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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파업한 경험담
게시물ID : economy_75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kj1120
추천 : 8
조회수 : 682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4/09/09 20:01:00
많은 분들이 캐나다에서 경험한 일을 글로 재미있게 쓰시는데 자극을 받아 저도 제 경험담을 한번 써보겠습니다 
(오우에 가입하고 눈팅만 하다가 처음 쓰는 글이네요 ㅎㅎ)

먼저 저는 2006년도에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와서 항공정비를 공부한 30대 초반의 남징어 입니다.
중딩때 포기한 영어로 이민와서 아둥바둥 공부하고 졸업하여 항공정비쪽에서는 나름 큰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저희 회사의 주된 업무는 캐나다 공군의 c130 수송기를 정비하는 일을 하는건데 계약기간이 길어서 나름 안정된 직장입니다.

입사후 3년동안 많을걸 배우고 순조롭게 자격증도 취득하여 회사에 애사심을 가질 무렵인 작년 10월쯤에 
직장동료들이 모여서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더군요. 
저도 끼어서 이야기를 해본즉슨 저희 회사가 다른 큰 기업에 넘어갔다는 겁니다.
그기업은 나름 대기업으로 여러가지 안좋은 소문도 있는 기업이었습니다 (노조를 별로 좋아 하지 않고, 보험이나 여러 혜택들이 짜다고 들었습니다)
새로 오너가 된 대기업에서 파견된 사람은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일을 많이 따와서 회사가 더 커질것이다" 
같은 희망적인 이야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일은 따오지도 못하고 회사에 일이 별로 없다는 핑계로 레이오프(회사에 일이 없을 경우 잠시 직원을 레이오프 하고 나중에 다시 사람을 고용해야 할 경우에 레이오프된 사람부터 불러들이는 제도)로 80명을 자르더군요. 여기부터 직원들의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결정적인것은 노조와 회사간의 계약을 갱신할때 생겼습니다. 회사측에서 노조측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조건은 기존 직원들의 월급과 혜택(휴가나 보험같은) 그냥 유지해주고 대신 새로 뽑는 직원들의 휴가와 보험 그리고 연금을 줄이겠다고 했습니다.
노골적으로 노조를 부수려고 준비를 한것이지요. 노조측에서는 협상을 하려고 했으나 회사측에서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결국 파업을 할지 말지에 대해서 표결에 들어갔고 98.2%의 지지로 파업이 결정되었습니다. 
모두가 하는 얘기가 우리만 좋자고 미래에 막 사회에 들어선 새동료를 희생 시킬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구호도 SAME WORK, SAME BENEFIT 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 파업이 결정되자 저는 걱정이 많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이유는 한국에서 파업이 어떻게 되는지를 뉴스나 인터넷으로 봤고 공권력이 얼마나 회사 편으로써 노조를 탄압하는지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용역을 동원해서 우리를 공격하면 어떻게 하지? 경찰이 우리를 안도와주면 어떻게 하지 등등 여러가지 걱정이 계속 생겨나더군요

결국 노조와 회사는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파업날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되자 저와 직장동료들은 툴박스를 끌고 회사 밖으로 나와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밖에 나와 우리의 파업의 정당성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하고 본격적인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걸 파업은 제가 생각 한것보다 굉장히 평화로웠습니다.
그냥 핏겟을 들고 회사 입구에서 계속 걸어다니고 지나가는 차나 회사에 들어가려는 차를 잠시 세워서 파업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정도였습니다
IMG_2586.JPG

회사측도 서큐리티 가드만 고용하여 우리가 위법 행위를 하는지 카메라로 채증하는 정도가 다였습니다.
노조를 해산 시키려고 폭력을 사용하는것도 위협을 하는것도 없었습니다.
서큐리티 가드는 우리가 이야기를 한다는 핑계로 차량을 일부러 못나오게 했더니 경찰에 전화하고 
경찰은 순찰차 한대가 와서 우리에게 주의를 주는 정도였습니다.
나중에는 서큐리티 가드측에서 하두 많이 전화를 했더니 고만좀 전화를 하라고 화를 냈다고 합니다 ㅎㅎ

3~4일이 지나고 파업이 점점 길어지자 심심한 애들은 알아서 놀걸 찾아오더군요
프리즈비를 가져와서 던지고 놀고,캐치볼도 하고 럭비도 하고, 골대를 가지고와 필드 하키도 하고,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산책도 하고, 근처 호수에 가서 수영도 하고, 점심 저녁으로 바베큐, 핫도그도 해먹었습니다.
IMG_2597.JPG

제가 생각했던 머리를 깍는 비장한 모습도 다같이 열오를 맞춰서 앉자 구호를 외치는 모습도 없었습니다.
그냥 파업을 즐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강아지와 아이들도 데리고 와서 산책하고 같이 노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동료들과 캣치볼도 하고 블랙배리도 따면 많은 얘기를 했더니 더 사이가 친해졌습니다.

이렇게 즐기는 동안 파업이 길어져 결국 정부에서 개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얘기를 들었을때 파업을 처음 할때 같은 긴장감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정부에서 어떻게 든 해줄거야~ 같은 믿음도 생기더군요.
정부에서 내놓은 조정안은 우리 노조의 의견을 많이 반영한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이 었습니다
그렇게 79일간의 파업이 끝이 났습니다.

파업이 끝나는 날 직장동료의 말이 재미있었습니다.
"우리 다 같이 글로브에 사인을 해서 집에 장식해두자 2014년을  추억하며... 라고 써서 ㅋㅋㅋ"

제가 캐나다에서 파업을 하며 느낀것은 캐나다 정부는 한국처럼 무조건 회사편만 들지않고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는것이 신기했고
자신들의 이득과 정의를 위해서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사람들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파업을 지지해주는 일반사람들을 보면서 무언가 찡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여기도 모든 사람이 노조를 지지 해주지 않습니다. 안티 유니온인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자신도 파업한 경험이 있다며 힘내라고 해주는 사람도, 자신은 안티 유니온이라고 미안하지만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만 어느 사람도 우리가 파업하는걸로 배가 불렀다느니 그럴꺼면 그만두라느니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한국도 일반 시민들이 노조가 파업했다고 무턱대고 욕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정부도 무조건 회사측편만 드는것이 아니라 중립적인 입장에서 균형을 잡아 줬으면 좋겠습니다

두서 없고 길기만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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