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 꽃다발…한국-그리스 축구 교환 이벤트 무산 [중앙일보 2004.08.13 04:56:53]
[중앙일보 정영재 기자] 어이없는 일이었다. 아테네 올림픽 개막 경기인 남자 축구 한국-그리스전에서의 꽃 교환 이벤트는 결국 무산됐다. 경기에 앞서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꽃을 주고받기로 한 약속을 우리 측이 깬 것이다.
12일 새벽(한국시간) 테살로니키 경기장. 그라운드 중앙에 선 그리스 주장 스톨티디스의 손에는 정성껏 준비한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그런데 한국팀 주장 박용호의 손에는 꽃이 없었다. 대신 국제 경기에서 의례적으로 교환하는 페넌트를 둘둘 말아 들었다. 그러고는 어정쩡하게 그들의 꽃다발과 교환했다.
상황은 단순했다. 경기 4시간 전 주 그리스 한국대사관 직원이 전해준 꽃다발을 우리 대표팀 주무가 숙소(하얏트호텔)에 두고 온 것이다. 우리 국화인 무궁화와 올리브를 섞은 꽃다발이었다. "첫 경기를 앞두고 이것저것 챙겨 경기장에 오느라 깜빡 잊었다"고 했다.
꽃 교환 행사는 우리 쪽에서 제의한 거였다. ''테러 위협 속에서 올림픽을 치러내는 그리스 국민에게 격려의 꽃을 선물하자''는 중앙일보의 제안(7월 23일자 ''노트북을 열며'')을 이연택 대한올림픽위원회(KOC)위원장이 받아들였고, 아테네 도착 후 그리스 측과 협의했다. 그리스 측에서도 "좋은 아이디어"라며 받아들였다.
KOC는 11일 "양팀 주장이 자국의 국화가 담긴 꽃다발을 교환하기로 했다"는 공식 보도자료까지 냈다. 제28회 올림픽의 첫 장면은 그렇게 장식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당일. 그리스는 우리 제안에 따라 꽃을 준비했고, 정작 꽃을 주겠다고 한 우리는 빈손으로 갔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뿐 아니라 그리스 측을 조롱한 꼴이 됐다. 정해문 주 그리스 대사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꽃 교환 행사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은 누구도 경기 전에 이를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관심을 가졌더라면 경기장과 자동차로 20분 거리인 호텔에서 꽃을 가져올 시간은 충분했다.
무엇보다 한국선수단은 그리스에 큰 결례를 했다. 그리고 한국민의 성숙함과 의젓함을 전 세계에 보여줄 기회도 놓치고 말았다. 우리 대사관 측은 "정말 아쉽다"고 했다. 그리스 측의 반응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