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수는 지난 번 만난 적이 있는 능구렁이 같았던 남자와의 짧았던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난 희연이의 남자친구야, 그러고보니 너 희연이를 좀 닮았구나.
창수는 그 남자와의 짧은 대화 속에서 오갔던 모든 말들을 긍정해보였지만 속으론 그렇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능구렁이 남자와 무녀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니였다.
남자와 무녀가 손을 잡고 뽀뽀를 하는 상상을 하려 했지만 도무지 이것은 상상만으로도 무녀에게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번에 보았을 때 그 남자는 말도 심하게 더듬었고, 덜 떨어져보였다.
하지만 제일 창수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그의 변태스러운 미소였다.
창수는 무녀가 자신이 하는 상상을 간파하곤 자신을 혼내키거나 멀리하진 않을까 내심 걱정도 했다.
하여간 지금 창수는 무녀와 드라이브를 갈 채비를 마쳐 먼저 미리 무녀의 집 밖에 나와있었고
무녀의 집 앞 조금 떨어진 곳에는 능구렁이 남자가 언제부터였는지 검은 모자를 눌러쓰곤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창수는 남자를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냥 자기 또래친구들 사이에서 간혹 있는 일로 여겼다.
창수는 몇 시간 전 학교 미술시간에 자신을 놀렸던 민호라는 남자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다
퇴짜를 맞곤 그런 짓을 포기하게 된 일을 알고 있었다.
무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무녀는 철제 대문을 끼익 열고 밖으로 나왔다.
창수야, 차에 타. 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발로 짓밟고 있는 남자를 노려봤다.
차에 탄 창수가 말했다. 정말 우리 엄마한테 가도 되나요? 누나는 재미가 없어할 것 같아요.
아니, 누나도 그 편이 좋아. 나도 너희 어머니를 뵙고 싶거든. 나에게 너를 보내주신 분이 어떤 분이신지 궁금해.
무녀가 차를 몰기 시작했다. 창수는 그림을 한 장 꺼냈다.
이거, 마침 내 가방에 있었어요. 사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데 우리 엄마 그림이예요.
무녀가 차를 몰며 그림을 빤히 보았다. 어머니가 그리신 그림이니?
창수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예요. 제가 그렸어요. 정말 웃겨요 누나.
창수가 웃자 무녀도 웃었다. 창수는 차창을 열고 사이드미러를 바라보았다.
사이드미러엔 한참이나 무녀의 차 뒤에서 뒤따라 달려오던 회색 차 한 대가 있었다.
창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대화의 주제도 못 될 것 이였다.
2.
여름의 피로가 몰려왔다. 햇살이 쨍쨍하고 따뜻했다.
차 안은 에어컨의 영향으로 냉기가 가득했다.
창수의 피부엔 차가운 냉기와 따뜻한 온기가 동시에 닿고 있었다.
졸음을 못 이기고 꾸벅꾸벅 졸다보니 어느새 휴게소였다.
무녀는 아무런 말 없이 차를 주차하곤 잠이 든 창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창수는 정말 곤히 잠들어 있었다.
곤히 잠든 창수를 바라보며 무녀는 모성애 비슷한 것을 느꼈다. 창수의 얼굴을 잠시 쓰다듬었다.
그리고 말 없이 차 키를 꼽아놓은 채 차에서 내려 휴게소의 먹거리를 사러 갔다.
무녀가 차에서 내릴 때 문을 실수로 약간 세게 닫은 모양였는지, 창수가 눈을 떴다.
이 곳이 어디인지, 무녀가 어디있는지 파악하느라 잠깐 동안의 공황증세가 창수에게 찾아왔다.
창수는 두리번두리번 고개를 흔들며 이곳저곳에 시선을 포진했다. 그러다 진정이 되었는지 앞을 보고 한 숨을 쉬려던 찰나에
누군가 차에 타려고 문을 열었다. 먹을거리를 사온 무녀라 예상했으나
무녀의 집 앞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던 능구렁이 남자가 바로 앞에서 다시 보고싶지 않았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저씨, 차에 잘못 타신 것 같은데요.
남자는 차의 시동을 걸었다,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아가리 여물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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