고
 
재활용이 가능한 파이프나 폼(콘크리트 작업할 때 쓰는 쇠로 된 판 같은 겁니다.폼이라 불렀는데 정확한 명칭은 잘)
 
반생(굵은철사죠^^)등은 한군데 차곡히 모아 놓는,
 
한마디로  혼자 그 넓은 공사현장 정리정돈 이었습니다
 
어찌나 날씨가 추웠는지 빨간색 반코팅 장갑과 녹색 코팅 장갑, 두개를 덧 낀 상태에서
 
파이프를 잡으면, 손이 파이프에 쩌~억 붙었습니다.
 
지하에 폐기물이나 자재가 많았는데 불을 켜두지 않아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하루종일 혼자 그 걸 나른날도 많았습니다
 
춥기도 하고 혼자 쓸쓸히 어두운데서 하는일이라 힘든일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때의 저는 당분간 끼니걱정과 방세 걱정을 안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참아갔던거 같습니다
 
월급날이 되어 현장 소장이란 사람을 처음 만났는데 회사에 사정이 생겨서
 
월급을 나눠서 주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일단 20만원을 받고 나머지는 보름뒤에 주겠다고..
 
저는 사실 그 때 생전 처음 만져보는 20만원이란 거금에 정신이 얼떨떨해서
 
그다지 주의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그 전까지는 하루하루 일당 3만몇천원씩 받았고 그것도 연속으로 일할 수 있는게 아니라 드문드문이라)
 
그리고 보름이 지나고 또 며칠이 지나도 그 소장은 다시 오지 않았고
 
어느 날 아침, 같이 지냈던 아저씨도 현장에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 날, 하루종일 깨어지고 날아가버린 희망에 어찌할바를 모르던 저는
 
고향집을 나온이후로 처음으로
 
어두운 여인숙방에 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서럽게 울었습니다
 
 
세상에 아무도 없이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것이다.라는 생각에 더 서럽게 울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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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할 얘기는 많은데
 
쓰다보니 시간이 벌써 날이새서 자야겠네요 ㅎㅎ
 
나머지는 저녁에 쓰든가 할려구요
 
여기까지 읽어주신분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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