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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음] 만찬
게시물ID : panic_871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루나틱프릭
추천 : 3
조회수 : 1243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4/07 19:37:04
 늘어진 몸을 이끌고 자취방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너무나도 슬프고 지친 하루였지만 다만 집으로 가는 게 기다려질 뿐이었다.
그에게 집이란 삶의 활력소 같은 곳이었다.

삑 삑 삑 삑
띠리릭
철컥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현관문을 열자 맛있는 냄새가 났다.
사랑하는 내 아내가 요리하는 뒷모습은 너무나도 예뻤다.

 "왔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로 날 반겨주는 그녀는
내가 오는 소리를 듣고는 갓 만들어낸 갈치조림을 상에 놓았다.

 "이거, 오빠가 좋아하는 것 맞지?"
 "어, 맛있겠다. 직접 만든 거야?"

나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갈치의 살을 떼어 입에 넣었다.
그것은 내 입에서 살살 녹으며 고소한 맛을 퍼뜨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때? 맛 없어?"
 "아니, 맛있어. 존나 맛있다 진짜."

맛있다는 내 말에 그녀는 웃으며 부엌으로 쪼르르 달려가 
밥을 그릇에 퍼담기 시작했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도 고생했어요, 내 사랑."
 "......"
 "든든하게 먹고 다녀, 아프지 말고. 알겠지?"
 "어."
 "빨랑 먹고 자자. 이거도 먹어봐."

그녀는 내가 밥 한 술을 뜰 때까지 기다렸다.
내가 밥을 뜨자 그녀는 김치 한 조각을 얹어주었다.
너무나도 새콤한 김치의 맛을 그 날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눈을 뜨기가 너무나도 싫었다.
알람 소리는 계속해서 일어나라 아우성이건만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하늘은 그런 내 기분을 아는지 비를 억수같이 뿌려댔고
간신히 일어난 나는 어제 먹은 것들을 대충 치울 뿐이었다.

 비록 밥솥에 눌러붙어서 누런색이 된 밥과
익다못해 시어버린 김치, 그리고 하얗게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 갈치조림이었지만
나는 그것들을 차마 버리지 못했다.

벌써부터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하려다가
문득 TV 위에 걸린 그녀의 사진을 보았다.
그녀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고 미소지은 모습이었다.
나는 또 오열하고 말았다.

이미 아내는 죽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그녀를 보내주지 못하는 병신이었다.

내 방에 있는, 차마 태워버리지 못한 그녀의 옷가지들에서는
그토록 강하던 그녀의 향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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