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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의 첫번째 위기
게시물ID : humordata_8713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nH유저
추천 : 0
조회수 : 80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09/12 18:47:32
1395년 태조4년때 일본 큐슈에서 왜구가 잡아갔던 조선인 570명을 조선으로 송환하였다. 이 답례로 태조가 큐슈절도사 미나모토 료순에게 대장경판본(인쇄본)을 줬다. 일본은 당시 불교를 따르건 국가였으므로 대장경에 ㅤㅎㅓㅋㅤㅎㅓㅋ, 조선이 왜구에게 잡혀간 조선인을 돌려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조선인을 송환하면서 대장경판본을 구걸했다.

어쨌든 본론으로 들어가서 1423년 세종 5년 12월25일에 일본 사신 135명이 대궐에 들어와 토산품을 바치면서 자신들의 주군이 독실한 불교신자인지라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판을 달라고 하였다.

사신을 접견하기 전 세종대왕은 신하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대장경판은 우리에게 무용지물인데 이웃 나라에서 달라고 하니 주는 게 어떤가."  요컨데 숭유억불을 국시로 삼았으니 그깟 대장경판은 필요한놈에게 주자는 것이었다.

이말을 들은 신하들은. "경판이 아낄 물건은 아니지만 지금 일본이 계속 요구한다고 해서 일일이 따르다가 나중에 줄 수 없는 물건을 달라고 하면 곤란해집니다. 먼 앞날을 내다보는 것이 못됩니다." 라고 반대한다.

그리하여 세종대왕은  "팔만대장경은 역대 왕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 다만 한 본 뿐이다. 만약 겹쳐서 여러 벌 있다면 굳이 아껴 너희 국왕에게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겠느냐." 라며 팔만대장경 인쇄본을 주고 물러가게 하였다.

그래서 일본 사신들은 단식투쟁을 하면서 달라고 하기도 하였으나 끝내 얻지 못하였다. 결국 일본은 왜구를 보내 해인사를 습격, 그 대장경판을 훔쳐오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다행히 사전에 들통나 무산되었다.


그래서 세종은 팔만대장경판을 서울로 옮길것을 고려했는데 돈이 없어서 못옮겼다.
어쨌든 지키긴 지킴




오늘의 주제
달라고 떼쓰는거 계속 주다가는 나중에 줄 수 없는 물건을 달라고 할때는 곤란해지므로 먼 앞날을 내다보는 것이 못된다 




두번째 위기는 6.25때 그거니까 내가 안 쓸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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