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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게시물ID : freeboard_7802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e_like_Mike
추천 : 0
조회수 : 14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8/31 00:22:38
1.
 
그는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다. 어느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다만 시간은 흐른다. 오늘이 지나면, 무엇이든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런 중압감이 그를 주저앉게 했다.
 
이미 사방이 어둑해진 시각, 그는 밤 10시 30분을 가리키는 시계의 초침을 바라보며 휴대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길어진다. ‘너무 갑작스러울까.’ 근 5년간 연락을 않던 친구. 인터넷 미니홈피를 통해 우연히 연락처를 주고받았으나 고교를 졸업한 이래 그와 연락한 일은 단 한 번도 없다.
 
 
무슨 일이야.
 
길고 긴 수신음이 지나고, 웃음기 어린 음성이 그를 반긴다. 생각지 않게 반가움을 표하는 옛 친우 A의 목소리에 그의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진 듯도 하다.
 
그냥, 그냥, 목소리 듣고싶더라.
술,
아니, 안 마셨어.
 
그리고 얼마가 지나 휴대폰을 닫은 지금. A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조차 기억에 희미하다. 무슨 말을 했더라. 그를 불러냈나? 이런 시각에, 설마. 다시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려 들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는 다시 어둠 속에 몸을 묻고 눈을 감아보기로 했다. 누가 올지도 모르지.
 
아니,
 
누구라도 좋다. 잠시라도, 누군가 이런 혼란과 고독에서 나를 구해 주었으면. 그는 천천히 눈을 감고 기다려본다. 행복으로 가득하던 나날을 찾아 기억 속을 헤맨다.
 
2.
 
그는 중학교 3학년이 되던 98년, 고교 입시를 앞두고서 학교 농구부에 입부한 일을 떠올린다. 이유? 그저 시험기간이면 문을 걸어 잠그고서, 침대 위에 엎드려 교과서 대신 탐독하던 만화책 덕분이지. 부모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고작 고교라 해도 입시를 앞둔 시점에 공놀이 '따위'에 시간을 할애하게 된 사연을 알릴 엄두가 나지 않았으니까. 다만 취미로 입부한 이는 그가 유일하여, 반년 간 연습이나마 코트를 뛰어다닌 일을 기억하자면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렇게 예정대로 최하위 인문계 고교에 턱걸이로 진학한 그는 이번에는 당당히 부모의 동의를 받아 고교 농구부에 입부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부모에게 동의서를 보였을 때, 무슨 용기였을까. 다만 예상보다 결과가 나쁜 편은 아니었다. 적어도 집 밖으로 내쫓기는 신세는 하루면 족했으니까. 다만 인문계 고교다 보니, 학교 농구부엔 그와 마찬가지로 취미활동으로 즐기는 이가 대부분이었고, 3학년에 접어들기 전에 보통은 부서를 그만두곤 했다. 그렇더라도, 다른 부서와 체육관을 함께 쓰는 일을 제외하자면 부서 생활은 그럭저럭 좋았다. 경력에 비하면 실력은 나쁘지 않았고, 2학년으로 올라선 해에는 처음으로 경기에 출장했다. 그리고 그는 그 해 여름방학이 채 되기 전에 농구부를 그만 두었다. 키가 더는 자라지 않았으니까.
 
당시 그의 키는 170.1cm, 선수로는 턱없이 작은 키다. 가드로 전향할 생각 역시 해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대학 진학이 가능한 농구 명문 고교로 전학하기에는 적합지 못한 조건이다. 그는 고교 졸업과 동시에 30cm가 성장한 NBA의 전설 로드맨의 기적을 기대하며 3학년을 맞았지만 역시 키는 조금도 자라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1년여가 지나고, 수능 성적표를 받아든 겨울에 미련 없이 재수를 결심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어디야.’
 
3.
 
군대는?
 
작년에.
A는 캄캄한 벤치 위에 주저앉았다.
부스럭, 손에는 검은 봉투가 두어 개 들려있다.
 
한 잔 해.
 
꼴깍, 쓰다. 오늘은 안 받나 봐.
 
놀랐다.
 
응.
 
간만이니까.
 
응.
 
무슨 일인데.
 
아니. 아냐.
 
다시 소주를 따라 그대로 들이켰다. 쓰다.
 
A는 휴대폰을 꺼내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늦었다.
 
대학은?
 
다니면 지금 나오나, 공부하기 바쁘지.
 
무슨 공부는.
실소가 터졌다. A도 따라 웃는다.
 
어쩌지 나.
 
뭘.
 
몰라, 전부, 산다는 게.
 
지랄하네.
 
A는 다시 잔을 권한다.
 
됐어.
 
내일 일이 있어.
 
A가 나를 잡아끌었다.
좀 걷자.
 
잠시 이끌려 공원을 걸으니 으슬으슬 몸이 떨린다. 꽁꽁 걸어잠근 외투의 안팎으로 밤바람이 스쳐 드나든다. 차다. 천상 겨울이다.
 
농구 다시 할까.
 
좆만한 새끼가.
 
이제 뭘 하지?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열두 시, 별도 달도 보이지 않는다. 그의 머리 너머는 오로지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있을 뿐이다. 빛마저 빨아들일 기세의 하늘.
 
신기해, 가로등도 안 들어오는데 앞은 보이고. 얼굴도, 손도 돌부리도 다 보인다. 내일은 한 치 앞도 안 보이지.
 
휘우-
어느새 담배 한 대를 꺼내 문 A는 멈추어 그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안 피워.
 
잘 됐군, (담배가)한 두 푼 깨지는 게 아냐 망할.
 
희미한 담뱃불 빛에 A의 얼굴이 비친다. 다만 그 너머로 연기가 피어올라 그 표정은 다소 불명확하다.
 
넌 똑같군.
 
휘우- 밤하늘로 연기가 빨려든다, 여전히 달도 별도 없이.
 
4.
 
그는 어둠 속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A는 칠흑 너머로 조용히 사라져갔다.
 
바라는 바를 자문해본다.
안식. 도피처. 어리광, 안주.
어디부터 잘못일까, 무엇부터 해야 하나. 불안(不安), 산기 그득한 호흡을 내쉬며 그는 어설피 발을 옮긴다. 여전히 중압과 혼란에서 도피할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그는, 야속히 돌아가는 시계 침을 바라보며 이미 내일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이 그를 짓누른다. 눈을 감아도 멈추지 않는 초침. 마치 기약 없이 회전하는 톱니바퀴처럼 오늘을 인지하고, 거기서 도피하며 빙글빙글 제자리를 돌지만 머지않아 날은 밝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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