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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6-
게시물ID : panic_867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신주쿠요
추천 : 2
조회수 : 63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3/13 02: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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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
 
초등학생이였을 무렵 내가 살았던 동네는 그런 동네였다. 살고 있는 사람도 적은 형편이였고, 모든 이웃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존재들이였다.
 
한밤중엔 숨막힐 정도의 정적이 감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정적은 조용했다기보다 정말 시끄러울 정도였다.
 
이명을 동반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누군가에게 그 정적을 꼭 들려주고 싶었다. 그 정적은 마치 그곳에서 보냈던 나의 유년시절 이야기 같았다.
 
지금 그 동네는 그저 서울의 끝에 위치한 어느 촌동네에서, 꽤 이름 떨치는 신도시로 탈바꿈한 상태이다.
 
원래 그린벨트였던 우리동네가 갑작스레 재개발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는 모두가 혼란스러워했고 언제나 한산했던 동네가 시끌시끌해지기도 했었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돈 몇 푼을 억지로 받고 우리터에서 쫓겨나 가까운 다른 동네 혹은 더 먼 변두리로 이사를 가게 되어야 했다.
 
그 때를 회상해보면 꽤 흥미로운 일들이 더 있기도 했었던 것 같지만 조금은 밍밍하다는 느낌이 드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지금도 확실하게 허송세월이였다 말할 수 있는 중학생 시절을 넘어 열일곱에 학교를 자퇴하고 홈스쿨링을 하던 때의 이야기이다.
 
2.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벌써 오륙년이 다 되가던 해 였다. 우리집은 반지하였고 난 여전히 우리집을 부끄러워 했다.
 
동급생들 사이에서 반지하에 사는 아이들을 배척하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런 움직임을 몰랐던 1년을 제외하고 거의 사오년을 우리집 대문으로 드나들지 않고 우리집 바로 옆의 집주인 집 건물로 들어가ㅡ이 건물은 대문이 멋
있었다ㅡ 반지하 창문으로 우리집에 드나드는, 그런 식이였다. 가끔 은우누나가 그것을 보고 놀리기도 했고 부모님은 가끔 내 탓을 하라 하셨던 것 같
다.
 
철이 없어서 그랬던 지 미안하다거나 그런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에 집에 큰 물난리가 났었다. 비오는 날은 아니였다. 보일러 고장이였던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당신들이 아시는 맥가이버들을 모두 총동원해보셨지만 모두가 도움이 되질 않았다. 집주인 아주머니도 고뇌에 빠지셨다.
 
나는 우리집 강아지 이쁜이를 데리고 3시간이나 산책을 다녀왔다. 어떻게 3시간이나 산책을 했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3시간이였다.
 
그렇게 3시간을 산책 후 집에 돌아와보니 역시 3시간 동안 고뇌하고 계셨던 집주인 아주머니가 대책을 내셨다.
 
옆 건물에 조금 더 넓은 반지하방이 있는데, 거기서 살아보시라는 것 이였다.
 
부모님은 아주머니의 말씀에 모두들 오케이하셨다.
 
나는 속으로 만세를 열 번이고 외쳤다. 반지하 탈출은 아니지만, 멋진 새 집대문이 생긴 것이였다.
 
3.
 
집이 바뀌었다고 나의 생활이 달라진 건 아니였다. 나는 여전히 이 건물 대문으로 집에 들어와야 했던 것이다.
 
하여튼 우리 가족이 거의 공짜로 얻게 된 새 집에서 살게 된 지가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였다.
 
엄마께서 시루떡을 어디서 받아오시곤, 우리 가족이 살던 바로 전 반지하방에 한 모녀가 이사를 왔다고 하셨다.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가 반지하방에서 나오셔서 뵐 수 있었다. 할머니가 악수를 청하셔서 난 머쓱해하며 할머니의 손을 잡아 악수했다.
 
할머니의 딸은 그 날 보지 못했다.
 
단 그 여자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그 여자가 이사 온 그 날 내내 괴성을 질렀기 때문이였다.
 
4.
 
우리 가족이 이 집에 이사 온 지는 거의 2년이 되었고, 그 모녀가 우리 가족이 살았던 반지하방에 이사 온 지는 1년 정도가 된 무렵이였을 것이다.
 
그 1년 동안 동네에 소문들이 파다하게 떠돌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딸이 Y대를 나온 수재라는 소문, 할머니가 딸한테 맞으며 산다는 소문, 딸이 가끔 전라상태로 거리를 맴돈다는 소문 그리고 딸이 너무 똑똑해
서 미쳐버린 것이라는 소문 등 여러가지 였다.
 
사실 나도 그 중 두 가지는 목격한 것이 있었다. 할머니의 딸이 전라상태로 창 밖으로 나와ㅡ알다시피 반지하 건물에선 창 밖으로 나오기가 힘들긴 하다
ㅡ 이웃집 건물에다 똥을 누고 있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또한 이따금 그녀가 할머니를 때리는 것을 우리 엄마가 목격하기도 했다. 엄마는 가끔 그 집의 할머니와 김치나 먹을 것 등을 나누곤 했다.
 
그래서 그 집에 찾아갔을 때, 할머니의 얼굴이 푸르게 멍든 것을 보게 되거나 그런 것 등을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딸은 폭군이였고, 폭군인 딸을 할머니는 안쓰럽게 여기시는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이 잘못 키웠으니 자신이 거둬야 한다는 사명감처럼.
 
이웃들 모두가 마음씨 착한 할머니를 좋아했다. 이웃들은 할머니를 도와주었다. 이웃들의 신고를 받아 할머니의 딸은 정신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당분간 이웃들과 우리 모두는 밤마다 동네를 울렸던 그녀의 괴성을 듣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5.
 
동네가 너무 조용해진 나머지 옆집의 수상한 이웃들을 잊고 산 채 지내던 열아홉 여름의 끝자락ㅡ혹은 초가을ㅡ이였다.
 
나는 당시 미국드라마와 영국드라마에 푹 빠져 살았었다. 또한 영화도 좋아했다.
 
정확히 그 날 그 밤에 내가 어떤 드라마를 보았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드라마가 '스킨스'였으니 그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고
가정을 하겠다. 나는 사실 스킨스 때문에 그 나이에 담배를 배웠다 해도 무방할 만큼 외국 문화에 푹 빠져있었던 상태였다.
 
그 날도 스킨스를 보다 주인공들이 드라마 특성상 거의 3분 마다 한번 씩 태우는 담배때문에 나까지 너무 피우고 싶어 담배 한 까치를 가지고 밖으로 나
갔다.ㅡ담배는 홈스쿨링을 같이 하는 친구들과 함께 구하러 다니곤 했다ㅡ
 
밖에서 담뱃불을 붙이고, 우리 집의 멋진 대문 밖으로 나가려 했는 데 대문 밖에서 누군가 나뭇가지 같은 것을 끄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고개를 내밀고 슬쩍 봤더니 정신병원에 있는 줄만 알았던 옆집의 그 미친 여자였다.
 
약간의 쫄림이 느껴졌지만 그 순간 얼마나 패기있어보이고 싶었는 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난 당당하게 대문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그 여자를 쳐다보곤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려 곁눈으로 여자를 봤다.
 
그 여자도 나뭇가지를 끌며 이리저리 걷다가 그 자리에 멈춰서서는 나를 째려보았다.
 
째려보는 시선이 느껴지자 나도 그 여자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여자는 말없이 나뭇가지를 내려놓고 집으로 들어갔다.
 
희열이 느껴졌다. 잠시 동안 승리감을 맛보고 있었다. 그 소리가 들리기 전 까지는.
 
"찰랑찰랑"
 
부엌에서 칼을 찾는 소리였다.
 
"씨발!" 나는 담배를 그 미친 여자의 집으로 던져버리고 집에 들어와 문을 잠가버렸다.
 
6.
 
나는 운이 좋았는 지 안좋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 모녀의 잔인한 비극사를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볼 수가 있었다.
 
마음씨 착한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던 그 빙판길 사고를 목격한 것이다.
 
빙판길은 할머니의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나는 할머니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119 구급차가 마침 오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사고를 버티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또한 그 여자의 마지막도 지켜볼 수 있었다. 그 여자는 끝내 다시 정신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녀는 어쩌다 그렇게까지 미쳐버리게 된 것이였을까?
 
정말 너무 똑똑한 탓에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려서였을까?
 
그녀의 마음의 병이 속히 완치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할머니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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