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귀신 얘기, 무당 얘기, 한많은 혼령 얘기를 무척 밝히는데 정작 귀신은 믿지 않는다.
물론 가끔 뒷목이 이상하게 서늘해진다거나
한 달 내내 똑같은 가위에 시달리며 살이 쭉쭉 빠지는 등
흔히 말하는 '귀신의 소행'같은 일들을 겪은 적은 있지만
전부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일들이라고 생각해서, 가끔 오싹할지언정 귀신의 존재는 부정해 왔다.
이런 내가 '혹시 세상에 귀신이 진짜로 존재하는 걸까' 생각하게 한 사건이 2002년에 일어남.
아직 클래지콰이를 만나기 전,
맘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합정 지하 스튜디오에서 이런저런 음악을 만들며 하루하루 꿈을 꾸던 시기였다.
친구가 엔지니어로 알바를 하고 있는 스튜디오의 렌탈 스케줄이 끝나면 거길 자유롭게 써도 된다고 허락을 맡고
늘 심야에 만나 작업을 하곤 했다.
그 날도 고즈넉한 기타 아르페지오에 맞춰 새 노래를 녹음하고 있었는데
휘갈겨 쓴 영어 가사는 사랑을 잃고 슬픔의 노래를 부르며 강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강도 흐르고 있고
밤늦게 부르는 어두운 사랑의 노래에 왠지 그날따라 이입이 잘 돼서
부르다가 몇 번쯤 머리가 띵하니 눈물까지 나오곤 했다.
첫인상은 그냥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구나 정도였는데, 부르면 부를수록 내가 노래에 꽁꽁 휩싸이는 듯한 묘한 느낌에
글루미선데이가 처음 녹음될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부르다가 너무 감정에 겨워서 잠깐 중단하자 하고 컨트롤룸으로 나가 녹음된 파일들을 함께 체크했다.
녹음된 목소리는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그전까진 조금 힘있고 또렷한 목소리로 노래해 왔는데 그때 녹음된 목소리는 꼭 회보랏빛 안개같이 뿌옇고 여린 목소리였던 것이다.
나에게도 이런 목소리가 있었구나 하고 처음 발견한 순간.
보컬 트랙은 대여섯 개 정도.
첫 트랙부터 확인해보는데,
노래 끝 부분 후주에 얹히는 허밍 부분에 잡음이 좀 들어가 있었다.
본녹음이 아니어서 잡음에 크게 신경을 안 썼기에, 내가 노래부르며 움직이느라 옷깃 스치는 소리나 슬리퍼 소리 같은 게 타고 들어갔겠거니 했다.
별 생각 없이 잡음이 들어간 부분을 삭제하고 다음 트랙을 모니터하는데
다음 트랙에도 같은 부분에 비슷한 잡음이 녹음돼 있었다.
디렉팅을 보고 있던 친구는 웃으며 나에게 핀잔을 주더라. 노래 좀 얌전하게 부르라며.
'나의 무아지경의 예술혼을 니가 아느냐'고 받아치고 그 부분을 같이 확인했다.
스슥스슥 뭔가 스치는 듯한 소리.
소리의 원인을 찾으려고 소리를 증폭해서 들어보는데
스치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그 소리는
스슥스슥 바람 새는 듯한 누군가의 속삭임이었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정신줄을 잡고, '뭔가 버그인가? 다른 녹음 파일이 섞여들어갔을 지도 몰라'하고 합리적인 설명을 애써 찾으며 나머지 보컬 파일들도 열어서 들어 보았다.
대화가 멈췄다.
모든 파일에, 같은 위치에,
같은 속삭임이 녹음되어 있는 거다.
거기에 우리를 더 소름끼치게 했던 건,
다른 녹음 파일이 섞여들어간 거라고 애써 믿으려 했던 우리의 바람을 깨트려버린 증거.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으되
매 트랙마다 조금씩 다른 어조와 타이밍으로 말하고 있었다는 사실.
누군가가 마이크 옆에서 나와 함께 녹음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할 법하게.
사람이 너무 놀라면 의외로 법석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도 뛰쳐나가거나 소란을 일으키지 않았고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은 가운데
우리는 홀린 듯, 녹음된 누군가의 목소리가 하는 말을 받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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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오후 7시
제주도
카페 벨롱
호란 공연
예매 링크→ http://goo.gl/forms/gBEPO8bZ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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