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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우울증 알아오던 주부 강 씨, 가족들이 잠든 사이 방 안에 연탄불을 피우고 충격적 자살기도, 강 씨 포함 가족 중 3명 사망이 사망하고 유일한 생존자인 남편 김 씨는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중태]
누군가의 죽음, 그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듣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일일 겁니다. 하물며 매일 같이 보던 이웃의 죽음을 신문기사로 접한다는 건 딱히 유쾌한 경험이라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것도 사고나 병사(病死)가 아닌 자살(自殺)이라뇨... 초인종을 누르는 제 기분이 떨떠름했던 것도 아마 이해가 가실 겁니다.
[띵동, 띵동]
초인종을 누르니 약간의 인기척이 들려왔습니다. 그 놈의 재개발 관련 동의서만 아니면 이 집과 왕래할 일도 없는데, 꺼림칙한 마음에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 이시죠?”
“하아!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죠? 옆 집...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들어오시죠...”
“네? 네?”
간단히 말하고 동의서에 싸인만 받아갔음 했던 제 바람이 간단히 박살납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현관 앞에 서 있는 절 두고 휑하니 돌아서 안으로 들어가는 김 씨, 예! 뭐 별일 있겠냐 했죠. 허지마는... 딱히 좋은 기분은 아닙디다.
사실 평소 우울증을 앓던 김 씨의 마누라야 그렇다 쳐도, 최소한 김 씨만큼은 사고 전까지만 해도 딱히 불편한 이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는다는 거, 아내와 두 아이가 목숨을 끊었다는 거... 그게 말이야 쉽지, 당사자야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습니까? 그 심정 십분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그 날 이후로 김 씨가 너무 많이 변했어요. 아내 강 씨가 겪던 우울증이 마치 전염병마냥 그대로 옮아온 것 같았으니까요. 말수도 적어지고, 이웃 간의 왕래도 뚝 끊겼습니다. 전에는 그래도 웃으며 반기던 이웃이었는데... 기분이 사뭇 씁쓸했죠.
“그러니까 이번에 재개발 들어가면서 우리가 건설사하고 유리한 입장으로 협상을 이끌어가려면 전체 조합원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서 이렇게 일단 재개발 동의서에 사인도 하고, 구청에 민원도 넣고 해서...”
다른 집을 돌 때는 적당히 설명하고 사인이나 하라며 펜을 내밀던 저였는데, 아무래도 꺼림칙하다보니 괜시리 설명이 장황해졌습니다. 그때도 김 씨는 제 설명은 듣는 둥 마는 둥 멍한 눈으로 허공만 봤습니다. 내일까지 김 씨 포함 서른 명 정도는 더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데...
[동의서 서명률이 아직도 너무 낮아! 이래서야 커미션 받겠수?]
흥분하여 소리치던 조합장의 얼굴이 떠올라 머리가 다 지끈거렸습니다.
“그러니까 이거 사인만 하시면, 조합에서 최고로 좋은 조건으로다가 맞춰 준다고 했다니까요. 요기... 요기 싸인만 하시면 돼. 응? 김씨...”
가따부따 떠들기도 귀찮고 대뜸 펜을 내민 저, 하지만 김 씨의 표정이 딱히 좋아보이진 않았습니다. 여전히 시선은 몽롱하고 대답조차 없었습니다.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요.
“저기... 김 씨...”
마지못해 부르며 팔을 흔드니 그제야 김 씨는 청신을 차린 듯, 고개를 흔듭디다. 하지만 온전히 제정신은 아닌지 하라는 사인은 하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하더군요.
“이런 내 정신 좀 봐! 손님이 왔는데 차도 한 잔 안 드렸네.”
“아니 김 씨. 괜찮아요. 괜찮아.”
“아니요. 예의가 아니죠.”
거기까진 괜찮았습니다. 우울증에 시달리다 죽은 아내 강 씨와 달리 사고 전 김 씨는 예의 바른 사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그러면서 주방으로 걸어가던 김 씨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아니 이 여자는 손님이 오셨는데 차도 한 잔 내오고! 여보! 여보!”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습니다. 조금 놀라기도 했구요. 누가 안 놀라겠어요. 마누라랑 애들이랑 다 죽은 거 뻔히 알고 있는 사정인데, 갑자기 아내를 찾다니요. 조금 놀라긴 했지만 혹시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이 재혼이라도?]
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죠. 사고 이후 넋 나간 사람마냥 허우적거리던 사람이 그 사이 재혼이라뇨. 아내 강 씨는 심각한 우울증 탓에 사고 전에도 툭하면 난리 아닌 난리를 피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며 아이들까지 도맡아 키우던 김씨였구요.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던 사람이 죽자마자 재혼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죠.
하지만 김 씨는 또 한 번 안방을 바라보며 소리쳤습니다.
“여보! 좀 나와봐! 옆 집 아저씨 오셨어! 여보!”
내내 간직하던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온 기분이었습니다. 연거푸 아내를 불러보지만 문 닫힌 안 방에선 작은 인기척 하나 없었습니다. 마지못해 [괜찮습니다. 괜찮아요]하고 말해 보지만, 김 씨는 한층 더 고조된 얼굴로 소리쳤습니다. 제 말은 완전히 무시한 채로요.
“여보! 좀 나와보래도! 응?”
급기야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안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김 씨, 우울증은 전염병처럼 옮는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입디다. 불편한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그러고 말았으면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아내와 두 아이가 한꺼번에 죽었는데 누군들 제 정신이겠습니까?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는 저, 그리고 거침없이 안방으로 들어간 김 씨, 그리고 그 다음에 제가 들은 말입니다.
“여보! 아니 좀 나와 보래도!”
“에헤이...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예의가 아니지!”
“이 여자 꼭 이런다니까! 괜찮아. 화장은 뭔 화장이야 나와 봐!”
마치 누군가와 대화라도 나누는 듯 한 김 씨, 으스스한 기분과 불쌍한 마음이 동시에 듭니다.
[오죽하면 저럴까... 쯧쯧]
혀를 차는 사이, 김 씨가 대화를 멈추고 천천히 걸어 나옵니다. 하지만 정말로 풀려있던 제 똥꼬를 확 조인 사건은 그 다음부터 였습니다.
“인사는 해야지 언능!”
열린 문 앞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김 씨, 물론 아무것도 없습니다. 헌데 김씨는 저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보셨다시피 요즘 몸이 안 좋은지 꼼짝을 안하네요. 인사를 하랬더니 빼꼼 고개만 내밀고...참... 이해하세요.”
빼꼼? 고개만 내밀고? 저는 괜시리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봤지만 당연히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화야. 김 씨 이 친구 결국 미쳤구만... 쯧 쯧...] 더도 덜도 말고 딱 그 생각만 들더군요. 더 이상 있으면 안 되겠단 생각도 들고요.
[동의서에 사인을 받든 말든 한 번만 더 얘기해보고 아니면 빨리 나가자...]
조금씩 으스스해지기 시작한 저는 그런 생각으로 거식 탁자에 놓인 동의서를 들고 김 씨에게 다가섰습니다. 그러자 그 순간 김씨의 얼굴이 갑작스레 무섭게 변하더니 저를 향해 성큼 성큼 달려들지 뭡니까!
“히익!”
놀란 저는 동의서를 든 손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김 씨는 거실에 서 있던 저를 지나 문 앞의 작은 방으로 걸어갔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거긴 죽은 김 씨의 아들과 딸이 함께 쓰던 방입니다. 김 씨가 말했습니다.
“엄마야 그렇다 쳐도, 니들은 왜 손님 오셨는데 내다보지도 않냐!”
똥꼬에 바짝 힘이 들어갑디다. 괄약근 운동이 정력에 좋다던데, 그 날은 따로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죠. 활짝 열린 방, 어두커니 불도 꺼져 있었습니다.헌데 김 씨는 그 앞에 서서 소리치지 뭡니까!
“아빠가 니들 그렇게 가르키던? 어른이 손님으로 와 계시면 나와서 인사를 해야지 인사를!”
“진우! 너 빨리 안나와!”
“수진이도 빨리 나오고!”
“자꾸 그렇게 누워만 있을래?”
[완전히 미쳤구나! 제 정신이 아니구나!] 그 생각 외엔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그 쯤 되니 측은하다던가 안타깝다던가 하는 그런 생각도 안 들더라구요. 이런 말 하면 미안하지만, [미.친.놈하고 무슨 얘기를 하냐! 그냥 가자! 가!] 그런 생각으로 들고 왔던 가방을 메고 일어서려던 찰나였습니다. 헌데 그 순간, 갑자기 김 씨가 방방 뛰며 흥분하기 시작한 김 씨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커다란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를 들고 미친 듯이 소리치더군요.
“당장 나와! 아빠가 이렇게 까지 이야기하는데 니들 계속 그럴래?”
굉장히 화가 난 표정이었어요.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오릅디다. 김 씨 이 친구 평상시엔 예의 바르고 참 순한 친군데, 종종 이렇게 꼭지가 돌면 물불 안 가리고 흥분하곤 했거든요. 한 번은 우울증 탓에 마누라 강 씨가 한 바탕 소동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는데, 처음엔 시비가 붙은 아래층 사람한테 [미안하다.미안하다.] 고개 숙여 읍소만 하던 김 씨가 돌연 흥분을 하더니 갑작스레 몸싸움을... 하아 말도 마세요. 치고받고 싸우다 경찰까지 출동했습니다. 물론 아래층 아줌마가 김 씨 마누라한테 [이 미.친.년! 정신병자!] 뭐 이런 식으로 심한 말을 하긴 했지만, 그 순하디 순한 김 씨가 그래 화를 내는 모습은 저도 처음 봤으니까요.
헌데 그 순간 김 씨의 표정이 딱 그때와 같습디다.
“나와 이 자식들! 나와!! 내가 그렇게 가르치디?”
연거푸 소리치는 김 씨, 그제서야 저는 정말로 안 되겠다 싶어 조심히 김 씨에게 다가갔습니다. 사실 그 꼴을 계속 보고 있는 것도 지쳤구요. 해서 말했습니다.
“김 씨... 심정은 알겠는데... 이제 그만해... 애들 다 죽었잖아. 이제 그만해 응?”
“뭐...요?”
순간 등짝으로 식은 땀이 줄줄 흐르더군요. 머리칼도 뭐 마냥 쭈뼛쭈뼛 서구요. 돌아보니 김씨가 도끼눈을 뜨고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래층 아줌마의 멱살을 움켜잡던 그 표정으로요. 그러더니 와락 제 멱살을 움켜쥡디다. 그리곤 그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 누가 죽어! 누가!!”
버럭 고함을 지르는 김 씨, 그 놈의 손에 들린 야구방망이가 금방이라도 저를 후려 칠 듯 높이 들렸습니다. 정말이지 그 순간엔 오줌이라도 찔끔 쌀 것 같았어요. [이거 잘 못 걸렸다. X됐네. 씨팔 망했다!] 별별 생각이 다 듭디다.. 미친 데는 약도 없다는데, 재개발 조합장한테 그깟 돈 몇 푼 받겠다고 동의서 받으러 왔다 오늘 나 죽겠구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고,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오금이 다 저립니다.
“뭐라고 했냐고! 우리 애들이 죽었다고? 앙? 앙?”
김 씨의 고함소리가 한층 격해졌습니다. 당황한 저는 그 순간을 어떻게든 모면해야겠다는 생각에 제 멱살을 움켜 쥔 김 씨의 손을 잡고 사정하듯 말했습니다.
“아... 아니! 아니! 내가 미쳤지 헛소리를... 아니야! 아냐! 오해야 오해! 내가 말실수 한 거야! 응? 김 씨...”
미안한 표정으로 읍소해 봤지만 김 씨의 표정은 영 누그러들 기색이 보이질 않습디다. 풀어내려 해도 옷깃을 움켜 쥔 손이 더 단단히 조여 왔구요. 저는 너무 놀랐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격렬히 몸을 흔들며 저항했습니다. 그 덕인지 제 멱살을 꽉 움켜쥐고 도무지 풀어줄 생각을 않던 김 씨의 손이 스르륵 풀리더군요. 물론 그 때문에 저는 [꽈당]하고 엉덩방아를 찧긴 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죠. 생각해보세요. 눈앞에 미.친.놈이 있는데, 잔뜩 흥분해선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는 겁니다. 제 머리통이 무슨 야구공도 아니고 제대로 한 번 후려치면 골통이 부서지겠죠.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저는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래서 본능적으로 누운 채 발을 밀어 뒷걸음질을 쳤죠. 헌데 이게 웬일? 올려다보니 이거 김 씨의 표정이 보통 심각 한 게 아닙니다.
“뭐라고 했어! 응? 뭐라고! 누가 죽어? 앙?”
“으으... 오.. 오해야 김씨! 내... 내가 말실수 한 거라니까? 헤헤! 화 좀 풀고, 일단 그거! 그래 그 방망이부터 내려놓고 우리말로 하자고 말로!”
“X까 이 나쁜 새끼야!”
“흐아아악!”
[휘익! 붕!] [쾅!], 지금에 와 고백하지만 정말 찔끔, 찔끔 새어나오더이다. 뭐긴 뭐겠어요. 오줌이지. 누운 채 벌린 제 가랑이 사이로 김 씨가 후려친 야구방망이가 날아왔는데, 제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고자가 될 뻔 했습니다. 방망이가 제 그곳과 불과 몇 센티 앞에 떨어져 있더군요.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웠던 건 그 난리를 치고도 전혀 가라앉지 않은, 아니 되려 한층 더 흥분한 김 씨의 광기어린 눈빛이었습니다.
저는 놀라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마음 같아선 동의서고 뭐고 걸음아 날 살려라 냅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하필 김 씨가 서 있는 방향이 애들 방 앞이자 동시에 문 앞이지 뭡니까!
[툭]하고 등에 벽이 와 닿았습디다. 좁은 빌라, 도망쳐봐야 어디겠습니까? 그래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지. 김씨는 여전히 흥분한 채 다가오고, 저는 선택을 해야 했죠. 급히 돌아보니 양 옆에 문이 두 개, 하나는 화장실, 하나는 안방입니다. 어디든 딱히 마음 가는 곳이 있을 리 없었지만, 순간적으로 저는 창문 하나 없이 꽉 막힌 화장실보단 차라리 안방이 났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안 그렇겠어요? 옆집이니까 집 구조는 제가 싹 꿰고 있었거든요. 창문도 없는 낡은 빌라 화장실, 거기 갇히면 끝 아닙니까? 끝! 그 생각에 저는 고민할 것도 없이 김 씨를 피해 후다닥 안방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문도 바로 잠궜구요.
“나와 이 새끼야! 남의 마누라 있는 방에 왜 들어가니!”
“나오라고!!”
그러자 김 씨가 악에 받혀 소리를 지르는데, 정말이지 죽도록 무섭습디다. 한 평생 착한 일은 안 했어도, 어디서든 원망 받을 일은 안 하고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세상에 그런 저한테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다니... 저는 정말로 무서웠습니다. 두렵고 겁이 나서 문을 잠그자마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대뜸 다리가 풀리더군요. 하지만 문 밖의 김 씨는 도무지 성에 차지 않는지 이제는 급기야 방망이로 낡은 문을 두드리며 소리 쳤습니다.
“나와! 이 새끼야! 거기 내 마누라 있는 방이라고! 나와!”
“미친 놈, 죽은 니 마누라가 여기 왜 있어!!“
그때는 정말이지 너무 억울하고 악에 받혀서 저도 소리를 질렀습니다. 정말이지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으니까요. 헌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는 거지만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제가 소리치기 전까진 단순히 겁을 주려는 듯 문을 두드리던 김 씨가, 이후 갑자기 금방이라도 문을 부술 듯 거세게 내려치기 시작했거든요.
[쿵] [쿵!]
누군가 이 소리를 듣고 경찰에 신고라도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너무 큰 바람이었을까요? 네, 경찰... 오시긴 했겠죠. 제가 김 씨의 방망이에 맞아 죽은 후에... 문득 옆집이라고 휴대폰도 놔둔 채 쓰레빠 하나 질질 끌고 찾아간 저를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또 살아야 안 되겠습니까? 냉정을 되찾은 저는 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보니 뻔한 살림이라 뭐 있는 것도 없더구요. 오래돼 칠이 벗겨진 자개장 하나, 낡은 침대 하나 그리고 그 뒤에 창문이 보였습니다. 누구라도 그 상황이 되면 그러겠지만 당연히 저는 침 대 뒤 창문을 통해 빠져나가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문도 때려 부수는 미.친.놈입니다. 장롱 안에 숨었다간 같이 박살나기 십상이죠. 일단 안 방 창문을 통해 베란다로 나가고, 혹 놈이 따라와도 최대한 피해 보자고요. 마음 같아선 창문 밖으로 뛰어 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무려 4층입니다. 4층! 빌라의 위치와 구조가 특이해서 밖에는 뭐 잡을만한 것도 없고, 언덕 옆이라 저희 빌라 베란다 앞 공간은 여타의 아파트 7~8층 높이와 맞먹습니다. 마침 그때 [쿵]하는 소리와 함께 문짝의 일부가 부서졌습니다. 놀라서 바라보니 뚫린 문 틈 사이로 김 씨가 노려봅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어휴 그 섬뜩함은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그건 사람의 눈이 아니었습니다. 잔뜩 분노해서 사람을 찢어 죽이려고 달려드는 짐승의 눈, 딱 그거였습니다.
그 와중에 제가 달리 무엇을 하겠습니까! [톰과 제리마냥 추격전을 하던 숨바꼭질을 하던 일단은 몸부터 피하고 보자!] 앞 뒤 가릴 것 없이 저는 대뜸 몸을 일으켜 침대 위로 뛰어 올랐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물컹]
무언가 요상한 감촉이 침대 아래에서 느껴집니다. 그러고 보니 너무 긴장해 느끼지 못했던 요상한 내음이 코를 찌릅니다. 그래도 다급한 마음에 앞으로 나아가보려 하지만 계속해서 발에 밟히며 짓이겨지는 요상한 촉감, 그건 찝쩌분한 느낌은 정말 밟아본 사람만이 압니다.
상황은 다급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또 요상해서, 이런 찜찜함을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더군요. 마침 김 씨는 연신 방망이즐 하면서 문짝을 깨부수느라 정신도 없고...
정신 나간 짓이지만, 호기심이 들어 슬쩍 손을 아래로 뻗어 침대 위 덥혀 있던 이불을 들췄습니다.
“이런 미친!!!”
놀라 나자빠진 저, 그 순간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줄줄줄!] 아랫도리가 젖어 옵디다.
물컹한 것의 정체...
그건 침대에 숨겨둔 채 썩어 문드러진 마누라 강 씨의 시체입디다.
[쾅!!!]
그 순간 커다란 굉음이 들리고, 부서진 문짝이 장난감 블록 마냥 나뒹굴었소. 물론 그 앞엔 씩씩대며 방망이를 들고 선 김 씨가 있었구요.
“이 개.새.끼야!! 니가 감히!!”
그 광분한 표정은 직접 보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될 정도였습니다. 단순히 미.친.놈의 미친 짓거리... 그런 흔해빠진 말론 설명이 안 돼요.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죽여 없앨 것 같은 흉폭함!
이성적인 대화 따윈 통하지 않을 극단적 광기(狂氣)!
세상 그 어떤 표현을 빌려 써야 그 표정을 설명할 수 있을까 싶지만...
단언컨대 무얼 생각하든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미쳐 달려드는 김 씨, 빨리 도망쳐야 하는데, 하필 주저앉은 다리가 말을 듣지 않습디다. 놀라서 그냥 얼어버린거죠. 벌벌벌 떨기만 겁나게 떨리고 도통 말을 들어먹어야 말이죠. 창피한 말이지만 그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질끈 눈을 감는 것 뿐입니다. 죽이든 살리든 니 맘대로 해라... 그러면서요.
하지만 저를 향해 날아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김 씨의 야구 방망이가 웬일인지 오질 않습디다. 긴장한 저는 조심히 실눈을 떠 봤죠. 그런데 거기엔 웬걸 죽은 제 마누라 시신을 끌어 안고 울며 오열하는 김 씨가 보입디다.
“여보! 여보... 흑흑... 좀 일어나 봐...흑흑”
검게 썩어 문드러지다 못해 두렵기까지 한 시체를 김 씨가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썩어 흐른 것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시체의 체액이 김 씨의 얼굴에 묻어 한층 더 기괴한 모습이었습니다. 진득진득한 뭔가가 이마와 뺨을 타고 흐릅디다. 피도 아닌 것이 흐를 듯 말 듯 턱 선을 타고 주우욱 늘어집디다.
그 순간 다행히 몸이 말을 듣더군요. 저는 덜덜 떨려오는 다리를 겨우 일으켜 세워 조심히 창문을 열었습니다. 다행히 김 씨는 죽은 제 아내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우느라 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들을까, 행여나 볼까...
살금살금 저는 창문을 열고 겨우겨우 밖으로 몸을 내밀었습니다.
[조금만 더 그러고 있어라. 제발... 제발!! 조상님,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뭐든!!!]
생전 찾아 본 적 없는 조상님 이하 세상의 신들이 총 망라됐습니다. 힐끔 돌아보니 김 씨는 여전히 제 아내를 끌어안은 채 울고, 그 틈에 깨끔 발로 선 제 발가락이 먼지 쌓인 베란다 위에 안착했습니다. 됐다. 이제 됐다. 그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 베란다로 넘어가 다시 거실을 지나 냅다 도망치면 될 일이다.세상사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저는 김 씨가 들을까 숨죽여 거실과 연결된 베란다 창을 넘었습니다. 그리곤 곧장 거실로 연결된 베란다 창을 열었죠. 헌데 하필 [끼이익] 낡은 유리 샷시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열립디다. 왜 꼭 가장 절박한 순간이면 그런 듣기 싫은 소리가 불청객처럼 나타나는 걸까요? 그런 원망으로 가득 찬 제 귓가에 그 높은 [라]음의 끽끽대는 소리보다 더 불편한 한 마디 목소리가 들립디다.
“어딜 가려고!”
“흐힉!!”
김 씨... 김 씨가 어느새 안방 문을 돌아 거실에 서 있었습니다.
“사... 살려줘 김 씨! 응?”
“살려... 줘? 남의 마누라 혼자 있는 방에 기어 들어가 놓고! 뭐? 살려줘? 옜다 이 개.새.끼야!”
욕설과 함께 김 씨가 달려들었습니다. 놀라 옆으로 몸을 피하니 [쨍그랑]소리와 함께 커다란 유리 샷시가 와장창 깨져나갔습니다. 다급히 옆으로 몸을 피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깨진 것은 그 유리샷시가 아니라 제 머리통이었겠죠. 저는 급히 몸을 일으켜 도망치려 했지만, 망할 주책없는 두 다리가 또 놀랬는지 오금이 저려 제대로 서기조차 힘들었습니다. 후들후들 떨려오고, 자꾸만 주저앉으려 하더군요. 망할!
“그래서 죄 짓고 못 사는 거야! 어딜 도망쳐!”
다시 일어서 뛰어보려 하지만 역시나 다리가 말썽입니다. 급한 마음에 내달리니 몇 걸음 못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떼구르르 뒹구니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코끝이 시큰하여 돌아보니 더 이상 숨을 데도 없는 거실 한 켠의 주방입디다.
“오! 오지마!”
그래도 긴 세월 나쁜 짓 안하고 살아온 덕일까요? 막다른 곳에 몰렸지만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급히 더듬은 손에 무언가 잡혔는데, 내밀어 보니 칼입니다.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네...”
허나 여전히 광기를 드러내는 김 씨, 입을 벌리고 배시시 웃는데, 그 모습조차 괴기스럽기 그지없더군요. 얼굴엔 아직도 죽은 마누라한테서 묻은 썩은 체액이 뚝뚝 흘러내렸구요.
“비! 비켜! 비키라고! 찌... 찌를 거야! 가까이 오면 찌를 거야!”
“죽여! 죽여봐 한 번! 뭐? 정신병자 가족? 앞에선 웃고, 뒤에선 손가락질 한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미친 놈! 미.친.놈!!”
“뭐? 내가 미쳐? 우리 마누라한테도 그러더니 이제는 나까지 정신병자로 몰려고?”
“히이익!”
[쾅!]
시퍼런 식칼도 미.친.놈 앞에선 아무 소용없습디다. 제가 서 있던 자리의 싱크대가 김 씨의 방망이에 맞고 부서졌습니다. 칼을 든 건 저인데, 위기상황에 몰린 것도 저였습니다. 그야말로 저까지 미칠 것 같은 상황이었죠. 완전히 미쳐서 광기를 쏟아내는 김 씨, 그리고 안 방에 방치된 마누라 강 씨의 시체...제 직감이 맞다면, 아마 아이들 방에도 죽은 김 씨의 아들과 딸의 시체가 있었을 겁니다.
도무지 제 정신으로는 감당 할 수 없는 미친 상황이었죠.
아마 그래서 그랬을 겁니다.
저까지 미쳐가기 시작한게...
[푹]
칼을 들었습니다. 김 씨는 달려들었고,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 흥분한 나머지 김 씨의 동작이 컸고, 살고자 하는 제 의지가 조금 더 강했습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가슴 팍 한 가운데에 [쿡], 뼈가 닿았는지, 아니면 급박한 제 마음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는지, 반쯤 박힌 칼날이 부러지니, 김 씨가 저를 바라보며 그러더군요.
“나... 안... 미쳤어...”
“히이이익!!”
저는 놀라 뒤로 나자빠졌고, 김 씨는 그대로 선 채 비틀거렸습니다. 잠시 후 [텅!] 알루미늄 야구방망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털썩]하며 김 씨가 앞으로 고꾸라졌습니다.
그 후엔 제가 했는지, 아니면 우리 마누라가 했는지... 경찰이랑 119랑 달려왔고...
저는 저대로 넋이 나가 멍해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니까 여깁디다. 여기...
“예... 그러셨군요.”
송파경찰서 유홍석 경사가 살인 사건의 피의자인 정씨를 보며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도 믿기 힘든 기괴한 이야기였으나 실제로 사건 현장에 다녀온 인근 파출소 순경이 적어낸 보고서와 대부분 동일했다. 칼에 찔려 죽은 이웃 주민 김 씨, 그리고 수습되지 못 하고 방 안에 방치되어 있던 그의 아내 강 씨와 두 아이의 사체... 유 경사는 측은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고생하셨소. 얼마나 놀라셨을까? 참... 살다보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게 현실이라 안 합니까. 그래도 살아 오셨으니 얼마나 다행이오.”
“네... 감사합니다.”
“담배 하나 드릴까요?”
“아닙니다.”
“원래 안 태우시나보죠?”
담배를 내미니 급히 손사래를 치는 정 씨를 보며 유 경사가 물었다. 그러자 정 씨는 연신 몇 번이나 땅이 꺼져라 한 숨을 내쉬더니 이내 말했다.
“네... 안 태웁니다. 끊은 지 10년 됐소...”
“에헤이... 그럼 안 태우셔야지... 거 뭐... 정황이나 증거나 다 맞는 거 같고, 조서도 다 썼고, 오늘 고생하셨는데 댁에 들어가서 씻고 푹 쉬쇼.”
“예...”
정 씨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 경사는 그가 취조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 한 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깊게 들이 마신 후 깊이 들이마셨다 내뿜는다. 희뿌연 담배연기가 경찰서 취조실 안에 자욱하게 번져갔다. 마침 취조실 청소를 할 생각인지 의경 하나가 손걸레를 들고 안으로 들어온다. 유 경사가 물었다.
“정수야. 너 올해 몇 살이냐?”
“스물 하난데요?”
“대한민국 자살률이 세계 몇 위라더라? 정신질환으로 뒤지는 인간이 암 환자 만큼 많단다. 웃기지?”
“예? 예...”
“요즘 사람들 거... 정신력이 약해 빠져가지고! 우린 땐 안 그랬는데 말야! 죽을 용기로 살아야지... 그치?”
“예? 예... 근데 여기 발 좀 치워주시면 안돼요?”
*****
경찰서 앞, 터벅터벅 걸어 나온 정 씨는 괜시리 입구를 지키는 이에게 가벼이 목례 한 번 하고 모퉁이를 돈다. 골목에 접어들자 때 마침 휴대폰이 울렸다.
“에이... 전화 할 때까지 전화하지 말라니깐!”
전화를 받자마자 정 씨는 짜증스레 일갈한다. 신경질적인 반응이다. 그리곤 급히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지나는 이가 없나 확인한 후 말했다.
“어쩌긴 어째... 그 미친 새끼가 눈치를 깐 거지... 연탄불 가져다 놓은 거, 정신 나간 즈그 마누라가 한 거 아니라고 빠득빠득 난리치는 통에 혼났다. 미친 놈! 뭐?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묻지를 못해? 또라이 같은 새끼! 끼고 살게 따로 있지... 그 다 썩은 걸... 돈도 필요 없다고 죽인다며 달려들데? 가스 중독돼서 피죽도 못 먹은 몸으로... 흐흐흐.아 몰라!대충 둘러 댔어, 정당방위... 뭐 그런 거 있다 안하나? 오이야. 언능 허물고 싹 새로 짓자. 분양권 확실히 챙기 달라 하고... 응...”
통화를 마친 정 씨가 품에서 담배를 꺼내어 문다. 희뿌연 담배 연기가 허공에 흩날린다. 한 참을 뻐끔대던 그는 무언가 아련한 옛 기억이 떠오르는지 나직히 중얼거렸다.
“내가 소시적에는 도청 백일장도 나가고 그랬는데... 돈이 문제다 돈이...”
끝.
여기까지만 보셔도 됩니다만...
사실 결말 두개를 써 놓고 고민하다가...
뭐 그냥 재미로 보시라고 다른 결말 하나 더 올려봅니다.
*****
송파경찰서 유홍석 경사가 살인 사건의 피의자인 정씨를 보며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도 믿기 힘든 기괴한 이야기였으나
실제로 사건 현장에 다녀온 인근 파출소 순경의 이야기와 대부분 동일했다.
칼에 찔려 죽은 이웃 주민 김 씨,
그리고 수습되지 못 하고 방 안에 방치되어 있던 그의 아내 강 씨와 두 아이의 사체...
유 경사는 갑갑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래도 이게 살인 사건이라... 댁에 돌아가시긴 힘들구요.
일단은 자세한 조사 끝날 때 까진 여기 좀 계셔야 겠습니다. 이해하시죠?”
“네...”
“담배 하나 드릴까요?”
“아닙니다.”
“원래 안 태우시나보죠?”
담배를 내미니 급히 손사래를 치는 정 씨를 보며 유 경사가 물었다.
그러자 정 씨는 연신 몇 번이나 땅이 꺼져라 한 숨을 내쉬더니 이내 말했다.
“네... 안 태웁니다. 끊은 지 10년 됐소...”
“에헤이... 그럼 안 태우셔야지... 죄송한데, 저는 한 대 태우께요. 긴 얘기 들으니까 갑갑해서... 이해하시죠?”
“그러쇼.”
정 씨가 동의하자 유 경사는 담배에 불을 붙인 후 깊이 들이마셨다 내뿜는다.
희뿌연 담배연기가 경찰서 취조실 안에 자욱하게 번져간다.
피의자를 눈앞에 두고 혼자 담배피우기가 머쓱했던지 물끄러미 정 씨를 바라보던 유경사가 물었다.
“그나저나 우울증 참 무서워요. 그쵸?”
“네... 그러게요. 그것이 옮는 병이 아니라고 했는데... 김 씨가... 참...”
“그게 꼭 옮는다기 보다는 뭐냐... 이래, 저래 영향을 받을 순 있을 거에요. 그쵸?
그렇게 생각하면 옮는 거 맞죠 뭐... 어디 뭐 조사 보니까. 대한민국 자살률이 세계 몇 위다.
뭐 그래 싸면서 전국에 정신질환으로 죽는 사람이 암 환자 만큼 많다 네요. 참 사람들이 거...
정신력이 약해 빠져가지고! 그 말야! 죽을 용기로 살아야지... 그쵸?”
“그러게요. 근데 저는 김 씨나 강 씨 맴이 쪼끔은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이제야 말이지만.”
답답한 마음에 정 씨가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그리곤 측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유경사를 향해 말했다.
“경사님... 담배 하나만 주십쇼.”
“아니! 끊으셨다면서... 웬만하면 참으시지...”
유경사가 달래보려 말하지만 정 씨는 울화통이 치민다는 듯 울상을 지으며 소리쳤다.
“지금 이게 웬만한 일입니까?”
“쩝... 그건 그렇죠. 옜소... 한 대 태우쇼. 한 대 태우고... 연기랑 같이 싹 날려 버리면 되지 뭐...
까짓 10년 금연... 그 뭐 별 건가?”
유 경사는 선심 쓰는 정 씨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까지 풀어주며, 담배 하나를 꺼내어 내민다.
정 씨는 담배를 입에 물었고, 유 경사가 불을 붙였다.
비좁은 취조실 안이 곧 두 사람이 내뿜은 담배 연기로 자욱하니 흐려진다.
“후우... 좀 낫네...”
정 씨가 말했다. 그러자 유경사가 웃으며 대꾸했다.
“그쵸? 몸에 안 좋니 어쩌니 해도 답답할 때는 이거만한 게 없다니까? 그쵸?”
유 경사가 웃으며 맞장구를 쳐보지만 정 씨는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아닌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뇨... 그거 보다는... 향불 마냥 담배라도 태우니까... 좀 낫네요.”
“예 향? 왠 향불?”
“저 년 놈들... 그리고 애새끼들 썩은 몰골 안 보이니까... 좀 낫다고요... 씨팔!
경사님은 믿을라나 모르겠는데, 아까 정신 차린 다음부터... 저것들이 보이네...
망할! 정신 병 그거 옮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김 씨 그 새끼랑... 그 마누라쟁이랑...
그것들 미친 거... 흐흐... 이제야 이해가 가오... 왠 종일 저것들이 따라다니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배겨?”
“예? 무... 무슨...”
정 씨의 말에 유 경사가 당황한 듯 묻지만 어느새 인가 정 씨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몽롱하니 허공을 바라보는데 그 모습이 마치 넋이 나간 사람 같다.
“이... 상허게... 자꾸 흥분이 되고... 미치겄네... 저 육시랄 것들...
꺼져라 이 미친 것들아! 죽었음 그만이지 왜 애먼 나를 따라다녀!! 앙!”
느닷없이 벽을 보며 소리치는 정 씨, 흡사 누군가와 주먹다짐이라도 하듯 허공으로 팔을 훼훼 내젓는다.
그 모습을 본 유 경사가 놀라 말했다.
“갑자기 왜 이러쇼... 꼭 정신 나간 사람마냥!”
“뭐?”
희번덕거리는 눈, 붉게 충혈 된 눈동자 사이로 알 수 없는 광기가 흘러나온다.
놀란 유경사가 몸을 뒤로 빼며 피해보지만, 흥분한 정 씨의 몸이 취조실 탁자 위로 올라섰다.
“왜... 왜이래! 응? 이봐! 당신 미쳤어?”
“미쳤다고? 너도 지금 내가 정신병자로 보이냐? 앙?”
“으... 이... 이봐! 허... 헉!”
소리를 질러보려 하지만 어느새 목을 움켜 쥔 우악스런 손길, 때리고 차고 물어봐도
흡사 넋 나간 사람처럼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목을 조른다. 하얗게 질려가는 유경사의 얼굴,
그 위로 피의자 정 씨의 입가에서 침이 흘러 뚝뚝 떨어진다.
“겉으로는 웃고, 뒤에서 조롱하는 것들... 다 죽일 거야... 다... 흐흐흐”
정씨의 등 뒤, 김 씨와 그의 아내 강씨, 그리고 아이 둘...
그 뒤에 어느 틈에 흐릿한 유 경사의 모습이 비친다.
정 씨가 말했다.
“히히... 히히... 나... 나한테 미쳤다 하는 놈들 있으면 다 죽일 거야...
다... 나 안 미쳤어! 안 미쳤다고! 안 미쳤어!!!!!”
"탕! 탕! 탕! "
총소리가 들렸다. 총을 쏜 것은 같은 경찰서의 동료인 장경위였다.
절친한 동료였지만 이제 장경위는 죽은 유경사를 그리워 할 필요가 없어졌다.
끝.
두 번째 결말이 더 공게스럽긴 하나... 판단은 읽으시는 분이...
네. 저 선택장애 조금 있습니다.
어떤게 더 나으셨느지 말씀해주시면 나중에 다른 글 쓸 때 도움이 될 꺼 같네요.
부탁드려요.
출처 |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