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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 깨진 유리구두
게시물ID : readers_151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금이짜다
추천 : 1
조회수 : 48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8/24 03:06:43

깨진 유리 파편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수십 개의 반사광을 이룬다. 언어 그대로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그 주변 검붉은 강이 흐른다. 어우러져 몹시도 퇴폐적인 느낌이 들지만, 사람들이 왜 팜므파탈, 옴므파탈에 열광하겠는가?

 

나름대로 황홀하다. 그 안에 그녀가 누워있었다. 몹시도 아름다운.

 

 

 

왕궁은 한 동안 난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왕자의 부인이 죽었으니까. 왕궁의 시녀들에게는 좋은 화젯거리였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있던 그녀가 자의적으로 죽음을 택했으니 그 이유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다.

 

왕자의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향했다느니, 왕녀가 병에 걸렸다느니, 사실은 암살을 당하고 위장을 한 것이라느니…….

 

그녀와 가까이에 있던 나조차도 그녀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모르겠으니.

 

 

 

그 후 몇 년이 지났을까…….

 

인간의 시간이란 요정에게 덧없다. 왕자는 다른 국가의 공주를 새로운 왕녀를 맞이하고, 왕궁 시녀들 사이에서 전 왕녀의 죽음이 점점 흥미롭지 않은 주제가 되고 있으니 아마도 3년 내지 5년이 지나지 않았을까? 나는 그녀의 방을 찾았다. 왕자가 그녀에 대한 마지막 예로 이 방과 그 안에 있는 그녀의 모든 추억을 남긴다하였지만, 새로 맞아들인 왕녀의 질투 가득한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남은 그녀의 흔적조차 사라질 것이다. 방문을 여니 삐걱하고 울음을 운다. 방안엔 호화로운 가구들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방 안을 빙 둘러보았다.

 

넓은 방에서 혼자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어쩌면 혼자 쓰기엔 너무도 넓은 이 방의 외로움이 그녀를 자살에 이르게 한 것은 아닐까?

 

그녀는 왕궁에 온 뒤 왕자와 나 말고는 딱히 친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혹시나 그녀와의 추억거리가 남아 있을까 하여 화장대를 열어보던 중 두 번째 서랍 깊숙한 곳에서 곱게 접힌 종이를 발견하였다. 나는 접힌 종이를 펼치고 써진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 안에는 놀라운 내용이 적혀있었다.

 

 

 

호화로운 욕탕 안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따듯한 물속에 최고급 입욕제를 풀고 몸을 담구었다. 내 주위에는 내 시중을 들기 위한 시녀가 줄줄이 서있다. 정말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젠 이 생활에 완벽히 적응하고 있다.

 

- '아아, 정말이지 사람일은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닐까?'

 

목욕을 마치고 욕탕에서 일어나니 시녀들이 황급히 내 앞으로 다가와 몸의 물기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송구스러울 정도의 사치다.

 

물기를 닦아내고 오일을 바른 뒤 가운을 입었다. 물론 두 동작 모두 시녀들이 알아서 해주고 나는 최소한의 몸동작만을 취했을 뿐이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나를 이 자리에 올라올 수 있게 해준 그녀가 내 옆으로 날아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그녀를 나의 보좌로 임명하는 것이 왕궁에 온 뒤 맨 처음으로 왕자에게 부탁한 것이다. 그는 흔쾌히 승낙하였고 그녀도 거절하지 않고 지금까지 날 살펴왔다.

 

 

 

- "무도회를 참석하셔야합니다. 왕자님과의 식사가 예정되어있습니다……."

 

 

 

분명 궁에 오기 전에는 나의 이름을 부르며 친근하게 대했던 그녀였지만 내가 왕녀의 자리에 오른 뒤에는 꼬박꼬박 존댓말과 존칭을 사용한다. 뭐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그녀의 그러한 행동은 내가 높은 자리에 올라왔음을 더욱 실감하게 해준다.

 

 

 

- "그나저나 무도회라니, 드레스를 살펴보아야겠는걸."

 

내가 그렇게 말하자 시녀들은 재빨리 드레스 룸에서 내가 자주 입는 옷들을 꺼내와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양손에 한 가득 드레스를 들고 있지만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그럼 감히 누구 앞인데……. 나는 입을 옷이야 말하기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시녀들의 진땀 빼는 모습이 재밌어, 몇 번이고 다른 옷을 외쳤다. 결국은 화려하기 짝이 없는 코발트블루의 드레스를 고르고 구두는…….

 

 

 

- "역시나 고민할 필요 없이 유리 구두겠지요? 왕녀님께서는 그 구두가 제일 잘 어울리시지 않습니까."

 

옆에서 시녀장이 눈치 없이 끼어든다.

 

 

 

- "감히 주제도 모르고 참견하느냐?’"

 

호통에 시녀장은 고개를 조아린다.

 

 

 

-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나는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 "그럼 구두는 유리구두로 준비할 수 있도록."

 

이라 명하고 주위를 살폈다. 오늘 새로운 시녀가 들어왔단 이야기를 들었다. 새로 들어온 시녀들은 왕궁에서 일한다는 기대감에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많아 애초에 주제파악을 시켜줄 필요가 있다.

 

 

 

- "오늘 새로 들어왔다는 시녀는 어디에 있느냐?"

 

나의 말에 시녀장 옆으로 한 아이가 재빨리 다가섰다.

 

 

 

- "안녕하십니까? 왕녀님. 오늘부터 왕녀님의 시중을 들게 되었습니다. 제 이름은……."

 

- "네 이름 따위 알고 싶지 않다. 다만 결례가 되는 행동을 했을 경우 가차 없이 네 목을 칠 것이니 그리 알도록."

 

- " 알겠사옵니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새 시녀는 놀랍도록 과거의 나의 모습과 닮았던 것이다. 짜증나는 과거가 생각나 나는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새 시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그녀가 나의 보석함을 운반하던 중 떨어뜨린 것이다. 나는 노기에 서린 목소리로 외쳤다.

 

 

 

- "네 년이 결국 일을 치르는구나!’"

 

시녀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떠는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몇 마디 더 쏟아 붙이려는 찰나,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 ‘도대체 네 년이 잘하는 것이 뭐니!’ ‘네가 내 동생이라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야!’

 

 

 

- '그만, 그만해. '

 

- "그만!"

 

 

 

나의 절규에 보석함을 치우던 시녀들이 놀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 "되었으니 그만두고 다들 나가도록 하여라!"

 

- "‘왕녀님, 하지만……."

 

- "나가라는 말이 들리지 않느냐!"

 

 

 

나는 소리쳤다. 어지럽다. 넓은 방안에 혼자 남았다. 아아, 이게 무슨 일인가. 이제야 뒤돌아보니 이 호사스러운 삶에, 누군가를 부림이 익숙해진 이 삶에 나는 내가 제일 혐오하던 이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다. 역겹다. 위장이 뒤틀리고 욕지기가 올라와, 나는 그대로 화장실로 향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내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화장실의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 내가 입을 움직였다.

 

 

 

- ‘과거에 대한 보상이니 마음껏 즐겨, 너는 저런 미천한 인간들과는 달라. 이제 넌 왕녀라구!’

 

 

 

무서웠다. 나는 그 뒤로 최대한 과거의 모습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모든 것이 허사였다. 한 번이라도 맛 본 상류층의 달콤함은 마약처럼 내 몸속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빠져나올 수 없었다. 더욱 더 시녀들을 모질게 대하기 시작하였고 그럴수록 자기 혐오감은 커져 내 몸을 휘감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도대체 무얼 하고 싶은 것인가? 이 삶을 지속하고 싶다. 도저히 이 달콤함을 버릴 수 없어. 자기혐오와 욕구가 지속적으로 교차했고 내 정신은 피폐해져갔다. 피폐해진 정신은 생활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음식을 넘길 수가 없었으며,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역겨워 거울을 수 차례 깨버렸다.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 '애초에 그녀는 왜 내게 호박 마차와 드레스를 제공했지?'

 

- ' 왜 열두시가 지나도 유리 구두는 없어지지 않았지?'

 

- '도대체 왜! 내가 이따위 삶을 겪게 만드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더욱 더 무서워졌다. 도대체 내가 지금 누구를 원망하고 있는거야. 그녀는 날 도와줬을 뿐이야.

 

 

 

- '하지만…….'

 

- '만약에…….'

 

- '유리 구두가 사라졌다면 난 이런 고민을 할 필요조차 없었을 텐데.'

 

 

 

나의 상징, 이 나라의 왕녀의 상징. 이 불 꺼진 방에서 영롱하게 빛나고 있구나.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너무도 무서워. 마치 날 비웃는 것 같아.

 

 

 

- 쨍그랑!

 

나는 그 악마를 집어던졌다. 부서진 파편이 더욱 더 빛난다. 나는 그 것을 손에 쥐었다. 손아귀에서 조차 빛을 잃지 않는구나. 어찌나 꽉 쥐었는지 손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개의치 않다. 아아, 모든 것은 너로부터 시작되었고 이제 너로서 막을 내린다. 나는 손목을 그었다.

 

 

 

- ‘내 이름은 신데렐라. 신분 상승의 대표적이며 가장 성공적인 삶을 얻었다.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는 제2, 3의 신데렐라는 만들지 않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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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 o nine tail (1) - http://todayhumor.com/?readers_15148 

cat o nine tail이 아직 쓰는 중이라서 예전에 단편으로 썼던 글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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