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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4-
게시물ID : panic_867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신주쿠요
추천 : 2
조회수 : 71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3/11 02: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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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의 여름이였다. 성훈이 미진이와 나는 그 무렵 새로운 놀잇감을 찾게 되었다.
 
장난전화를 하며 노는 것이였다. 그 때 당시 [용궁반점 장난전화] 플래시가 큰 유행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교가 끝마치면 동사무소 앞의 공중전화기 부스에서 접선을 했다.
 
공중전화 부스에 있는 전화기와 전화번호부는 우리에게 아주 좋은 장난감이 되주었었다.
 
"세미네 집이죠?"
"니네 집엔 수세미도 없냐?"
 
이런 식의 얄미운 장난전화를 하며 우린 매우 즐거워했었다.
 
정도가 지나칠 때엔 다른 아이들도 불러모아ㅡ그 당시 아이들 사이에선 우리 덕분에 장난전화가 유행했다ㅡ 학교에다 전화를 걸어
 
선생님들을 골려주었다. 그 일을 주도했던 내 친구 성훈이가 정체를 들키기도 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장난전화 관련하여 아이들에게 많은 주의ㅡ혹은 협박ㅡ를 주었었다.
 
그 이후 성훈이와 미진이는 장난전화질에서 손을 떼었지만, 나는 장난전화 커뮤니티에까지 가입하여 열정적으로 활동하였다.
 
2.
 
그 해 여름에 우리동네에서 축제 같은 것을 열었다거나 그런 기억은 없다.
 
하지만 유독 그 해 여름 우리동네 어르신들이 술판을 많이 벌이곤 했었다.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밤이였다. 그 날 밤도 동네 어르신들은 이곳저곳에서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동네 가장 큰 공용주차장 옆에 조그마한 돌탁자, 돌벤치가 있는ㅡ공원이라기엔 뭐한ㅡ 공원. 저마다의 집.
 
그 밤 성훈이 미진이와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며 상황극 놀이를 하였다. 성훈이 미진이의 부모님도 술자리에 가신 것이다.
 
어른들이 없으니 우리는 자유였다. 다른 친구들도 거리에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안주를 축내고 있는 모양이였다.
 
즐거웠다. 마치 방랑자, 떠돌이 음유시인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집집마다 불이 켜져있었고 거리엔 아무도 없었지만 동네는 꽤나 시끌시끌했다. 술을 마시고 어르신들이 언성을 높여가며 말씀을 나누시는 것 같았다.
 
한창 그렇게 동네를 이곳저곳 탐방하며 재미있게 놀고 있었는데, 성훈이가 손목의 시계를 보더니 벌써 12시라고 했다.
 
미진이는 조금 대담한 아이인데에 비해, 성훈이는 의외로 겁이 많았다.
 
키가 안 클 수 있다는 둥 이렇게 늦은 시간에는 밖에 처음 나와있어보는 아이 같았다.
 
더 놀고 싶었지만 워낙에 완강한 성훈이 덕분에 나도 붙잡지는 않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오니 몹시 쓸쓸해지고 말았다. 집엔 아무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부엌에만 불이 켜져 있었고, 모든 방에는 불이 꺼져있었다. 아무래도 은우누나와 엄마 아빠 모두 술자리에 간 것 같았다.
 
약간의 배신감이 느껴졌다. TV를 켜보니 나이트라인 뉴스가 하고 있었다.
 
잠깐 동안 멍하니 보고 있다가 밖에 나가기로 했다. 집에 혼자 있는다는 것은 너무나 지루한 일이였다.
 
중력에 이끌리듯 동사무소 앞 공중전화 부스로 향하고 있었다. 불이 켜진 가게는 없었고 동네도 이젠 조용해졌다.
 
어르신들도 이젠 많이들 취하신 모양이였다. 난 공중전화 부스에 도착했다.
 
동사무소 쪽은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였으나 조금 매섭게 불고 있어 추운 느낌이 들었다.
 
무척이나 어두웠고, 가로등 불빛 하나에만 의지할 수가 있었다.
 
괜히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맘같아선 동사무소와 가까운 성훈이네 집에 쳐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집에서 가지고 온 교회 주보에 적힌 뵌 적 없는 장로님의 전화번호를 보니 계속 웃음이 나왔고, 기대감이 커졌다.
 
나는 공중전화기에 백원짜리 동전을 2개 넣었다. 그 때 소리가 휘이이 들릴 정도로 엄청난 바람이 불었다.
 
만화 속에서나 듣던 그런 소리였다. 놀라 뒤를 한번 쳐다본 뒤 다시 전화기 쪽으로 눈을 돌렸다.
 
공중전화기엔 빨간색 숫자 0이 보여지고 있었는데, 내가 동전을 두 개 넣자 숫자들이 바뀌었다.
 
44444444444
 
빨간 색 4로 가득 찬 화면이였다. 그대로 놀라 몸이 굳었다.ㅡ나는 평소 4라는 숫자를 매우 두려워했다ㅡ
 
이 곳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대로 몸이 굳어 일단 전화를 끊었다.
 
숫자가 사라지는 것 처럼 보이더니
 
00000000000
44444444444
 
그제서야 나는 도망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내 뒤로는 계속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울릴 리 없는 공중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그 날 밤 내내 나는 고열을 앓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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