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와 정치를 향해 줄기차게 발언해온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이번엔 이른바 ‘진보 정치세력’을 향해 ‘감정’에 관한 ‘돌직구’를 던졌다. 2012년 대선 패배에 이은 올해 7·30 재보궐선거 참패를 충격으로 보는 게 그에겐 충격이라고 한다. 여기서 ‘진보 정치세력’은 새정치민주연합(옛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을 가리킨다.
그는 이 당을 여전히 민주당이라 불러야 한다면서, 그 당보다 왼쪽에 있는 ‘진짜 진보주의자들’을 ‘좌파 진보주의자들’로 구분한다. 민주당이 진보세력인지 이견이 있겠지만, 그의 논쟁적인 돌직구가 겨눈 과녁에는 좌파 진보주의자와 좌파 정당도 들어 있다
그는 민주당의 아킬레스건이자 선거 참패의 한 요인은 ‘싸가지 없음’이라고 주장한다. 책 제목이 <싸가지 없는 진보>다. 싸가지란 말은 싹수, 예의, 버릇 따위를, 상황에 따라 때론 역설적으로 함축한다. 민주당의 문제는 도덕적 우월감이라고 강준만은 말한다.
그가 짚는 싸가지 없음은 우월감의 다른 말이다. 보수는 상대적으로 우월감이 덜하다. “모든 보수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인간의 탐욕을 긍정하며 탐욕을 채우기 바쁜 사람들은 정의·도덕을 강조하지 않기 때문에 우월감을 느끼거나 언행 불일치를 할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와 진보의 고정 지지층을 대략 각기 30%라고 볼 때 이 60%는 어떤 일이 나도 꿈쩍 않는다. 나머지 40%에서 아예 투표하지 않는 이들을 20%로 보면, 최종 나머지 20%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 선거다.
한데 사실상 승패를 결정짓는 이 20% 유권자는 그 어느 쪽에 분노할 일이 있더라도 ‘보수의 분노’나 ‘진보의 분노’ 내용에 공감하기보다는 그들의 분노 표출 방식, 곧 태도에 관심을 가지며, 바로 여기서 싸가지 없음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보수세력을 염두에 두고 ‘싸가지 있게 군다고 그들이 달라질 것 같냐’는 반론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진보는 싸가지 없다’는 견해가 생기는 것은 진보가 감정에 무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보 기획 자체가 논리·이성에서 출발했기에 진보파는 인간을 지나치게 이성적, 합리적 의사결정자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한다.
유권자의 감정에 둔감하다. 개인적 욕망을 논리·이성으로 옹호하기 어렵다는 걸 아는 보수는 대중에게 감정으로 접근하여 싸가지 있게 굴려고 애를 쓰는 반면, 진보는 ‘네가 어떻게 날 안 좋아할 수 있어?’라고 호통을 친다. 자신이 옳다는 도덕적 우월감, 부지불식간에 잘난 척하는 태도로 말미암아 이른바 부동층(중간파) 20%의 마음을 얻기 위한 싸움에서 “옳은 말씀이나 왠지 동의하기 싫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강남좌파를 비롯한 지식엘리트들이 자신의 비교 우위가 지식, 비전에 있다고 내심 여기면서 유권자를 계몽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를테면 “이들은 선거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유권자가 욕망에 투항했다’는 식의 진단을 내놓는데, 막상 이들의 재산을 까보면 욕망에 투항했다는 유권자들의 평균보다 훨씬 많고”, 유권자들은 보수파가 재산 많은 것과는 다른 잣대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부자 보수파는 당연시하면서 진보파에겐 위선이라고 느낀다. 인간 감정은 이중적이고, 보수파에겐 충성심·권위 같은 ‘도덕성’을, 진보파에겐 공평성·희생 같은 ‘도덕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강준만은 민주당이 내건 여권 심판론에 대해서도 “운동권 출신의 심판 아비투스(습관·태도)”가 진보를 골병들게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가 소개하는 올 7월 한 대학생이 17대 대선에 대해 쓴 글을 보자.
이 학생은 “정동영 후보 유세차량에서도 이명박을 더 외쳤다”며 이명박에 대해선 장단점을 다 알 수 있었으나, 정작 정동영에 대해선 ‘이 사람은 이명박을 싫어한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고 썼다. “몇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진보 진영의 정권 심판 슬로건은 보수의 선거 프레임을 깰 수 없는 뿅망치”라고 적었다.
문재인 안철수 유시민 김어준 진중권 김규항과 다수의 민주당 의원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이 책에서 강준만은 ‘싸가지 있는 정치’를 주장한다. 유권자의 감정을 제대로 읽는 정치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필요한 건 진보의 투철한 자기 성찰이다.” “개개인의 언행은 이유가 있고 정당한 것일망정, 그 총합은 진보를 죽이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씀..
이제 우리도 정확히 핵심을 파악하고확실하게 다음번을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