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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살 청년, 제가 살아온 이야길 풀어봅니다... :)
게시물ID : gomin_8752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Y2lqY
추천 : 0
조회수 : 18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10/21 07:59:14
안녕하세요,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이른 잠자리에서 깨어나 일상의 시작을 준비하시고 계셨나요, 아니면 아직 잠들지 못하는 밤이신지요.
저는 어느세 어긋난 생활 패턴 덕에 잠들지 못하고 밤을 지세우고, 왠지 꽁기한 마음에 이 글을 쓰고 있네요.
부족한 말솜씨지만, 크게 심호흡 한번하고, 제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어쩌면 푸념일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ps. 쓰고보니 스크롤이 길어졌네요. 부디, 한번 쯤 제 푸념을 들어주시고 지나가시면 안될까.. 부탁드려봅니다. 




21살의 청년.
아직 어린 나이이고, 스스로도 어린 나이임을 알고 있지만.
새삼스레 참 많은 일을 겪고, 남다른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정사부터 시작해볼까요.

 어릴적, 그 흔한 부모의 사랑 한번 받지 못했고, 집안은 불화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화가 저에게 튀어서 아버지가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죠. "고아원에 갔다 버리겠다." 실제로도 저를 들어내서 끌고 가려는 행동이 있었고, 그때마다 할머니가 제지하시고 저를 데리고 도망치셨었습니다. 아직도 저 말은 제 가슴에 못박힌 말이네요. 그리고 8,9살이 될 때 쯤, 아버지의 빚으로 인해 온가족이 빚더미에 앉고. 10살 무렵 부모님은 저를 할머니 밑에 두고 결국 별거와 이혼을 합니다.

 부모님이 나가고 고모는 하루하루 제 앞에서 제 부모님 욕을 하기 바빴고, 대략 10년 동안 그 얘기를 들으며 살았기에 부모님이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랐습니다. 실제로도 부모님에게 사랑받는다 느낄만한 무언가가 없기도 했고, 교류도 많지않았구요.

 저는 할머니와 고모 밑에서 자랐는데, 18살이 저물어갈 무렵 할머니가 돌어가셨고. 할머니가 중환자실에 계실 무렵부터... 고모는 저에게서 지원을 끊기 시작했죠. 서서히... 결국엔 완전히 지원을 끊고, 쌀한톨 나눠주지 않았습니다. 저희집은 2층 집이었고, 양층에 모두 주방과 욕실이 있어 저는 아래층에서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자취하듯이 살았습니다. 집세와 공과금은 안내도 됬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제 수입은 용돈 5만원이 고작... 아무리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점심,석식은 학교에서 해결한다고 해도 한달 생활비로는 택도 없는 금액이었죠. 부모님에게 상황을 말하고 생활비 지원을 요청해도 돌아오는 말은 항상 '돈 좀 아껴써라'였습니다. 이 말을 몇 번 쯤 들었을까... 모든 걸 포기하고 5만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다 결국 고3 여름방학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스스로 생활비를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3 때 또 다른 대사건이 터졌죠.

 고모측의 이야기는 항상 듣고 있었고, 고모가 할머니 생전에 항상 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재산싸움하게 되면 내 편을 들어달라."라는 이야기 였죠. 항상 할머니 안돌아가시니까 그런 재수없는 소리 하지말라,라고 어물쩡넘어가고, 결국엔 알았으니 그만 좀 말해라,라고 끝을 본 이야기 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할머니 돌아가신 후, 재산 싸움 중. 어쩌다보니 부모님 측의 이야기를 듣게 됬는데. 양쪽의 이야기가 맞물리는 부분이 전혀 없더군요. 전혀요. 아무리 인간이 주관적인 생물이라지만 이건 너무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교차점이 없었고.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만나고 왔다고 집에 온 저한테 와서 계속 '가서 무슨 얘기했어?'라며 묻는 고모를 피하다가 결국 얘기했습니다.
 난 누구 편에도 안서겠다고. 난 그 싸움에 빠지겠다고.

 그랬더니 고모가 아주 노발대발 하더군요.
 자기 편 안들어준다고. 자기 편 들어준다 하지 않았었냐고. 왜 부모편을 드냐고. 그 배에서 났다고 그 편드는거냐고.

 더욱이 어이가 없더군요... 난 아무편도 안들려는 거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말라고 했으나. 끝까지 계속 같은 소리만 반복하더군요. 그래서 그 날 정말 
끝장을 볼 정도로 싸우고, 서로 죽니 사니 할 정도로 싸움이 커졌는데. 고모부가 말려서 간신히 싸움이 끝이 났고. 그 이후로 고모는 서로 마주쳐도 눈도 안마주치고 아는 척도 안하는 남 같은 사이가 됬습니다. 특히 그 날 이후로 제가 사놓은 식재료도 가져가는 악날한 짓도 약간 있었습니다.

 20살이 되고, 대학은 안갔고. 커피를 하고 싶었기에 전문학교에 바리스타학과를 지원해서 다녔죠. 여전히 용돈은 한달에 5만원... 생활비 지원 또한 여전히 전무...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학교 생활도 안되고... 공부도 안되고... 돈도 돈데로 궁핍하더군요...
 그런 도중, 1학기가 끝난 방학중에, 원레살던 집(할머니 집)이 재개발에 들어가서 집을 뺐어야 했습니다. 그땐 갈 집도 못구했고. 급히 짐을 빼서 원룸텔에 들어가서 2달 정도 생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상황이 터지기 전... 아버지는 계속해서 완강히 같이 살자는 입장이었지만, 저는 끝까지 안합치고 혼자 살겠다고, 그러니까 지금까지 못해준거에 대한 보답으로 라도 방구해달라고. 열심히 다퉜고. 결국 얘기는 방을 구해준다는 이야기로 끝마치고.
 2개월 원룸텔에서 머물다, 보증금 3000을 지원받아. 지금 사는 집에 들어와. 알바로 돈을 벌어서, 월세를 내며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끝일거라 생각하신다면... 슬프게도 아니네요. ㅎㅎ...



두번째 이야기, 학교 생활을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ㅎㅎ...

 어릴적, 성격이 정말 심각할 정도로 내성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격 자체에 여성적인 면이 강했죠...
 성격 덕분에 주변 친구들과 친해지지 못했고, 주변 친구들에게 놀림받는게 일상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제일 심했던 경우는 학원에서 두 친구에게 맞으면서 괴롭힘을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맨날 울기만하고 어디가서 말하지도 못하고...

 갑작스런 여담이지만, 정말 말도안되게 웃긴 얘기는. 그때 절 괴롭혔던 두 친구 중 한 친구는... 지금 제 10년지기 절친이 됬습니다... 어느날 큰 깨닳음이 있었는지, 갑작스럽게 어른스러워져버려서. 친구지만 제 마음의 멘토가 됬고. 그 친구에게 큰 배움을 얻고 저도 급 성장해서. 지금은 서로 배움을 주고받는 그런 사이가 됬네요... 참 웃긴일이죠. ㅋㅋㅋㅋㅋ

뭐... 아무튼. 초등학교 시절을 지난 이후로 구타같은 일을 격은 적은 없었지만. 중학교 시절에도 절 놀리는 무리는 끊이지 않았고. 그때 당시 특유의 욱하는 성격 덕에 절 놀리는 무리들과 마찰이 끊이지 않고 반복됬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고1 때는 절 놀리는 애들은 있었지만 일상이었기에 그나마 그냥 평탄한 편이었죠. 이미 여성적인 성격이나 행동은 컴플렉스가 되서 마음에 상처가 남지만. 그냥 견딜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 무렵, 학교 생활에 지장은 없었지만... 이미 쌓여온 삶에, 제 개인적인 고민에 고민이 겹쳐... 서서히 우울증 증세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해선 후에 언급하도록 하죠.

 그렇게 고2가 되고... 반에 일진이 하나 있었어요. 일진에게 내성적이고, 말 못하고, 놀림감 확실한 저는... 참 좋은 타겟이었죠, 자신의 입지를 넓히기 위한. 반 아이들의 2/3은 절 맨날 놀려댔습니다. 그땐 성격만이 이유가 아니었어요. 그냥 제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모두가 다 놀림감이고. 제가 어떤 발악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그냥 놀림감이 됬죠. 그때 당시 학업에서도 손을 놨던 시기고, 학교 생활도 질려...있었기에... 학교생활도 제대로 안했습니다.

 담임만은 제발 절 투명인간 취급해주길 바랬는데, 계속 절 화두에 올리고. 계속 저를 앞에 세우고. 저에게 아이들의 관심이 쏠리게 해주시더군요. 마치 자신의 본보기라도 삼으려하는 건지... 아니면 이미 나락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저를 개도하고 싶었던건지... 그렇게 나날이 놀림은 심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할머니가 중환자실에 들어가신 이후부터 가뜩이나 무너진 멘탈은 나날이 무너지고, 우울증은 나날히 심해졌습니다. 이때부터는 정말... 학교에서 하는 말이 채 10마디도 안될 정도로 아무말도 안하고. 아무 표정도 없고. 수업도 듣지 않고. 그저 책만 읽고 잠만 잤습니다.

고2가 흘러가고, 고3이 될 때... 반을 잘 선택했어야 했는데. 제가 크게 잘못 선택한 덕에. 고2 때 반 아이들의 2/3이 저와 함께 3학년 같은 반으로 진급했습니다. 고3 땐 나락에서 벗어 날 수 있을거라 믿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당연히 고3 때도 2학년 때와 다를게 없었습니다. 하하.
 심지어 담임의 대응마저 같더군요. 자꾸 절 화두에 세우고, 자꾸 절 중심에 세웠습니다. 면담할 땐 왜 친구들이랑 안친해지냐고, 고등학교 때 친구가 평생가는 거라며 뻔한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아예 대놓고 말했었습니다. 전 이미 이 애들한테 고2 때부터 무시당해왔고, 이미 이 상황을 바꾸려는 노력은 충분히 했고.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담임의 행동이 변하진 않더군요...

 고2 때보다 우울증은 한층 더 심화되서 더 책만 읽고 잠만자고, 학교는 지각하는게 태반. 이땐 정말 학교가기가 싫었습니다. 학교에 가면 하루 동안 정말 아무말도 안하고 집에 돌아오는 날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그래도... 고3 2학기부턴 담임도, 아이들도, 절 없는 사람 취급해줘서 참 편했던 것 같습니다. 점심시간 전 수업시간에 잠들어서, 점심시간에 아무도 안깨우고, 텅빈 교실에서 혼자 눈떠서 뒤늦게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건 여전히 괴로웠지만... 그래도 차라리 투명인간인게 좋았습니다.

 고3 1학기를 마칠 쯤부턴 정말 자괴감이 들고 너무 괴로워서 자퇴하고 싶었는데, 지금까지 해온 2년 반이 아까워서, 반년만 버면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 걸 검정고시로 하는 건 너무 아까워서 자퇴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자퇴도 못하고 3학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면서 버텼습니다.


그렇게... 12년의 고통이 세월이 지나고... 완벽히 심각한 우울증에 찌들어 있던 제가 남았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이야기 입니다.

제 우울증에 이바지한 저의 고민... 앞으로도 영원히 저를 따라다닐... 저의 고민이죠... ㅎㅎ
초등학교 6학년 때, 제 정체성에 대해 크게 깨닳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1 때 부터는 확신했죠.

저는... 동성애자입니다. 네, 게이에요. 그때부터, 아직까지도, 앞으로도. 게이에요.

남들 다한다는 정체성의 혼란? 그런건 없었어요. 너무 자연스럽게 깨닳았거든요. 제가 게이라는 걸. 아마 너무 이른 나이에 깨닳아서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혼란은 없었지만, 제가 소수라는 자각은 있었어요. 내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걸 저도 알았기에. 그거에 대한 우울함이 너무 컸죠. 중학교 시절에도 없진 않았지만... 그리 크진 않았기에 그런데로 살만했어요.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정말... 내가 소수라는게 뼈저리게 느껴지더군요. 그 사실이 정말 뼈에 사무치게 슬프고, 우울했어요.
아마 그 무렵부터, 게이라는 소재의 개그 코드가 조금씩 물 위로 떠오르던 시기였기에... 더 크게 슬퍼했던 것 같네요...

지금은, 제가 게이라는 거에 대해서 우울함은 없습니다.
많은 성소수자들을 만났고, 제 친구들에게 한 커밍도 성공적이었기에,
이성애자인 친구와도 자연스레 제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사이가 됬습니다.
그리고, 성소수자를 안좋게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그러려니,하고 상처를 받지 않을 수도 있구요.
다만, 아직까지는... 성소수자에 대해서 욕하고, 무조건적인 비방을 하는건.. 좀 마음이 멍멍해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세번째 이야기는 여기까지가 끝입니다... 사실 별 이야기 거리는 없네요. :)



여기까지, 가정사, 학교사, 개인사.를 모두 포함해.
총체적 난국이었을지도 모를 삶을 살아온,
스물하나, 청년의 이야기였습니다.

뒷 이야기를 해드리자면.
여성적인 성격은, 아직 잔상은 남아있지만, 사회생활을 하고, 제 스스로도 콤플렉스여서 계속 바꾸다보니.
이젠 그냥 보면 그냥 평범한 남자되, 좀 탠션 높은 남자애 같은 성격이 됬습니다.
내성적인 것도 사회생활 하고, 우울증이 나으면서 사라졌구요.
그리고, 우울증도 1년 조금 넘게 일한 가게 덕에 병원도 다니지 않고 모두 나았고.
이제 그저 감기처럼 지나가는 우울증 뿐이 없는. 지난 삶에 비해 비교적 평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젠 좀 살만합니다. 사는게 즐거워요.:)
돈에 치이는 거만 빼고!!!

아,그리고, 요즘 가을이라고 주변에 커플이 만연하는데.
전 오유인 아니랄까봐 ASKY를 벗어나지 못하네요. ㅠㅠ!
아주 커플 확 찢어버리고 싶네요.
ㅡ자취하느라 연애할 돈따위 없는건 안비밀. ASKY

그저 가슴이 먹먹해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풀어봤는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네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



그냥 생각나서 쓰는 쓸데 없는 소리지만,
성소수자도 그저,
일상 속, 수 많은 일들 속에 함께 흘러가는,
그저 평범한 사람 중 하나일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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