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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完-
게시물ID : panic_867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신주쿠요
추천 : 7
조회수 : 105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3/15 02: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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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
 
어렸을 때 영적인 존재들을 너무 동경해와서 남들이 겪기 쉽지 않은 일들을 내가 겪었다기엔 조금 억울한 면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 병이 하나 있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정신과에서 진단해 말해주길 나는 조울증이였으니까.
 
나는 종종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내가 겪었던 영적인 경험담들을 이야기해주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된 날엔 반드시 약이 한두알 더 처방이 됐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럴 때마다 의사 선생님이 어쩐지 미웠지만 이윽고 다시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제발 내가 신병을 앓고 있다 말해줘요" 라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선생님에겐 그저 반쯤 미쳐보였을 것이다.
 
이번에 풀어놓을 것들은 비교적 최근의 이야기와 현재의 내 이야기이다.
 
2.
 
스물셋 7월의 여름이였다. 당시 영화학도를 꿈꾸고 있던 나는 좋아하는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을 의무적으로
 
여러편 감상하고 있었다. 정확시 오후 2시 였던 것 같다. 그 시간부터 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라는 그의 대표작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 영화는 두 소년이 주인공이였는데, 어느 이혼한 부부의 아들들이였다.
 
엄마와 이혼한 아빠 그리고 아빠와 다른 동네로 떠난 형제와 같이 살게 되려면 지금 살고 있는 이 곳 동네의 화산이 폭발해서
 
그 덕분에 아빠와 형제의 동네로 이사를 가면 된다는 귀여운 내용의 영화였다.
 
오랜만에 집중해서 보게 된 영화였다.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다.
 
나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는 이상, 영화를 끊어서 보았다. 이따금씩 담배를 피우러 나가거나 밥도 먹고 그런 식이였다.
 
가슴을 찌르는 듯한 멋진 장면을 보고나면 잠시 영화를 끊고 담배를 피우러 나갔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영화에서 나오면
 
나도 밥을 먹었다. 그 날도 그랬다.
 
그러다 영화의 막바지가 다가왔다. 주인공 형제와 친구들이 소원을 이루어주는 전철역으로 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였다.
 
아이들은 각각 자신의 소원을 부르짖었다.
 
"배우가 될 수 있게 해주세요!"
"예뻐지게 해주세요!" 등등의 소원이였다. 주인공 소년이 빈 소원이 자세히는 기억 안나지만 아마 화산이 폭발하게 해달라고 했겠지.
 
그 장면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소원을 빌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였다.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귀에 따뜻한 숨이 느껴졌다.
 
"꺼거거거거거거거거거걱"
 
누군가 내 귀에 트림소리가 섞인 알 수 없는 말을 해대고 있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아왔다.
 
우리집 강아지 이쁜이는 나를 향해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저 녀석이 왜 그러는 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제발 짖지 않아주었으면 했다.
 
너무나 무서웠다.
 
이성을 잃은 나는 옷을 제대로 챙겨입지도 않고 이쁜이를 집에 남겨둔 채 먼 동네의 카페까지 방문해 피신했다.
 
귀신이 소원을 빈 것이였을까? 그 생각을 하니 다시 한번 소름이 끼쳤다.
 
그 날 밤 나는 가위에 눌렸다. 화산이 폭발하고 있는 크레파스로 그린 애니메이션이 꿈에 나왔고.
 
그 꿈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때 검은 머리의 빨간 누더기를 입은 여자가 쭈구리고 구석에 앉아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 여자와 눈을 마주쳤고, 즉시 몸이 굳어 움직이질 않았다. 그 여자는 나에게 다가왔고.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혀 가위를 풀기 위해 발악을 했다. 몸이 서서히 움직일 수 있게 되자 그 여자는 창문 밖으로 날아가버렸다.
 
3.
 
현재의 나는 예전보다 다이내믹한 일상을 보내고 있진 않다.
 
나의 일상들은 평소보다 더 많이 평범 혹은 단조로워졌다. 친구들과의 연락을 일체 끊고
 
집에서 책과 영화 그리고 게임 등에 빠져살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 받을 것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이런 상황들이 영적인 존재들을 더 이상 보게 되지 않을 계기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인간관계, 그리고 돈 문제, 그 외 많은 힘든 문제 속에서 헤매일 때엔 무속신앙에 기대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내가 힘든 것이 신병 때문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신병에 걸린 사람들은 무당이 되어야 할 운명이라 뭘하든 신의 방해를 받는다고 들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차라리 신병이었으면, 무당이 되어 돈이라도 많이 벌었으면 하는 절망적인 생각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내가 잘 될 수 있는 것도, 내가 잘 못 되어가는 것도 전부 내 탓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세상에 태어나 할 수 있는 일이 무당 밖에 없다니, 정말 재미없는 세상 아닌가하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나에겐 정신병원 동기들이 두 명이 있는데. 그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혹시 신기 있다는 소리 들어봤냐고, 그들이 말한 대답은 똑같았다. 우리 셋은 모두 짠 듯이 신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난 힌트를 얻었다. 영안이 트인다는 것은, 그와 연관된 정신병이 발병했다는 뜻 아닐까 생각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질 않았다. 종종 나는 약을 꼬박꼬박 잘 챙겨먹어도 영들이 보이곤 했고
 
또한 그것들은 의식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것도 아니였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 후 이 동네에 이사 온 지도 오래 되었다. 이 동네는 재개발 단지로 선정이 되었고 지금도 활달히 재개발 중에 있다.
 
재개발 중 잘려나간 나무들 덕분에 동네는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되었고 나는 여전히 이 동네에 살고 있다.
 
재개발 이후로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들도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그것을 영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난 그것들을 '헛것'이라 부르기로 하였다.
 
그나마 이중적인 의미가 담긴 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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