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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소설 - cat o nine tail
게시물ID : readers_151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금이짜다
추천 : 5
조회수 : 563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08/23 06:32:18


하린의 경우. 1


그런 얘기 들어봤어?

고양이 목숨이 아홉 개라는 이야기

 

아홉 개의 시간

아홉 개의 추억

아홉 개의 목숨

 

모두 너를 위해 바쳤어

 

…….”

 

빗줄기가 후두둑하고 편의점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분명 일기예보에는 비가 온다는 얘기가 없었고, 나는 당연히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젠장…….”

 

한숨과 함께 욕지기가 올라왔다. 비가 오는 날은 정말 싫다. 우산을 써야하는 상황도, 우산을 씀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것도, 신발이 젖는 것도, 게다가……. 큰 일이다. 분명 아침에 빨래를 널어놓고 말리기 위해 창문을 열어놓고 나왔다. 정말이지 맘에 드는 게 없다. 물론 편의점 알바생이 우산 구하는 것 쯤이야 일도 아니겠지만, 내 알바비는 반 년을 넘게 일 했음에도 최저시급을 살짝 웃도는 정도, 자취생에게 비닐 우산 하나는 굉장히 타격이 크다. 무려 라면이 두 봉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 ‘딸랑.’

 

편의점 문이 열렸다. 흰색 와이셔츠에, 검정색 플레어 스커트, 플랫 슈즈가 잘 어울리는 키가 큰 여성이었다. 들어오자마자 머리에 맺혀있는 빗방울들을 털어내며 말했다.

 

아이스 블라스트 하나, 우산은 어느 쪽에 있어요?”

 

비가 온다는 얘기가 없었어서,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나는 창고에서 우산을 꺼내와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아이스 블라스트 하나, 우산 하나, 5700원입니다.”

 

혹시 이 앞의 고양이, 여기 자주 오나요?”

 

?”

 

고양이라니 금시초문이다.

 

환풍기 아래에 있던데…….”

 

딸랑, 하며 여자는 문을 열고 나섰다. 고양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일까……. 그러나 생각은 오래 가지 못 했다. 예상치 못 했던 소나기에, 다들 우산을 사러 오느라 갑자기 바빠졌기 때문이다. 어느새 시간은 지나 새벽 3, 드디어 퇴근이구나. 교대를 하는 남자 알바생은 굉장히 부지런한 편이라 교대는 항상 제 시간에 이루어졌다.

 

그나저나 하린씨 고양이 좋아해요?”

 

?”

 

그제야 아까 키 큰 여자 손님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니, 환풍기 밑에 고양이가 있길래……. 길고양이는 아닌 것 같고, 주인이 있던 고양이 인 것 같은데 버려진 것 같더라구요.”

 

……. 그래요?”

 

평소에는 말도 안 걸던 남자였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하던 말을 찾던 중에 남자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가 키웠으면 좋겠지만, 주인집 아주머니가 동물을 안 좋아하셔서, 하린씨가 생각 있으면 데려가보는 건 어때요? 고양이치고는 사람을 잘 따르던 것 같은데.”

 

동물이라면 질색이다. 아니, 동물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반려 동물이라는 존재가 싫다. 언젠간 떠나보내야 할 존재라니, 만나기도 전에 이별을 생각하는 그런 만남은 싫다.

 

한 번 생각해볼게요.”

 

짧게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편의점을 나섰다. 주륵주륵, 비는 여전히 오고 있었다.

 

고롱고롱.

 

무언가 숨을 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을 때 거기엔 사람들의 말 대로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아이보리색 몸통, , , , 꼬리가 초콜릿 빛으로 물든 유려한 몸을 가진 고양이 한 마리가 환풍기 아래 쪼그려 앉아 허연 입길을 뿜어대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빨려 들어갈 것 만 같은 신비한 색감을 가진 파란 빛 눈. 나는 실제로 그 눈에 매료되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푸근하고 그리운 눈, 시간이 정지 된 것만 같다.

 

미야옹.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착각이었을까 잠시 웃은 듯 보였다. 고양이는 환풍기에서 사뿐사뿐 걸어나와 나에게 다가왔다. 비를 맞아 쫄딱 젖은 모습과는 대조되게 굉장히 기품있는 발걸음, 고양이는 내 발치에 다가와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웃었다 분명히.

 

드디어 만났어.

환청? 순간 남자의 미성이 귓가를 간질였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새벽이었기에 술에 취한 남자 몇이 벤치에 앉아 떠들고 있을 뿐이었다. 계속 두리번거리다 발치를 바라보니 고양이가 내 다리에 자신의 몸을 부비고 있었다. 고양이가 원래 이렇게 애교가 많은 동물이었나?

 

미안해…….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어서 널 데려갈 수가 없네?”

 

내 말을 이해할 리는 없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나는 쪼그려 앉아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신기하게도 고양이는 알아들었다는 듯, 작게 소리를 내었다. 일어나서 편의점 문을 열고 다시 들어갔다.

 

, 하린씨 어때요? 굉장히 귀엽죠?”

 

나는 대답하지 않고 참치 캔을 하나 사서 계산대로 가져갔다.

 

키우시려고요?”

 

아뇨, 자취생에게 애완동물은 사치에요…….”

 

, 그래요…….”

 

- 삐빅.

 

“3400원이에요.”

 

고양이는 확실히 말을 알아들었었는지 편의점 문 앞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앉아 있었다. 나는 힘겹게 참치 캔을 열고 기름을 따라 버린 후 고양이 앞에 가져다 두었다. 고양이는 허기가 졌었는지, 참치 캔에 코를 박고는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나는 고양이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준 후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고양이는 내가 움직이자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자길 데려 가달라는 듯 했지만 애써 못 본 척 무시했다.

 

집으로 돌아와 물기를 털어내고 보일러 전원을 돌렸다. 보일러가 돌아가고 나는 젖은 옷가지를 다시 세탁기에 넣은 후, 화장실로 향했다. 수도꼭지를 돌리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듯한 물이 몸을 적셨다. 몸 안 쪽부터 열기가 퍼지는 듯 했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샤워를 마친 후 타올로 물기를 닦아내고 로션을 바르고 잠옷을 입은 뒤 노트북에 전원을 넣었다. 불 꺼진 방 안에 파란 화면이 확 하고 켜진다. 눈이 시리지만, 불을 켜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항상 이래왔으니까 달라질 필요는 없다. 딱히 할 것도 없다. 버릇처럼 노트북에 전원을 넣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정보, 가벼운 웃음을 유발하는 글 들을 보다 졸리면 잠이 든다. 대학교 3학년 방학, 2학년 때 기숙사에서 떨어진 후 자취를 시작하고 휴학 없이, 여태 별 탈 없이, 반복 되어온 일상 이었다. 앞으로도 별 탈 없이 학교를 졸업하고, 별 탈 없이 직장에 출근하고, 별 탈 없이 결혼을 하고, 별 탈 없이 아이를 키우고, 별 탈 없이 눈을 감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아까 마주친 고양이의 눈이 아른거린다. 그 눈 어디선가 본 적이 있던가……? 빗물이 창을 두들긴다. 내일을 위해선 자야 한다.

 

다음 날 아침, 햇빛이 눈꺼풀 안 쪽을 세차게 찌른다. 더 자고 싶은데, 라는 생각에 이불 속에서 한 시간 가량을 뒤척였다. 오후에 시작되는 편의점 알바 이 외에는 별 다른 스케줄은 없다. 대학을 3년간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그 와 중에는 남들도 다 사귀어 본 남자 친구도 둘이 끼어있었다. 이제 주변에 남은 친구는 많지 않다. 대학가에서 만나는 인연이 거진 그렇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남자 동기들은 군대를 다녀 온 뒤에는 새내기 꽁무니 쫓기에 바쁘고, 여자 동기들은 서로 학점관리며, 스펙 쌓기며 취업 준비하기에 바쁘다. 나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이번 방학에는 무언가 지친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자격증 공부도, 영어 공부도 그만 두었다. 다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다. 하지만, 여섯 살 터울인 남동생의 학비를 생각하면 어서 졸업하고 부모님 짐을 덜어 주는 것이 낫겠다 싶어 그러지도 못 한다.

 

 

 

커피 포트에 물을 올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간단하게 세안을 마치고 노트북에 전원을 넣을까 하다가, 왠지 모르게 책이 읽고 싶어 책장을 훑어보았다. 세달 전 쯤인가 읽고 싶어 사둔 책을 과제와 시험에 치여 반도 못 읽고 내려놓았던 것이 생각났다. 책을 집어 들고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가져와 침대 옆에 두었다. 반쯤 누운 자세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으음……?”

 

어느새 잠이 들었나 보다. 알람소리에 나는 기지개를 펴고 아르바이트를 갈 준비를 했다. 대충 세수를 하고 기본적인 화장을 하고, 편한 복장으로. 나가기 전에 쓰레기를 가지고 나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집 앞 분리수거 함에 쓰레기를 모두 정리 한 뒤 편의점으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미야옹.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어제 본 그 고양이인가 싶어서, 돌아보았으나 그냥 집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길고양이였다. 그럼 그렇지,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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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경우. 1

 

처음 죽었을 땐 그저 모든 것이 신기했다. 고양이 목숨이 아홉 개라는 것은 들어봤지만 그게 정말일 줄이야. 첫 번째 죽음은 그녀의 품 안 이었다. 눈을 감았다 다시 뜨는 순간 나는 그녀의 품을 떠나있었다. 그저 새하얀 공간, 죽는 순간 몸을 적시던 그녀의 눈물의 따스함이 아직 털을 적시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감상에 젖어있을 때 따스한 빛 무리가 내게 다가왔다. 그 존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신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라고 느꼈다. 그러자 머릿속에 그대로 꽂아 넣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가지를 설명해줬지만 중요한 것들만 요약하자면, 첫 번째 나는 고양이로서 부여받은 목숨 중 하나를 잃었다. 두 번째 환생의 때는 선택이 가능하다. 세 번째 전생의 기억은 유지된다. 네 번째 섭리에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원하는 요구는 받아들여진다. 나는 네 번째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녀의 환생 주기를 알 수 있냐고 물었다. 웃긴 이야기지만, 나는 주제넘게도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가 여섯 살이 되던 해,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녀와 함께였다. 나는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신이라 생각되는 존재는 특정 인물의 환생 주기는 알 수 있지만, 그 인물을 찾아내는 것은 내 몫이라며, 자신은 그저 내 선택을 따라줄 뿐 환생 시에는 장소 등 부수적인 것은 자신이 간섭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해줬다. 환생한 그녀를 알아보는 것조차도 내 몫이고 내가 그 시대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몇 살일지, 어디에 살지, 심지어 성별이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덧 붙였다. 상관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그녀의 환생 주기마다 세상에 몸을 던졌다.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문제지만 그녀의 환생 주기는 불규칙했다. 500년이지나 환생을 할 때도, 3년 만에 환생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기를 몇 년이 지났을까. 이젠 셀 수 없다. 난 점점 지쳐갔다. 언제 쯤 널 다시 만날까. 사실 첫 만남이 어땠는지조차, 너와의 추억마저 흐릿해져가고 있다. 뜯어먹는 추억이 그나마 낙이었는데, 이제 그 추억마저 살이 다 발라내져 앙상한 뼈만 남은 생선마냥 초라하다. 공허함이 온 몸을 채워 그 뼈까지 우적거리며 씹어 삼키게 될까 두렵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었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여덟 번째 다시 빛 무리에 몸을 던졌다.

 

이번엔 어디로 떨어졌을까? 주위를 둘러보았다. 풍경만으로는 알 수가 없어,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익숙한 언어가 들려왔다. 여긴 한국이구나, 예전에 와 본 적이 있다. 굉장히 최근으로 기억하니 아마 여섯 번째였던 것 같다. 시대도 많이 지난 것 같지 않아보였다. 이 시대에 적응하는데 큰 힘을 들이진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처음 자동차라는 물건을 접했을 때의 충격을 떠올리자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잡생각을 떨쳐내고 발걸음을 옮겼다. 어떻게든 돌아다녀야 그나마 그녀를 만날 것 이라는 생각이었다. 근 백년간을 이렇게 소모해도 별 소득은 없었다. 하지만 이 방법 외에는 도리가 없다. 일단은 최대한 가까운 대학가를 찾아 돌아다녔다. 상대적이겠지만 경험상 20대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왜 인지 고양이에 대한 호감이 엄청났다. 대학가 인근 자취방이 몰려있는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는데 후두둑하고 비가 쏟아졌다. 운이 나빴다. 비가오는 날은 사람들이 잘 돌아다니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몸 챙기기에 급급해 나에게 신경 써주는 이가 드물다. 계절은 늦가을 재수 없으면 비 맞고 동사하기 딱 좋은 날이다. 나는 재빨리 몸을 움직여 가까운 편의점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환풍기가 설치되어있었다. 기분 나쁜 바람이지만 환풍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공기가 내 몸을 보호해주리라 믿고 환풍기 아래로 몸을 구겨 넣었다. 여러 사람이 지나갔다. 나는 혹시라도 그녀를 마주칠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을 기다렸을까, 편의점 문이 마흔 두 번째 딸랑하는 소리를 내던 그 때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 미야옹.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홉 번째 삶, 약 천 년의 기다림, 아흔 일곱 번째 나이를 먹던 그 날,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나는 그녀를 만났다.

 

- 드디어 만났어.

생선의 뼈에 살이 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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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른 말씀들이 없으셔서 일단 질러봅니다 ㅎ

보여주기위함이 아닌 자기 만족을 위한 글쓰기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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