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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명장론에 대한 Cherion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게시물ID : history_179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zert
추천 : 3
조회수 : 91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9/01 01:29:43
먼저 공공의 게시판을 이렇게 개인적인 답변을 게시하는 것이 성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나, 이미 페이지도 넘어갔고,
오유가 쪽지 기능을 아쉽게도 제공하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글로 남기게 됐습니다.

많은 분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래는 Cheiron님께서 저에게 질문하신 내용입니다.

 Cheiron (2014-08-29 22:29:35) (가입:2008-02-07 방문:13)   추천:0 / 반대:0               157.192.***.191 
Zert님. 역시 오유는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을 잘 알려줘서 좋네요.
충무공이 부산으로 진격한 사실이 있다는 점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검색해서 자세히는 아니지만 약간은 찾아 봤습니다.
(참고한 내용 http://history21.egloos.com/viewer/2386227, 수군을 맡은 후 원균이 올린 내용을 보니 치졸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읽어보니 충무공이 출진 전에 이미 파직이 결정되었다고 쓴 사람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정의 조사 시점은 부산포출진 전이고 그 조사에서 원균은 자신이 수군을 맡았으면 부산으로 진격했을 것이라고 보고했고,
원균의 보고와 조사 결과가 함께 올라간 후 이순신의 파직이 결정된 된 시점에서 조정의 명이 내려오기 전에 부산포로 출격했다고 보는게 좋겠군요.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있었을 테니까요. 조금더 정확하게 알게 된 것 같아 Zert님께 감사드립니다.

Zert님 답변도 저로서는 대부분 수긍합니다.
1. 해전에서 충무공 관할 구역 작전에 패배는 없었다(이 부분은 후술)
-> 저는 이 점이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좋을실 때 자세한 부분도 후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도성을 버리고 피난을 가는 임금과 달리 충무공은 백전백승하며 백성들에게 명망이 높았던 점(여러번 반란 경험한 선조는 부담을 느꼈을 것)
-> 이 부분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굳이 연전연승하는 장군을 조사시켰겠지요.

3. 원균처럼 조정에 딱히 정치적인 연줄인 없다는 점
(류성룡은 정치적 연줄로 보기에 애매하다. 충무공이 조정에 올린 글은 딱 2개, 승전보와 부족물자요청서다)
->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설명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1) 류성룡은 왜 정치적 연줄로 보기 애매한지: 류성룡의 정치적 지원이 미미했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요?
2) 원균은 어느 정도의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는지: 원균의 정치적 배경은 이순신의 정치적 배경보다 좋았나요?
3) 권율이 장인인데 이것이 든든한 정치적 배경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는지: 즉 권율도 충무공의 든든한 배경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4) 마지막은 제 지식이 짧아 드리는 질문일 것 같습니다.
충무공은 승전보와 부족물자요청 조정에 2가지만 올렸다고 하셨고, 이것이 정치적 배경이 없다는 근거로 말씀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왜 근거가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치적 배경이 있는 다른 장수들은 다른 내용도 올리고 했는지요?
이에 대해 조금더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 답변을 해 주실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여러가지로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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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에 대한 답변입니다.
1번의 제 의미는 "충무공이 자신의 관할 구역인 전라좌도를 벗어나서 경상우도에서 작전을 시작한 이래로 패배한 점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별 생각 없이 쓴 글인데 혼란스럽게 해드린 것 같군요. 어쨌든 일본군은 임진년 개전 이래로 조선수군과 제대로 된 교전 없이 남해안을 진출하다가 
충무공의 함대와 맞붙게 됩니다. 몇 번 붙어보다가 (당연히 상대가 안되니) 조선수군을 보면 도망을 치던가, 할 수 있으면 배를 버리고 산으로 도망치던가, 아니면 성에 농성하여 대항-_-a하게 됩니다.

2번은 패쓰~

3번은

1) 충무공 파직 및 심문 당시, 그리고 백의종군 당시의 기록(주로 실록)을 보면 생각보다 류성룡의 두둔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리고 애초에 류성룡이 속한 남인은 조정에서 대세라고 보기는 힘들지요.

2) 원균은 당대의 정치인 윤두수와 인척 관계에 있었습니다.

3) 권율이 장인인 건 이항복 아닌가요? 충무공의 장인은 보성군수였던 방진이었습니다.

4) 먼저 2가지를 올렸다는 것은 두 종류를 주로 올렸다는 글인데 헷갈리게 해드린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리다시피 충무공은 승전보와 물건 좀 주세요-_- 라는 두 종류의 내용의 장계를 올렸습니다. 임진장초나 이충무공전서 등을 보면 충무공의 장계들이 실려있는데, 죄다 왜적을 격파했다는 글이거나 아니면 뭐가 부족해서 싸울 때 힘드니 지원좀 해주십시오라는 내용입니다
찾아보면 계사년경에 "나(이순신)를 체직시키던지 원균을 체직시키던지 선택하쇼!"라는 열받으신 충무공의 장계가 있을 법한데 찾지는 못하겠더군요. 

자세한 것은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 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보면 사헌부에서 원균을 자르라고해도 커버치는 임금과 -_- 정유년에 기가 막히게 통제사 자리를 꿰차어 기세 등등했던 원균이 망하는 것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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