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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 최고로 소름돋았던 기억.txt
게시물ID : military_486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쓱싹쓱싺
추천 : 0
조회수 : 154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9/06 20:49:12
때는 2014년도 무더운 여름 민통선 관측소에서 근무를 서고 있을때 이야기다. 그날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12시간 근무를 서는 여느날과 다름이 없었다. 큰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초라한 점심을 먹은 나와 동기는 이등병 하나를 관측소 밖에 세워두고는 초소 안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당시 군생활 D-50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나와 동기의 화제는 지금 돌이켜보건데 아마 지난 군생활의 회고+앞으로 사회에 나가서의 얘기+집가고 싶다 징징 등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사건의 발달은 이야기를 시작한지 약 한시간 뒤이었다. 나와 동기의 위장이 점심을 소화하기 시작하면서 어김없이 졸음이 우리를 조금씩 잠식하였다. 생리현상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 우리는 곧 딥슬립에 이르는 지경에 다다랐다. 하지만 평소 잠을 자도 인기척이 나면 깨던 나의 감지능력과 밖에서 근무서던 이등병을 과신한 것이 화근이 될 줄은 누가 상상했으랴. 잠이 든지 얼마 되지 않아 관측소의 물이 열렸고 그 소리에 '동기이리라'라고 생각한 나는 혹시나하는 마음에 문쪽을 쳐다보았다. 찰나의 순간 나는 방탄의 약장에 무궁화 두개를 보았고 직감적으로 군생활 최대위기임을 느낌과 동시에 지난 군생활의 즐거웠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감을 느꼈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필승!'을 외쳤으나 그는 경례를 받아주지 않은 채 매우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선글라스 뒤에 숨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을 그렇게 쉽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그의 굳게 다문 입술 때문이었으리라. 소스라치게 놀라 가출했던 나의 인지능력이 제자리로 돌아와 그가 대대장임을 알아챘을 때쯤 그가 우리의 근무태말을 질책하기 시작했다. 나의 경례소리를 듣고서야 깨어난 동기와 같이 신나게 털리고 있을 무렵 문득 근무를 세워놨던 이등병이 생각났다. 대대장 모르게 눈알을 굴려 창문 밖의 이등병을 쳐다보았을 때 나는 대대장 역시 나와 같은 곳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곧 이등병에게 '넌 뭐하냐'고 물었고 이등병은 '관측 중'이었다는 의심스런 대답을 내뱉었다. 그러자 그는 선글라스 너머로도 볼 수 있을 만큼 눈을 번뜩이며 이등병에게 '넌 왜 혼자만 근무서냐. 계급이 뭐냐'고 물어보았고 이등병은 원망스럽게도 자신의 계급인 '이등병'이라는 대답을 했다. 대대장은 이어 나의 동기에게 '계급이 뭐냐'고 물어봤고 나의 동기는 사실대로 '병장'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대대장은 '요놈들 봐라?'라는 표정으로 다음 피고인인 나를 심문하기 시작했다. 병장인 나 역시 무기력하게 '병장'이라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대대장은 이 현장이 부조리의 장(場)이라고 넘겨짚었을 것임은 불보듯 뻔한 것이었다. 이것은 대대장이 가고 난 후의 이야기이지만 대대장이 가고 난 후 나와 동기는 밖에 있었꼬 이등병은 근무가 끝날 때까지 관측소 안에 있었다.
한껏 기세가 오른 대대장은 먹이감을 찾아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팔을 걷어야하는 여름철이었지만 뙤약볕에 살이 타는게 싫었던 나와 동기는 팔소매를 내리고 있었고 이를 먹이감을 찾아헤메는 포식자가 눈치채지 못할리 없었다. 대대장이 '팔을 걷어올리라'고 약간 언성을 높였다. 그 다음 그의 눈은 쌍안경을 메고 있어야 할 우리의 목을 향했다. 하지만 쌍안경을 메고 있을 리 만무한 우리에게 대대장은 '쌍안경은 어딨어'라고 약간 더 언성을 높였다. 항상 우리의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화를 내면서 자신이 말하는 것을 듣고 더 화를 내는. 대대장 역시 스스로의 말을 곱씹어보았는지 갑자기 '쌍안경을 왜 안 차고 있어!!!'라며 포효를 내질렀다. 내 바로 앞에서 사람이 그렇게 단시간에 점진적인 분노의 3단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아이유의 3단 고음 이후로 처음일 것이다. 그는 곧 '근무 똑바로 서라'는 말을 남긴 채 레토나를 타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 후 나와 동기는 'X됐다'를 연발하며 이 와중에 군인기본정신인 보고를 충실히 하였다.
군생활 도중 하지말아야 할것을 해서 몇 번 걸린적은 있지만 중대장을 넘어 대대장급의 지휘관에게 직접 걸린건 처음이었기에 군생활이 끝난 지금 돌이켜보아도 소름이 돋는 경험이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날 다른 근무지에 부사단장과 연대장이 방문했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에게 걸렸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서늘해지고 심박수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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