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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사 중(壞死 中)
게시물ID : readers_153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거세된양말
추천 : 2
조회수 : 27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9/06 01:46:47
괴사 중(壞死 中)


세존께서 오시려면 수십만 년도 더 남았단다.
나는 그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썩은 몸뚱이로는
도무지 그분을 맞이할 수가 없는 탓이다.
앙굴리말라는 차라리 미치기라도 하였지, 미친다는 것은
죄의식도 자문도 버리고 광란한다는 것으로
오히려 수행길 들려면 어떻게든 미쳐야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정신병원 대기실에 앉아있으면
온갖 병자들의 온갖 병증이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그리하여 진료실 문 열고 들어갈 때쯤이면
어엿한 미치광이가 될 수 있는 편리한 시대다.

아흔아홉 개의 손가락만 모으면 세존께서
내 앞에 오시지 않을까 싶어 밤새 술 마시며
칼인지 펜인지를 숫돌에 존나게 갈았다.
이빨 사이에 욕지거리 물고 갈았다.
그것은 오래전에 이미 수십 번이나 피맛을 보았다.
내 좁디좁은 가슴에서 심장이 발악하며
바깥으로 뛰쳐나가려 할 때마다 나는 출구나마 만들어보려고
복장뼈를 부수고 늑골을 여는 방법에 골몰하였다.
그러나 칼날인지 펜촉인지는 주로 살점만을 뚝뚝 열어제끼고
핏줄기 묻은 채로 방치되었다. 그래서 시방 내가 갈고 있는
이 칼인지 펜인지도 남의 손가락을 절단하기는커녕
아, 쓰바, 석가세존 만나도 할 말이 없으니
불문학으로 꽉꽉 들어찬 책장에 끼워 넣고
나는 잠이나 잘 듯 싶다.
한여름에 동면이나 할 듯싶다.

한여름인데도 내 난도질당한 영혼은 간질 환자처럼 발광이다.
춥고 시려서 돌아가시겠으니 당장이라도 악업 쌓고
지옥 유황불꽃에 따뜻해지자고 발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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