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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뜨거운 태양빛에 달궈진 뜨거운 모래로 가득한 사막.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시작인지 모를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사막 한 가운데에 누군가 걸어가고 있다.
짤그랑- 짤그랑-
두꺼운 쇠사슬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음. 녹이 슬대로 슬어 이미 누렇게 변한 족쇄를 발목에 차고 있는 한 남자.
솔직히 그가 남자인지도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온 몸을 회색 붕대로 감아놓았기에 그저 몸의 윤곽이 남자처럼 다부져 보여 막연히 남자이리라 예측하는 것일 뿐이다. 손이며 발이며, 몸은 물론 얼굴까지 붕대로 감아놓은 그의 모습은 확실히 사람들에게 친근하고 익숙한 모습을 아니리라.
짤그랑- 짤그랑-
발이 푹푹 잠겨 걷는 사람의 진을 빼놓기로 악명 높은 사막의 뜨거운 모래 위를 너무도 태연자약하게 걸어가는 그에게 뜨겁게 내리쬐는 사막의 태양빛조차 아무런 힘도 못쓰고 있는 듯 보였다.
후드모자가 달려있는 얇고 붉은 남방에, 바짓단 부분이 볼썽사납게 찢겨진 남색 7부 바지에 뭔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허름한 가죽 벨트까지. 자세히 보면 그의 오른쪽 손목에 팔찌처럼 보이는 쇠고리가 달려있음을 알 수 있으리라.
짤그랑- 뚝.
그렇게 하염없이 걷기만 할 줄 알았던 그가 돌연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곤 아주 조심스럽게 몸을 굽혀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그는 왼손을 천천히 바닥의 모래 위에 올려놓았다.
“오는가.”
소름끼칠 정도로 착 가라앉은 음성. 흔히 만화 같은 곳에서 악당들이 가질 법한 그런 음산한 목소리를 가진 그는 조심스럽게 왼손을 거둬들였다. 그러곤 자신의 오른손목에 매여 있는 쇠고리를 만지작거렸다.
붕대로 가려 보이지 않던 그의 두 눈에서 아주 희미한 푸른색 안광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여전히 소름끼치는 음성으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다섯…넷…셋….”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다섯의 숫자를 거꾸로 중얼거린다. 그 숫자가 점차 일에 가까워질수록 그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안광의 세기가 강해졌다.
“…둘…하나.”
순간 그의 발 밑. 정확히는 그가 딛고 있는 모래바닥 전체가 요동치며, 뭔가가 엄청난 기세로 튀어나와 남자를 덮쳤다. 너무도 거대한 무언가가 사방에서 튀어나와 그를 조여들어갔고, 남자는 곧 그것이 하나의 ‘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콰과과과-!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가 모래를 박차고 튀어 오르자 잔잔히 가라앉아있던 사막의 모래가 사방으로 터져나간다. 흡사 지진과도 같은 진동과 소음이 조용한 사막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그리고 그런 재앙의 한 가운데에서 남자의 안광은 더욱더 스산하게 빛났다.
그으와아아아!
서로 다른 여러 마리의 짐승들의 울음소리를 섞어 놓은 것 같은 괴기한 울음소리와 함께 괴물의 아가리가 빠르게 닫혀 들어왔다. 남자는 점차 좁아지는 자신의 머리 위를 쳐다보더니 오른손을 위로 쳐들었다. 그러곤 살며시 주먹을 말아 쥐었다.
쿵!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가 완전히 닫혔다. 놈은 오랜만의 먹이에 기분이 좋은 듯 천천히 뚫고나온 모래바닥 속으로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놈의 몸체가 모래 속으로 파묻히는 동안에도 사막의 모래는 쉴 새 없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쿵!
순간 괴물의 움직임이 멎었다. 놈이 가지고 있는 수십 개의 눈동자가 맹렬히 회전을 시작한다. 놈은 지금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알았고, 또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이 너무나 늦은 때임 역시 알 수 있었다.
쿵!
또다시 둔탁한 진동음이 울린다. 그리곤 점차 괴물의 머리 부분이 부풀어 오른다. 바람을 넣기 시작한 풍선처럼 이라기보다, 마치 안쪽에서 뭔가가 표면을 밀고 있는 것처럼 기괴하게 부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이 갑자기 뚝 멎을 즈음.
고문사슬 : 장미가시
콰차차차차차차!
괴물의 머리를 뚫고 엄청난 숫자의 가시 돋친 쇠사슬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간다. 너무도 끔찍한 상황에 괴물은 이미 목숨이 끊어진 상태였고, 가시사슬들은 그런 괴물의 머리를 완전히 ‘부숴’ 버렸다. 머리가 사라진 괴물의 몸뚱어리는 그대로 모래사장 위로 무너졌고, 그곳에선 새하얀(?) 핏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
남자는 그런 기괴한 핏물 속에서 걸어 나왔다. 신기하게도 그의 몸엔 단 한 방울의 피조차 묻지 않았고, 상처 또한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몸을 탁탁! 가볍게 털곤 쓰러져있는 괴물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도감등록.”
그가 중얼거리자, 그의 앞으로 직사각형의 반투명한 유리창 같은 것이 나타났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 창을 몇 번 슥슥 움직이더니, 이내 쓰러져있는 괴물의 시체에 그 창을 갖다 댔다. 그러자 그 창에서 한 줄기의 초록빛이 뻗어나가더니 괴물의 시체를 그대로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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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안광마저 사라진 남자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곤 그 창을 없애버렸다. 그는 방금 전까지 거대한 괴물의 시체가 있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려 걸음을 옮겼다.
“….”
그의 안광이 옅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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