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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1-
게시물ID : panic_866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신주쿠요
추천 : 5
조회수 : 87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3/08 19: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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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서론
 
한 여인의 변사체가 눈을 부릅뜨고 트림소리를 내며 영화는 마무리를 짓는다.
나는 저것 좀 보라며 징그럽다며 연신 미싱질을 하고 있는 엄마에게 보채듯 이야기 했다.
나는 주온이라는 일본 공포영화를 좋아했다.
어느 샌가 나의 장래희망은 잘 나가는 화가에서 대단히 무서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그리고 시미즈 다카시 같은 공포영화 감독이 되는 것으로 변해있었다.
남들보다 유독 겁이 많았지만 겁을 주는 일도 이상하게 잘 해내던 나였다.
 
1.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생 이였을 적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그해 나의 기괴했던 여러가지 경험들을 이야기 해 볼 수 있겠다.
 
여전히 생생히 남아있는 기억들 중 하나가 있다. 엄마와 함께 어느 개장수 집에 가서 복실이 라는 조그마한 강아지를 데려왔을 때 이야기이다.
 
복실이 이전에 데려왔던 강아지도 있었다. 그 강아지는 이름을 차마 짓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도 그럴 것이 그 강아지의 성격이
 
너무나 지랄 맞았던 것이다. 개장수 집과 우리 집은 꽤나 먼 거리였는데, 조그마한 강아지라 집까지 내가 안고 가려했었다.
 
하지만 이 녀석이 안긴 채로 가만히 있질 않아 땅바닥에 내려주고 개장수 집에서 준 목줄로 묶은 채 집으로 향했다.
 
아마 우리가 집까지 걸어가면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이 강아지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줄 알고 식겁했을 것이다.
 
결국 이 개는 도저히 안되겠다 판단한 엄마께서 도로 바꿔온 강아지가 복실이였고, 우리 집 가족은 이 강아지를 매우 예뻐했다.
 
예뻐해준 것도 2주 남짓 밖에 되지 않지만 말이다.
 
2.
 
먼저 앞에 말했듯이, 생생히 기억난다. 정확히 새벽 2시 경이였다.
 
초등학교 1학년 생이 새벽 2시 경에 잠에서 깨는 건 드문 일이라 생각하는데, 난 그 시간에 목이 너무 탔다. 그래서 잠에서 깬 것이다.
 
거실은 어두웠다. 우리집은 엄마와 아빠의 방이 없었다. 누나방이 하나 있어서 누나는 누나의 방에서 잠을 잤고
 
나는 엄마 아빠와 거실에서 함께 잤다. 거실이 꽤 넓었던 편이라 걱정은 없었다. 이부자리 옆에 TV가 있었고 TV 위론 창문.
 
이부자리 앞에는 냉장고가 있었고, 부엌으로 나가는 문이 있었다. 부엌은 밖에 있었다. 밖에는 또한 대문이 있었다.
 
목이 탔지만 시선이 먼저 냉장고를 향하지 않고, 가로등 빛이 들어오는 창으로 갔는 데 창에 시선을 둔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창문엔 그림자가 있었다. 사람 3명의 그림자였다. 모두 길거나 단발의 소녀 혹은 여인으로 보였다.
 
은우누나의 친구들인가? 하지만 지금은 새벽 2시인데.
 
그리고 저 창문은 꽤 높은 곳에 위치하여 감히 평균키의 남자어른도 저렇게 또렷하게 실루엣을 비출 순 없었다.
 
또한 저 여인들은 창문을 미친 듯이 두드리고 있었는데, 소리가 나질 않았다.
 
난 겁이 났다. 저건 분명히 귀신일 것이다. 날 잡으러 온 귀신.
 
그와중에 물은 너무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냉장고를 열면 새어나오는 주황빛 조명때문에 내 실루엣을 들킬 것만 같았다.
 
목이 너무나 말랐지만 물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처음 겪어보는듯한 인생의 쓴 맛이였다.
 
저 은우누나 친구귀신들이 있는 창문과 냉장고를 번갈아보다가 냉장고 옆에 있는 부엌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았다.
 
부엌이 훤히 내다보였다. 또한 밖으로 나가는 유리 미닫이 대문이 보였다.
 
저 귀신 실루엣들이 대문으로 옮겨가 다시 대문을 미친듯이 두드릴 것만 같았다.
 
나는 부엌으로 거북이마냥 소리내지 않고 기어갔다. 그렇게 소리없이 기어가서는 부엌의 불을 켰다.
 
그것이 일종의 퇴마의식이라고 생각했나보다. 부엌의 불을 켜니 목줄에 묶여있는 복실이가 보였다.
 
복실이의 눈가가 촉촉했다. 복실이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삽살개 이야기가 떠올랐다.
 
동물을 좋아하는 나였다. 삽살개는 귀신을 쫓는 역할을 한다고 들었었다.
 
그 생각을 하니 꽤 좋은 지원군이 내 옆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실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머리도 쓰다듬어주었다.
 
복실이의 눈가는 여전히 촉촉했다.
 
부엌의 불을 끄지 않고 나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엄마의 등을 발로 차 깨워 창문에 귀신이 있다 속삭였다.
 
엄마에겐 원하는 답을 듣지 못했다. 엄마는 이불 안에 들어가 열을 세보라고 했다.
 
그럼 정말 사라질 줄 알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을 세고 이불 밖으로 나왔지만 귀신은 셋 중 하나도 사라지질 않았다.
 
이제 믿을 건 복실이 밖에 없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열 이상의 요상한 숫자들을 창조해내가며 끝내 잠이 들었다.
 
3.
 
아침에 일어났다. 지난 기억이 아무 것도 생각나질 않았다. 꿈에서 깨도 꿈의 내용이 기억날텐데.
 
정말 간밤의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일어난 시간이 등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여덟시 반이라 그랬는 지도 모르겠다.
 
일어나자마자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 아침밥을 먹지도 씻지도 않은 채 책가방과 실내화 가방을 들곤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외쳤다. 엄마였는지 아빠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오늘 석가탄신일이잖아. 라며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웃음 소리의 작은 틈 속에 이질적인 소리가 하나 섞여있었다. 곡소리였다.
 
"엄마, 누나 울어?"
 
복실이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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