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투표가 아닌, 새 헌법을 논할 자격이 있는 국회의원들로 보선 투표를 해야 한다.
박근혜 탄핵안이 인용되자마자 새누리 출신 법사위원장이 개헌론을 들고 나오더니 어제는 더민주와 정의당을 제외한 3당이 대선 전 개헌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들은 1)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은 제왕적 대통령제라서 박근혜 최순실의 국기문란이 일어났고, 2) (그래서) 헌법을 개정해야 하며, 3) (그것도) 2달도 채 남지 않은 5월 9일 대선과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최순실이 구치소에만 있는 게 아니라 여의도에도 분신들을 남겨 두었네요.
자유당, 바른정당, 국민의당이 말하는 현행 헌법의 문제, 그것이 사실일까요?
알다시피 박정희의 유신 헌법은 희대의 악법이며, 개헌론자들이 말하는 제왕적 대통령에 정확히 해당하는 헌법이었습니다. 3권을 대통령이 모두 휘두를 수 있었고 연임 제한도 없어서 박정희가 종신 대통령을 꿈꿨었지요. 그 다음, 전두환의 5공 헌법은 무제한 연임을 7년 단임으로 바꾸기는 했으나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독재에 시달리던 국민들이 1985년 총선에서 집권 민정당 뿐만 아니라 사쿠라 야당 민한당을 심판하고 개헌을 요구했지만 전두환은 이를 묵살하고 호헌을 선언했습니다. 그 이후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저항은 더 거세졌고 결국 1987년에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은 현재의 헌법이 만들어 졌습니다.
현행 헌법은 국민이 주도해서, 아래로부터의 요구에 의해서 개정이 논의되었기 때문에 이전의 독재, 반민주, 반인권적인 요소를 없애고 3권 분립의 원칙에 충실하려는 노력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입법, 행정, 사법 3부의 어느 한 쪽이 국정을 쥐고 흔들 수 없고, 3자가 견제와 협조를 통해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든 헌법입니다. 그래도 국정 농단과 비선 실세 비리가 만연한 것은 대통령 권한이 너무 강한 제왕적 대통령제 헌법 때문 아니냐?
지금의 헌법으로 당선된 대통령은 노태우부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여섯 명입니다. 12.12 쿠데타 주역 중 한 사람인 노태우 조차도 재임 중이나 퇴임 후에 그런 소리 듣지는 않았습니다.
김영삼도 그랬고,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은 두 말할 필요가 없지요.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은 제왕은 커녕, 해야 할 일도 번번히 발목 잡기로 당해 갖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후 이명박부터 상태가 안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박근혜가 나쁜 대통령의 극치를 보여주었지요. 같은 헌법인데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요?
그것은 대통령 개인의 자질과 성향이 으뜸 원인이고, 그 다음은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차이입니다. 제왕 소리 안하는 전자의 경우는 여소야대 국회였던 경우도 있지만, 여당 내에서도 (국민을 위했든, 자신들을 위했든) 대통령을 향해 반기를 들었던, 들 수 있었던 때였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여당이 다수당이면서 여당은 오로지 거수기 역할만 했던, 내시 여당이었던 시기이지요. 결정적 차이는 이것입니다.
국정을 책임져야 할 여당이 대통령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No! 라고 했다면, 나라 꼴 창피하게 만든 지금의 참상은 없었습니다. 여당의 국회의원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고, 대통령의 심기만을 위한 정치를 했기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야당, 언론, 시민 사회가 비선 실세와 국정 농단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을때, 집권 여당이 이 사안을 정상적인 국회의원이 처리해야 할 프로세스대로 처리했다면 박근혜 정권 초기에 정리가 되었을 사안입니다.
박근혜가 참 나쁜 대통령이었다는 것은 불변의 진실이지만, 그 행태가 최근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집권당인 새누리당 의원들의 직무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을 뽑아준 국민들이 부여한 의무를 게을리한 바로 그 작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은 뉘우치지 않고 뜬금없는 헌법 탓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공범인 자기들이 더 많은 권력을 가지려고 개헌을 하자고 합니다. 새누리 출신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이런 행동은 역대급의 적반하장, 몰염치, 무책임, 무개념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음주 운전자가 사고를 내면 음주 운전을 말리지 않은 동승자도 처벌을 받습니다.
1) 운전자가 무면허로 음주 운전을 하다 대형 사고를 냈는데,
2) 옆에서 소주병 빨며 ‘누나 달려~~’ 하던 동네 양아치들이,
3) 운전자는 잡아 가든 말든 자신들은 아무 잘못 없고 차가 문제니까,
4) 폐차시키고 새 차 뽑아서 차 키를 (똑같이 무면허고 만취 상태인) 자신들에게 맡기면,
사고 없는 세상이 될거라고 우긴다면 어떻게 해 줘야 할까요?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고, 사리 분별을 할 수 있다면 새누리 출신들은 의원직 사퇴하는게 옳은 일 아닌가요? 그 입으로 헌법 고치자는 말을 한다는 게 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설사 정권이 바뀐 다음 개헌 논의를 한다고 해도 저런 자들에게 그런 중차대한 일을 맡길 수 있을까요?
이제 5월 9일 장미 대선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 날 대선 투표 외에 다른 투표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개헌 국민투표가 아니라, 국회의원 보궐선거 투표라고 생각합니다. 직무유기의 주범이자 헌법 위반의 공범, 방조자들을 모두 여의도에서 퇴출시키고, 새 헌법을 논의할 자격이 있는 새로운 사람들로 교체하는 국회의원 보궐 선거야 말로 장미가 피는 그 날 해야할 투표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초치기 졸속 개헌이 아닙니다. 최우선은 정권 교체이고, 그 다음은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정말 현재의 헌법을 개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충분히 검토하고 논의해서 올바른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은 각 구성원이 제 역할을 한다면 현재의 헌법을 그대로 두어도 별 문제 없다입니다.)
정 투표를 겹쳐서 해야 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장미 개헌이 아니라 장미 보선입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sunfull-movement/220959393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