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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869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신주쿠요
추천 : 3
조회수 : 76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3/24 02: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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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창수는 그림을 그리며 돈을 주워준 여자에 대한 생각과 엄마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줄 수 없겠냐는 나이에 맞지 않는 괴상한 말을 떠올렸다.
 
하얀 도화지 속엔 어느 여자가 파란 우비를 입고 자전거에 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창수가 그린 그림이였다. 그것을 엄마라고 생각하며 그린 것 같았다.
 
파란 우비, 창수의 엄마는 비가 오는 날이면 커다란 파란 우비를 걸치고 출근했다.
 
우비는 흐린 날씨와 대비되는 맑은 파란색이였다.
 
창수의 엄마 제삿날에도 비가 내렸었다. 보슬비였지만 우산이 필요할 만큼 축축하게 내렸었다.
 
엄마의 파란 우비에 하늘색을 덧칠하던 창수의 의식이 조금씩 흐려졌다.
 
그 날에도 엄마처럼 커다란 파란 우비를 걸친 사람을 봤다고 엄마한테 말해줘야지.
 
창수의 생각이 커다란 메아리처럼 울리더니 곧 머리를 세게 때렸다.
 
창수에겐 엄마가 존재하지 않았다. 얼굴은 주체할 수 없이 일그러졌고 눈물이 나오려 했다.
 
창수는 그 때 그 순간 묘안을 생각해냈다. 배가 너무 아파요.
 
그 날 창수는 원하는 대로 조퇴할 수 있었다. 엄마와 같이 살던 동네 하일동에 혼자 가보기로 한 것이다.
 
학교에서 이십미터 정도 빠져나왔을 때, 다시 한번 창수는 울음을 터뜨렸다.
 
한번 시작된 감정의 소용돌이가 도저히 멈출 기미를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제자리에서 엉엉 울기도 하고, 울음을 참으며 걷던 창수가 시내에 다다랐을 때는
 
보고 싶었던 엄마를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었다.
 
한낮 불꺼진 가로등 아래서 통화하고 있는 사투리 억양의 말을 쓰는 여인의 옆모습이 엄마였고,
 
식당 앞에서 김치를 담그고 있는 식당주인의 파마머리가 엄마였다.
 
식당주인의 파마머리를 바라보던 창수가 다시 한번 울음을 터뜨렸지만 갑작스레 쏟아지는 소나기에
 
시내의 풍경은 더 잠잠해지거나 더 난잡해졌다.
 
김치를 담그던 식당주인은 식당 안으로 들어가 직원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양이였고, 통화하던 사투리 억양의 여성은 태연하게 우산을 폈다.
 
창수는 소나기를 맞으며 걷고 싶은 심정이였지만 고모를 생각하니 그럴 수가 없었다.
 
겨우 진정을 하고 근처 해물탕집 지붕 아래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비가 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나기가 매우 축축하게 내리고 있었다.
 
창수는 그것이 빠르지만 느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색과 파란색으로 칠이 된 싸구려 가방에서
 
자신의 그림을 꺼내었다. 창수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위해 오늘 비가 내려줬으면 했기 때문이다.
 
창수는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현력은 좋지 않았지만 자기 자신만 알아볼 수 있으면 되는 것 이였다.
 
그 그림은 분명히 창수가 생각하기에 창수의 엄마였다. 눈은 그림을 바라보았고 귀는 빗소리에 귀 기울였다.
 
빗소리 속엔 이런저런 말소리들도 섞여있었다. 해물탕 집에서 식사를 하시는 어르신들의 목소리 같았다.
 
같은 한국말이지만 어르신들과의 어휘력 차이때문에 창수는 그 말을 쉬이 알아듣기 힘들었다. 웅얼거림 같았다.
 
어르신들은 아기 같았다. 창수는 그 순간 어른이였다.
 
그들의 웅얼거리는 말들이 듣기 참 편하다고 창수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림을 든 두 팔을 내리고 귀기울이려 앞을 보았다.
 
창수가 본 앞, 저 멀리 앞 몇 미터였다.
 
파란 우비를 걸친 사람의 옆모습이 보였다.
 
어쩐지 스산한 모습이였다.
 
엄마.
 
소나기가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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