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를 좋아해서 추리소설을 꽤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각각의 등장인물을 입체적으로 잘 그려내는 미야베 미유키는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읽다가 고개가 갸웃해져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글을 쓰게 됐습니다.
제가 의문을 제기한 것은 그녀의 역사관입니다.
혹시 그녀의 작품인 <가모우 저택 사건>을 읽어보셨나요?
대충의 줄거리는,
1994년, 주인공 다카시가 대학입시를 위해 도쿄에 왔다가 호텔에서 화재에 휩싸이게 됩니다.
위기의 순간 미스터리한 남자에 의해 구해집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58년 전
전쟁을 일으키기 직전의 일본입니다. 현재의 호텔은 가모우 노리유키 대장의 저택이었고요.
미스테리한 남자는 시간여행자였던 겁니다.
마침 그날 가모우 대장이 자결하고 다카시는 가모우 대장의 자결이 수상하다고 생각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타임슬립을 다뤄서 그런지 작품은 호불호가 갈리더군요.
그녀의 다른 작품보다 재밌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읽다가 이런 대목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을 바꾸지 않으려는 시간여행자에게 다카시가 따지자
시간여행자의 입을 빌려 미야베 미유키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을 바꾸어 봤자 결국 다른 방식으로 일어나고 만다.
사건은 그냥 일어나는 게 아니라 큰 줄기의 흐름 속에서 그 일이 일어날 만한 상황이 되어서 일어나는 것이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도 일본의 자의라기보다 역사의 의지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럴만한 상황이 됐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막을 수 없는 일이다, 라고요.
정확히 이렇게 쓰인 건 아니고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 전범인 도조 히데키에 대해 이렇게 서술합니다.
(※스포주의)도조 히데키는 가모우 노리유키처럼 시간여행자의 능력을 빌려 미래를 내다보고 새치기하지 않았다.
(가모우 노리유키는 전쟁이 일어난 미래를 보고 전쟁을 막으려고 했음) 시대의 현장에서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았다.
결국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지만, 적어도 역사 앞에 서서 자기 잘못을 변명하려 들지는 않았다.
사형을 선고하는 재판관의 목소리가 헤드폰을 통해 들려오는데도 표정은 냉정함을 넘어 무관심에 가깝다 싶을 만큼 평온하고 맑았다, 라고요.
전범을 옹호하는 것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분명 동정어린 시선으로 호의적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설을 읽고나니 그녀의 단편집인 <쓸쓸한 사냥꾼>의 한 대목도 생각이 났습니다. <무정한 세월>이라는 단편에 나오는데요,
'천구백사십오년 삼월 십일의 대공습은 불과 두 시간가량 사이에 스미다가와, 아라카와, 에도가와에
둘러싸인 도쿄의 저지대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었고 팔만 명의 희생자를 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연히 희생자는 모두 일반 서민들이었고 전쟁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중략)... 이 지역을 둘러싼 '불의 고리'를 만들고 퇴로가 막힌 사람들이 피할 곳도 찾지 못해 허둥대고 있는 곳에
일 제곱미터에 세 개 이상의 폭탄을 투하한 엄청난 공습은 '잔인하다'는 비난을 받아도 별 도리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미국의 공습을 지나치다고 질타하며 일본을 피해자의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쿄 대공습을 이야기하며 물려주는 모임'이라는 것도 소재로 쓰고 있습니다.
거듭되는 공습으로 많은 희생자가 나온 참사에 대해 알리는 것에 정부가 나서지 않으니 일반 시민들이 가르치는 모임입니다.
이 모임 역시 피해자 일본을 나타내는 모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인기도 높고 책도 잘 팔리는데 반해 그녀의 역사관에 대한 담론은 없는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독해력이 부족해서 책을 잘못 읽었거나 지나치게 민감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녀의 책을 읽어보신 다른 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