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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7-
게시물ID : panic_867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신주쿠요
추천 : 2
조회수 : 105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3/14 00: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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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
 
한 해 전으로 돌아가 나의 18살 무렵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따금씩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진짜 인생의 시작은 18살 부터였다고.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때도 18살 그 무렵의 이야기를 자주 꺼내곤 한다.
 
항상 과거로 돌아간다면 난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다시 돌아간다면 그 때의 나처럼 되풀이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지워버리고 싶었던 해가 18살 그 무렵이기도 하니까.
 
이 이야기는 누군가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2.
 
그 때 당시 나는 정말 철없는 비행청소년이였다.
 
생각해보면 비행청소년이라기보다 속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였다.
 
사춘기는 누구에게나 올 수도 있는 거라지만 고등학교를 자퇴하게 된 원인인 심한 조울증 탓이였다.
 
그 두 증상이 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다고 나는 감히 말 할 수 있다.
 
그 당시 나에게는 두 가지의 세계가 있었다. 하나는 인터넷이였고 다른 하나는 대안학교 생활이였는데
 
결론적으로 대안학교 생활은 내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고 분명히 말할 수가 있다. 분명히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나는 대안학교로 인해 좋은 쪽으로도 바뀌어져 갔고, 좋지 못한 쪽으로도 바뀌어져 갔다.
 
짝사랑을 하게 된 것이였다. 더군다나 남자 선생님을.
 
대안학교 생활로 인해 나의 성정체성이 확립이 된 것이다. 또한 병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난 그 병적인 생각들을 어디에 풀지 몰라 인터넷에 마음껏 글을 썼다.
 
생각하고 있는 그런 글들이 맞다. 손발이 오글거리는 느끼한 문체의 저격글들이였다.
 
모두 그 남선생님을 저격한 것이 맞았다. 남선생님도 내 미니홈피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면 분명 자신을 향한 글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미니홈피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인터넷 공간을 찾아 그곳에선 새 자아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나의 새 자아들은 누가 봐도 정말 멋진 사람들이였다. 나는 그 자아가 되면 내 특유의 느끼한 문체도 조금은 자제를 할 수 있었고
 
그 공간의 모든 남성유저들 가운데서 외모도 가장 돋보이는 사람이였다.
 
그 때 내가 왜 그랬는 지 지금까지도 후회가 정말 많이 된다.
 
어쩌면 나는 그 남선생님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적어도 이 정도로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었나보다.
 
나는 인터넷 세상에선 끊임 없이 자아를 분열했고, 현실 세상에선 선생님에게 병적인 집착을 보였다.
 
멋진 자아가 있는 인터넷 세상에선 별 큰 일이 없었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 세상에선 병적인 집착 끝에 다리 위에서 뛰어내려
 
자살시도까지 한 못난 내가 있었다.ㅡ뛰어내린 이유가 꼭 선생님 때문만은 아니였다ㅡ
 
그 이후 내가 가장 많이 다니게 된 병원은 이비인후과가 아닌 정신병원이 되어버렸고, 더 이상 내 멋진 자아들도 멋진 모습만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되었었다.
 
느끼한 문체는 더 이상 숨겨지지 않았고, 더 이상 느끼함 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였다. 마음이 다친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대안학교도 띄엄띄엄 다닐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열여덟 열아홉은 그렇게 단조롭고도 다이내믹하게 흘러갔다.
 
3.
 
시간이 흘러 스물셋이였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사내친구들을 거의 만날 수가 없었다.
 
대부분이 입대를 했기 때문이였다. 이따금씩 휴가 나오는 친구들을 종종 보곤 했지만
 
역시 그 해 제일 많이 만났던 건 여자친구들이였다. 그들 중 한 여자친구와 있었던 일이다.
 
그 여자친구는 18살 한창 인터넷에서 활동할 때 인연을 맺었던 친한 누나였다.
 
그 누나와 채팅을 하던 당시가 조각조각 기억나기도 한다. 그 누나는 꽤 아는 게 많은 누나였는데
 
나는 그 누나의 빈틈이 보이기만 하면 지적질을 해보이곤 했었다. 하지만 당시 누나는 기분 나쁜 티를 내질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다가와주었고 그래서 나도 누나에게 마음을 열 수가 있었다.
 
당시 누나와 나는 서로를 많이 믿을만큼 친해져서 많은 것을 터놓고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무엇까지 이야기했는지는 역시 조각조각의 기억 밖에 없다.
 
주로 성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사춘기 때에는 늘 그런게 가장 이야기의 큰 화제이지 않나 싶다. 나는 늘 그랬다.
 
누나는 양성애자였고 첫사랑이 여자였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다.
 
나도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했겠지. 하지만 정말 어디까지 이야기 했는 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어떤 날은 누나와 오랜만에 문자메시지로 연락을 주고 받았던 날이였다.
 
한밤중 새벽이였던 것 같다. 둘다 정말 감성이 촉촉해져 있었다. 그래서 주제는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어릴 때의 누나와 나 이야기였다.ㅡ나는 열여덟살이였고 누나는 열아홉살 때의 이야기 말이다ㅡ
 
나는 시덥잖은 이야기를 할 때에는 주로 들어주는 편 인데, 감성적인 이야기를 할 때에는 내가 주도해서 이야기를 하는 편이였다.
 
하지만 이 때는 내가 조금 팔이 아팠었었나보다. 누워서 핸드폰을 들고 있자니 팔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가만히 들어주고 있어주며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누나가 갑자기 나의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인우야 너 그 그림 기억나?"
"어떤 그림?"
"네가 나한테 그려준 그림. 그 때 조금 충격 먹었었는데."
"왜? 무서운 그림이였어?"
"아니, 무서운 그림이였다기보다 너가 그 때 당시 힘들어하는 게 너무 느껴졌었어."
 
누나는 이윽고 그 그림을 말로 묘사해주었다.
 
이 이야기는 나는 모르지만 누군가는 알고 있는 그런 이야기이다.
 
정.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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