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 서양인들이 교역하러 오지 못한 이유
게시물ID : history_180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프린스엔리크
추천 : 1
조회수 : 2403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4/09/07 03:08:29
1(6).jpg


당시 서양인들의 항로는 이러했습니다

주로 서양인(네덜란드,포루투칼)들은 중국 강남지방과 대만지역에 교역을 했는데, 

그 옆에 바로 일본이 있었던겁니다

지형상 우리는 중국과 일본이 감싸앉은 형태로 되있기때문에 항해시에 거쳐갈만한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서양인들은 조선에 들어오지 못하고 바로 일본으로 가게 된것이죠


나중에 측량과 항해 기술이 발전한 뒤 1800년대 현종시절쯤에야 이양선들이 조선에 들어오는데

그 이전에는 지형학상 은둔의 나라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고려시절에 이슬람상인들이 찾은것은 뭐냐?

이렇게 말하실수도 있지만 


당시는 팍스 몽골리카나,

즉 몽골의 세계질서에 포함된것이 당시 고려였

당시 고려는 몽골 황가와도 연결되 있었으므로 몽골을 찾은 이슬람인들이 중국을 거쳐 고려까지 올수 있었던겁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2014-09-07 07:56:48추천 3
서역상인과는 고려 이전에 삼국시대부터도 교역하지 않았나요?

그리고 조선때도 해안가에서는 서양인들과 교역이 이루어졌다고 알고 있어서요
댓글 0개 ▲
2014-09-07 09:01:47추천 2
글쎄요. 지형적특성이 많은 영향을 끼치긴했지만 지형적 특성만가지고 이것을 논하기에는 조금 부족함이 있어보입니다.
이를테면 일찍이 울산은 국제항이였죠.  실제로 유리그릇이 발굴되기도하였습니다. 또, 청해진도있었고
고려태조도 교역을 중심으로 성장했던 호족이였던것을 보면, 조선이전에는 서역과의 교역이 활발했던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조선후기때도 중상주의자들 서적에서도 서역와 동남아일대의 교역이 필요함을 강조해왔고요.
그러면 단순히 지형적문제만은 아니라고봅니다.
저는 우선 시장경제의 수요와 공급에서 판매자(서양열강)들이 조선에 대해 그렇게까지 메리트를 느끼지 못했다라고 생각됩니다.
서양열강들의 판매품목은 "크리스쳔 종교 개종", "총포류"등이지요.

하지만 성리학으로 굳어진 사회에서 크리스쳔종교개종은 쉽지않았고, 일본의 에도막부아래의 번국전쟁과 다르게 강력한 중앙집권화가되어있는 조선으로써는 총포류 또한 판매가 여의치않았으리라고봅니다.
특히 물건을 구입함에있어서도 서구가 원하는 방식의 도자기가 아니였거든요. 실용적이고 화려한것을 원했던 서구의 사상과 다르게
절제미를 추구하는 조선백자가 먹혀들리가 없었을껍니다.
댓글 0개 ▲
2014-09-07 09:14:29추천 1
조선이 성리학으로 굳어진 사회인지, 실용적이고 화려한 물건이 있는지 없는지도 일단 조선에 와 봐야 알 일 아닙니까? 그런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큰 문제는 당대 서구 세력의 아시아 접촉이 중국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거였어요. 본격적으로 선교사를 동반한 대일본/중국 무역이 시작된 것은 명나라 때고, 이 때 포르투갈은 마카오와 나가사키에 각각 거점을 두고 무역을 행합니다. 근데 이게 사실 훨씬 개방적인 무역을 원하며 함대로 협박하다가, 전성기였던 명군에게 개털리고 나서 아쉬운대로 명이 자비를 베푼 마카오에 눌러앉은 것이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유럽은 동북아시아의 질서를 중국 중심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조선은 유럽 세력 입장에서 볼 때 완벽한 중국의 속국입니다. 조선 입장에서 뭐라 얘기하든 명을 통해 자신들이 보고 들은 바는 그랬겠죠. 이런 상황에서 마카오를 떠나 다시 (자신들이 볼 땐 중국의 세력권 일부인) 조선에 무역거점을 만들려고 한다? 한 번 더 개털리고 싶어 안달이 나지 않으면 이럴 수는 없습니다.
댓글 0개 ▲
2014-09-07 09:53:31추천 0
저도 윗 분들 말씀대로 지정학적인 문제는 그리 큰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실질적으로 조선은 일본과는 별개로 중국에게 명목상으로 예속되어 있던 상황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소개된 조선이 중국과 별개의 국가라고 유럽인들이 생각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네요. 유럽 사회의 구조상 여러지역들이 자치적으로 운영되고 명목상의 왕이 존재해 하나의 나라구나 하고 규정되었듯이 중국에 속한 수많은 제후 국의 하나로 여겨서 중국의 영토 중 하나로 생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일본의 경우는 조선을 통해 중국대륙과 무역을 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중국과 연계된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중국도 일본에 대해서 자신들의 영역안에 들어온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그러니 중국에서도 잘 모르지만 별거 없는 곳으로 여겼을 테니 굳이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구요. 서양인들에게 있어서 존재는 하지만 중국인들도 잘 모르는 미지의 지역이라하니 궁금증에 이런 저런 상상이 붙여지게 되고 신비의 나라로 여겨져서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가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아랍인들을 통해 중국도 말로만 유럽에 전해졌을 때 용도 살고 신비한 괴물이 사는 지역으로 유럽인들이 알고 있었죠. ㅡㅡ;;

마지막으로 시장경제적인 측면보다 정치적(?)인 착각에서 빚어진 결과라고 여겨지네요. ^^
댓글 0개 ▲
2014-09-07 12:12:59추천 1
몽골 이전에도 비단길은 굳이 닫혀있지 않았던걸로 압니다.
댓글 0개 ▲
2014-09-07 12:52:31추천 1
몽골 이전 고려 중기에도 이슬람 교역했습니다.
신라시대에도 이슬람 교역했습니다
댓글 0개 ▲
2014-09-07 13:14:54추천 1
17세기에 조선에 대한 서양의 환상은 "금과 은이 쌓여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조선과 접촉을 하려는 열망과 시도 또한 있었어요. 오유 게시판에도 몇번 언급된 것 같은 동인도회사의 코레아 호도 그 노력의 일환이었지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일본이 서양인들이 조선과 접촉을 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조선 또한 문호개방의 의지가 없었습니다.

도쿠가와가 집권하고 난 후 노력을 했던 점이 "왕위 정당성"을 입증하려고 한 것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엄청난 파티를 열어서 "자기 자신을 축하해주러 왔다"라는 식으로 일본 대중에게 인지를 시키려 했습니다.

이중에서 제가 읽은 내용 중에서 일본에서 서양인들이 조선 관리에게 접근하려고 했던 적은 두번 있었습니다.

한번은 일본 관리를 통해서 조선과 연결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던 것이었고, 다른 한번은 직접 조선 관리에게 다가간 적입니다.

일본 관리를 통했을 때에는 조선과 무역을 하면 일본과는 무역을 할 수 없다고 말해서 조선에게 접근하는 것을 포기하였고,

조선 관리에게 다가갔을 때는 조선 관리가 야만인들과 말하지 않는다며 대면을 피했습니다.
댓글 0개 ▲
2014-09-07 14:58:13추천 1/3
조선에 와서 뭘 팔고 뭘 사갈건데요?
조선 옆에는 알다시피 중국이 있습니다. 차, 도자기 같은 거는 중국에서 사가는게 여러가지로 더 낫고..
조선입장에서도 중국과 교역이면 거진 부족한거 다 커버되요.

그럼 일본에서는 뭐 사갔냐고요????
노예 있잖아요. 심지어 하라 마르티노, 치치와 미겔의 유럽 순례기 교황방문기를 보면 유럽까지 가서 창녀촌을 들렀는데 창녀들이 다 아시아인이었다. 놀라서 말을 걸어보니 일본에서 왔다고 해서 충격먹은 기록까지 있습니다.

근데 조선에서 같은 조선인을 노예로 파나요? 아니면 뭐 전쟁하느라 없는 은이나 황금 팔아서 서양 상인들에게 유황을 삽니까?.

상인은 이익이 나면 죽음도 불사하는법, 설령 진짜 뭐 키르키라노스나 시서팬트가 있는 전설의 항구라도 이익이 나면 찾아가요.
근데 이익이 안나는게 문제였습니다.
댓글 0개 ▲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