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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6-
게시물ID : panic_869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신주쿠요
추천 : 2
조회수 : 60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3/27 23: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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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
 
날씨도 그랬고 어딘가 멜랑콜리했던 창수와 무녀의 만남은 그 둘의 사이를 무척이나 두텁게 만들어주었다.
 
창수는 자는 시간과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시간 외에는 무녀의 점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배가 고파 배에서 꾸루룩 소리를 무녀 앞에서 처음으로 냈을 시점부터는 저녁식사까지 무녀의 집에서 해결하게 되었다.
 
고모와 고모부는 부쩍 집에 늦게 들어오기 시작한 창수를 추궁하기도 했다.
 
부모가 없는 창수가 탈선이라도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창수는 걱정하시지 말라며
 
단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이라고 고모와 고모부께 말씀드렸다.
 
창수는 그 친구가 무당이라고도 말씀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무녀가 자신에 대해서는 대충 둘러대 말해달라 부탁한 것이 있었기에
 
창수는 그러지 못했다. 창수는 자신의 친한 누나가 무녀인 것을 속으로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창수와 무녀의 사이가 가까워진 뒤 창수는 무녀에게 엄마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어쩐지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창수는 무녀와 다시 비즈니스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 싫었을 지도 모른다.
 
또한 무녀가 꾼 자신이 나오는 꿈에 대해서조차 더는 궁금해하지 않기로 하였다.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창수는 무녀의 집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후로부터 파란 우비 사람, 혹은 엄마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어쩌면 파란 우비 사람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게 된 것은 부모를 잃은 후 생긴 깊은 마음의 상처로 인한
 
심신미약의 한 부분이였으리라.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도 멀어졌다.
 
창수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접어가기 시작했다. 엄마를 잊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이젠 엄마의 품처럼 안길 수 있는 곳이 생겼다고 믿었다. 창수는 자신이 다시 행복해졌다고 믿었다.
 
2.
 
어느 날 저녁 창수는 꿈을 꿨다. 꿈 속에서 창수가 보게 된 건 오래 간 잊고 있었던 두 인물이였다.
 
아빠와 엄마였다. 창수의 아빠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창수의 엄마는 파란 우비를 입고 있었다.
 
그 모습들은 창수가 가장 최근에 그 둘을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창수는 후에 꿈에서 깨어나 꿈 속 엄마의 얼굴을 기억할 수 없었다.
 
꿈 속에서 아빠는 엄마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그렇게 꿈이 끝났고, 꿈에서 깨어난 창수가 누운 채로 눈을 잠시 간 깜박인 후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앞을 본 창수는 꿈에서 깨어난 현실에서도 아빠와 엄마가 자신의 눈 앞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아빠는 여전히 엄마에게 수갑을 채우고 있었다. 엄마, 아빠.
 
창수가 입을 열었지만 창수의 입에서는 소리가 나질 않고 진동이 크게 울렸다.
 
몸을 움직여 둘에게 달려가 껴안고 싶었으나 창수의 몸은 움직이질 않았다. 그 때였다.
 
침대 옆에 있는 베란다로 엄마가 달려나갔고, 창수는 엄마의 손에 채워진 수갑이 아빠의 손에도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빠는 엄마와 함께 딸려갔고, 그 둘은 베란다 아래로 떨어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창수는 정말로 현실로 되돌아왔다.
 
창수는 학교 4교시 미술 시간에 그런 것들을 상상하고 있었다. 창수가 미술 시간에 엄마를 그리는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하지만 창수 외에 다른 동급생들, 선생님들은 창수가 그린 그림이 창수의 엄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관심도 없었을 뿐 더러, 창수가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파란 우비 사람을 세 번째로 그렸을 때, 이 그림은 창수의 마스코트 같은 것인가봐요.
 
하고 창수의 담임이 아이들의 관심을 조금 끌어모으려고 해보긴 했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다.
 
창수가 파란 우비를 네 번째 그리는 지금 그들은 창수와 그림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들은 비가 내리고 있는 오늘의 날씨마저 알고 있지 못한 듯 보였다.
 
수업을 마치고 창수는 교실 밖으로 나갔다. 교내는 몹시 눅눅한 느낌으로 둘러싸여있었다.
 
교내의 수없이 많은 창문들은 한 줄기의 빛도 보여주질 않았다.
 
온통 칙칙하고 어두운 잿빛하늘과 먹구름들 이였다.
 
그런 것들을 보며 창수는 마음 한 켠에 하나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창수의 오른손과 왼손은 파랗게 물들어있었다. 오른손에는 그림 한 장.
 
오늘은 곧장 무녀의 집으로 가지 않기로 하였다.
 
오늘 같은 날이 가장 비즈니스적인 관계가 되어버릴 수 있는 날이라 창수는 생각했다.
 
창수는 그렇게 된다면 무녀의 순수하고 하얀 미소를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빨갛고 충혈된 눈을 마지막으로 둘의 관계가 끝이 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따금씩 빛을 내는 비닐 우산 아래 자신을 보호하고 창수는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창수는 너무 평범해서 175 센치미터 정도의 키로 밖엔 설명할 수 없는 남자를 그 길에 만날 수 있었다.
 
학교 근처 공원이였다. 꼬마야, 내가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겠어서 그런데...
 
창수는 무녀의 집에는 가지 않기로 했지만 고모의 집에도 일찍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비가 오는 날엔 언제나 그랬다. 길을 잃으셨나요?
 
남자가 어딘가 능구렁이 같은 미소를 짓고 창수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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