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낙원처럼 보이는 스톡홀름이 실은 중과세에 찌든 사람들이 경제적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는 곳이라니...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스웨덴을 배경으로 한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라는 영화에도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리스베트가 미카엘에게 '나 돈 좀 꿔줘요'라고 하니, 그러지 뭐 하며 지갑을 꺼내들던 미카엘에게 리스베트가 '6만 크로나'라고 하니 미카엘의 얼굴색이 변하면서 그런 돈은 없다고 하지요. 그러나 해커인 리스베트가 '니 계좌에 8만 크로나 있는 거 다 안다 곧 갚겠다' 라고 하니 미카엘이 조금 고민하다가 '그러지 뭐'하면서 꿔주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40대 후반 또는 50대 초반의 성공한 언론인인 미카엘의 계좌에 8만 크로나가 들어있다고 하니 그게 얼마인지 궁금해서 찾아 보았지요. 대략 1200만원 정도더군요. 약간 놀랐습니다. 그 나이에 그거 밖에 없나 ?
동양인 들, 특히 중국인과 한국인은 해외에서 소매치기 등의 범죄 대상 1호입니다. 돈이 많거든요. 그런데, 왜 스웨덴은 부자 나라고 중국과 한국은 개발 도상국 수준의 나라로 인식될까요 ? 제 경우를 보면 당연히 미카엘보다는 돈이 많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만, 미카엘보다는 훨씬 불안불안한 삶을 살고 있고, 또 항상 더 쪼들리게 살고 있습니다. 아마 미카엘은 노후 연금 등의 형태로 노후가 전혀 불안하지 않겠지요. 직장을 잃는다고 하더라도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굶거나 애 학비 걱정을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현금이 좀더 많더라고 하더라도, 그건 불안한 노후를 위한 저축에 불과합니다. 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과연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충분한 돈을 모을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과연 '늙어 죽을 때까지 충분한 돈'이 얼마인지에 대해서도 전혀 감이 없습니다. 그렇게 나중에 늙어서 폐지를 주워야 하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면 행복하다고 할 수가 없고, 항상 경제적 공포에 쫓기며 살아야 합니다. 특히 저처럼 이제 바햐흐로 40대 후반에 접어들어, 이제 언제 회사에서 짤려나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이대가 되면, 그런 공포가 정말 현실적으로 느껴지지요. 제가 요즘 행복하냐고요 ? 글쎄요.
사실 제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불행과 불안감의 근본 원인은 돈입니다. 애정 문제나 가족간의 불화, 건강 등 돈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를 겪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저뿐만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도 아마 행복이란 것이 돈에 크게 좌우될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행복한, 즉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 그건 동화책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가령 제가 가끔 보는 웹툰 중에 윤서인이라는 분의 만화에서도 그런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별로 좋지 못한 예로 드는데 허락도 없이 퍼오지는 못하겠고... 직접 가서 보세요.)
http://www.toonburi.com/cartoon/0/20140314155736tGY
이 만화의 요지는, 어차피 내가 돈이 있어도, '남보다 많지 않으면 잘 사는 것이 아니'므로, 결국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란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
아래 기사를 한번 보시지요. (보시기 귀찮으신 분들을 위해 제가 요약했습니다.)
http://www.dailyfinance.com/2014/03/26/would-americans-be-happier-if-u-s-were-more-like-denmark/
UN의 찬조를 받는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이라는 기관에서 펴낸 2013년 '세계 행복 보고서'라는 자료가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행복지수는 부탄처럼 그냥 국민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냐 라는 주관적인 개념으로 측정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1인당 GDP, 평균 수명, 사회 보장 제도, 개인적 자유, 정부 부패지수, 관용 등 다양한 항목의 점수로 매겨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덴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합니다. 10점 만점에 덴마크는 7.7점을 받았거든요. 가령 미국의 경우는 7.1점을 받아 세계 17위를 기록했고, 가장 행복지수가 낮은 곳은 아프리카 토고라고 하네요.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제가 특별히 그 2013년 '세계 행복 보고서'를 구해서 우리나라 순위도 표시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총행복지수는 6.276으로서, 세계 41위입니다. 태국이나 우루과이, 수리남보다 낮지만, 일본이나 이탈리아보다는 높습니다.
덴마크의 행복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 CIA World Factbook을 근거로 조사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적은 돈으로 산다 Make Do With Less
사실 덴마크는 생각보다 부자 나라가 아닙니다. 구매력 기준 1인당 GDP (GDP per capita PPP)로 보면 미국의 $52,800에 비해 훨씬 적은 $37,800에 불과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34,777로서 세계 26위입니다.
2) 세금을 더 많이 낸다 Pay More Taxes
미국의 경우는 (사회 보장 비용까지 포함해서도) 전체 GDP의 22% 정도만을 세금으로 걷지만, 덴마크는 거의 56%를 걷습니다. 덴마크는 이 부문에서 세계 8위입니다.
3) 저축을 더 많이 한다 Save More
소득이 작은데도 불구하고, 게다가 세금을 왕창 뜯기는데도 불구하고, 덴마크의 노후 대비 저축률은 상당히 높습니다. 전체 GDP의 24.1%를 저축합니다. 미국의 경우는 13.5%입니다.
4) 적게 쓴다 Spend Less
당연히 소비는 작아집니다. 덴마크 가정에서 쓰는 돈은 전체 GDP의 49% 정도입니다. 미국의 소비지향적인 경제에서, 가정 소비액은 GDP의 69%입니다.
5) 사람에 투자한다 Invest More in People
그렇게 중과세한 세금으로, 교육과 국민 건강에 투자합니다. 덴마크는 대학까지 무료 교육입니다. 그리고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가 의료보험 제도가 있습니다. 실제 들어가는 1인당 건강 의료 비용은 미국의 절반 수준이지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덴마크 국민의 90%가 건강 의료 제도에 대해 '전적으로 만족'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기대 수명 (life expectancy)은 미국과 비슷하여, 건강 의료 제도의 질적 수준도 미국보다 낮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덴마크에서는 벽돌공과 의사의 급여 수준이 큰 차이 안난다더니... 아마 그래서 의료비가 적게 드는 것일까요 ? 괄호안은 기사 내용이 아닌, 제 사적인 궁금함입니다.)
6) 만족이 열쇠다 Satisfaction Is the Key
덴마크 의 행복의 비결은, 벌어들인 소득을 전체 국민에게 만족할 수준으로 분배하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 핵심이지요. 소크라테스도 "행복의 비밀은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면서 즐기는 것에 있다" 라고 말한 바 있지요.
재계 및 그 후원을 받는 경제 연구소에서는 우리나라가 더 잘 사는 나라가 되려면 소득세와 같은 직접세를 더 줄이고, 특히 기업 투자 의지를 꺾는 증여상속세를 폐지해야 한다고 하지요. 그리고 부족한 재원은 세금 혜택을 많이 받는 일반 서민들로부터 더 걷어야 한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이건희나 일반 서민이나 똑같은 비율로 내는 부가세를 스웨덴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양반들은, 그런 세제 개편이 그렇지 않아도 큰 빈부 격차를 더 크게 벌일 것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업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면 경제가 침체되어 결국 그 피해는 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지요. 많은 돈을 들여 연구한 결과가 그렇습니다. 그 분들은 덴마크는 어떤 시스템을 갖추었길래 저렇게 좋은 분배 시스템을 갖추면서도 잘 사는 나라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해보실 의향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지니 (Gini) 계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숫자가 작을 수록, 그 국가의 빈부 격차가 작다는 것을 뜻합니다. 스웨덴은 24.9로서 매우 낮은 편에 속하고, 덴마크도 28.1로서 낮은 편입니다. 우리나라는 31.1로서 '중위권' 수준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니 계수는 우리나라의 실업률처럼 사실 좀...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느껴집니다.
우리나라 재계의 후원을 받는 연구 단체들이 '우리나라도 증여상속세와 법인세를 내리고 대신 부가세를 올려야 한다, 좌파들의 이상향 스웨덴에서도 그렇게 한다' 라고 주장하지요. 저는 일단 우리나라도 수십년간 그런 중과세와 국가 복지를 통해 빈부 격차를 해소한 뒤에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정도 되는 인구 대국이자 경제 대국이, 항상 내수 시장은 별 볼일이 없다면서 수출 위주의 경제를 위태위태하게 꾸려 나가는 이유는, 대부분의 돈이 기업, 그것도 대기업에 몰려 있고 정작 국민들은 가난하기 때문 아닌가 싶어요. 그렇다고 무조건 최저임금을 높이면 다 해결되느냐 ? 규제를 풀어야 직장이 좀더 늘어날 것 아니냐 ? 저는 우리 국민들이 이제는 빨갱이 신드롬에서 좀 벗어나서 부디 그런 세제 개편안에 대해 좀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세금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증여상속세가 폐지되고 부유층에 대한 소득세가 줄어드는 것이 당장은 부유층의 이익에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유층과 권력층이 그런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당장의 이익만 추구하다가는 사회 전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만쭈리님의 '레알뻘짓' 블로그에는 목은 이색 선생과 고려의 멸망에 대한 이유도 나오더군요. 원래 정도전이 속한 '신진 사대부'들은 실력은 갖추었고 과거에 급제해서 조정에도 진출했으나, 불만이 많았습니다. 이유는, 녹봉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역시 재정이 튼튼하지 못해서였고, 그 이유는 고려시대 권문세가들이 국가의 토지를 과점하고 있었는데, 세금은 안 냈기 때문이지요. 그런 이유로, 정도전을 비롯한 신진사대부들은 아예 국가를 리셋하여 토지 소유권을 개혁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대지주들은 당연히 강력 반발했고, 목은 이색 선생도 대지주였기 때문에 그에 반대했던 것입니다. 목은 이색 선생을 그저 고려 왕조에 충성한 충신, 그러니까 그저 좋은 사람이라고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상당히 뜻 밖이었습니다.
만약 고려시대의 귀족들이 그 부와 토지를 백성들과 함께 나누었다면 어땠을까요 ? 고려가 망한 것은 왜구나 홍건적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일부 특권층이 독점한 부에 대한 내부 불만 때문이었을까요 ?
모두가 함께 잘사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러니 지금 하듯이, 우리 애들에게는 일단 우리만 잘살면 된다 그러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가르치는 것이 맞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