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저렇게 달면 보통 앞은 나쁜 놈, 뒤는 좋은 놈. 혹은 앞은 친일파, 뒤는 애국자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죠.
이승만은 정확히 말하면 친일파가 아닙니다. 이승만은 일제 강점기 내내 해외에 있던 사람이어서 친일 문제에 있어서는 자유로웠습니다. 그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해외파 독립운동가 입장에서 볼 때 국내에서 살아남은 지도자나 민중은 다 친일파다. 그러나 이들을 다 죽여버릴 수는 없으니 나같은 해외파 독립운동가에게 충성을 다하는 이들의 죄는 용서해주겠다.' 일명 속죄론이라 불리는 논리죠. 국내에서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는 살아남는 게 불가능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이승만은 대통령 시절 장면 등 야당 지도자의 친일의혹을 강하게 비난한 바 있습니다. 참고로 장면은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는 걸로 압니다(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이승만은 과거 뭘 했느냐보다 현재 뭘 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친일파들은 자신을 도와 국가건설에 매진할 때만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칩니다. 이승만은 이처럼 친일 단죄를 언급하는데 아무런 부담이 없던 사람입니다. 친일경력으로 치면 본인이 가장 깨끗했으니 그럴 수밖에요.. 그래서 반일, 반공은 이승만시대의 국시였었죠.
반대로 김구 등 임정 요인들은 여운형이나 박헌영 쪽, 인공이나 조공세력 같은 좌파에게는 단호했지만 친일세력에겐 덜 엄격했습니다. 김구의 한독당 재정부장 맡은 자가 그 유명한 친일파 방응모였죠. 임정세력은 우익 민족세력과 지주들이 주축이 된 한민당의 정치자금도 받은 바 있습니다. 사실 해방정국에서 김구를 비롯한 임정요인들이 완전하게 순결한 정치활동을 할 수 없었던 게 현실이죠. 정당을 하고 자기 세력을 꾸려 나갈려면 현실적으로 돈 많은 사람의 자금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그래서 귀국 이후 많은 임정요인들은 자기 죄를 사하려는 유지의 초청을 받고 주지육림에 빠져 살았었죠. 이는 장준하가 쓴 회고록에도 나오는 부분입니다.
게다가 1946년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평양역 앞에서 연 3.1운동 기념식때 김일성 폭탄테러 미수사건 발생합니다. 그 때 어떤 군인이 수류탄을 잡아서 자기 팔이 날아가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지만 이는 백의사라는 테러단체가 김구와 신익희의 지시에 따라 저지른 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김구는 계속 반탁운동의 선봉에 서서 좌익들과 계속 대립했습니다. 이처럼 김구는 좌익과 손잡고 친일파 척결에 앞장서기보다는 찬탁, 반탁 대립에만 치중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 됐죠.
다시 이승만으로 돌아오면.. 지독한 반공주의자였던 이승만은 미군정이 자꾸 미소공위를 열고 김규식과 여운형을 추동해 좌우합작을 추진하려고 하자 아예 미국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거기 가서 단정수립을 위한 외교활동을 펼치죠. 그 때 김구는 국내에서 반탁데모로 미군정에 대항해 투쟁하는 이승만을 돕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트루먼 독트린이 선언되고 미국의 기조가 반공으로 돌아섭니다. 이제 이승만의 시대가 열리는 거죠. 이승만은 47년 4월에 열린 귀국환영대회에서 단정을 수립하겠다는 의사를 다시 한 번 밝힙니다. 이승만과 김구는 계속 협력하다가 47년 말에 벌어진 장덕수 암살사건으로 관계가 끝나죠. 47년에는 그나마 중간파였던 여운형도 암살당하고.. 좌우는 점점 대립으로 치달아 정국 분위기는 단정 수립으로 흐릅니다. 김구는 이건 아니다 싶어서 뒤늦게 단정수립을 막으려 김일성을 만나지만 때는 이미 늦었죠. 흔히 김구와 이승만을 대립적 관계로 그리지만 둘이 대립하던 시기는 고작해야 김구 사망 2년 전뿐입니다. 김구가 그 우직한 열정만큼 정치적 판단에 능했다면 해방정국은 다르게 전개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뭐 이승만이야 그냥 권력욕에 찌든 마키아벨리스트일 뿐이라.. 더 평가할 가치도 없습니다..
그리고 테러 얘기도 있죠. 근데 김구를 왜 테러리스트라고 하면 안 되는 건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테러를 나쁜 것으로 보는 시각은 강대국, 미국의 시각 아닌가요? 약소국 국민의 마지막 자구책이 테러말고 또 있겠습니까?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보면 김산이 김구, 윤봉길, 이봉창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조선인은 극동지역에서 가장 무서운 테러리스트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중국인은 일본인에 대한 테러를 하고 싶으면 대개 조선인 중에서 자원자를 물색한다"라는 구절이 책에 있죠. 독립운동가 입장에서도 이렇게 자랑스러운 '테러'라는 말을 왜 지금 사람들이 거부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테러 그 자체는 어떤 가치를 담고 있다기보다 사실판단에 관한 용어로 봐야 한다고 봅니다. '테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는 이라크나 팔레스타인 같은 약소국, 약소민족을 일방적으로 짓밟는 제국주의가 깔려 있다고 봅니다. 테러는 약자의 무기이니까요.
아무튼 여러가지 사료를 검토하면서 김구와 이승만을 비교해보니 이게 한 쪽은 좋은 놈, 한 쪽은 나쁜 놈이 아니더군요. 현실은 딱 둘로 나누기엔 너무 복잡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