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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7년의 시간을 함께한 당신에게
게시물ID : gomin_8768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뿅뿅쌤
추천 : 1
조회수 : 28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10/22 19:32:07
 
이제 곧 오빠 생일이네. 다섯 시간 가량을 남기고 있지.
 
2007년부터 지금까지 꽤 많은 생일을 함께했고, 서로 축하해 줬는데 이제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그런데도 도저히 하고 싶은 말을 억누를 수가 없어서 여기에라도 적어.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어디에 쏟아내지 못하면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일단 곧 올 생일 축하해. 오빠가 태어나 주어서, 그리고 내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맙고 감사했어.
 
때론 내 모진 말에 상처입고 짜증스러운 태도에 움츠러들게 해서 미안해. 그것부터 먼저 말해야 할 것 같았어.
 
 
아직은, 우리가 헤어진 데에 내 잘못도 있다는 오빠의 말을 납득하기가 어려워. 내가 어려서 그런 걸까?
 
 
3년 전 오늘 임용 시험을 보는 나에게 한 오빠의 행동들, 그 모나고 공격적이면서도 무성의한 태도에 입은 상처가 아직도 흐리게 흉진 상태로 남아있는 기분이야. 아마 그 때부터였겠지. 오빠의 무성의함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무조건 '너 변했어'라고 따지고 싶지 않았어.
 
 
대학원에 가서 바쁘고 힘들어서 매일 오후 늦게까지 늦잠을 잔다는 말도,
 
피곤하고 힘들어서 많이 찐 살을 뺄 수가 없다는 말도 이해하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어.
 
모진 말을 할 때마다 논문 때문에, 혹은 교수 때문에, 혹은 스터디 때문에 하다못해 페이스북에서 하는 논쟁 때문에 그렇다는 사과의 말도 이해하고 싶었어.
 
 
그리고 그 일들이 조금은 후회돼. 그 때 먼저 오빠를 좀 더 놓거나, 오빠가 나를 놓도록 놔두었어야 했는데... 그게 바보같은 일이었나보다....하고
 
 
 
앞으로 한동안 돈을 벌지 못해도 이해한다고,
 
20대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이제 군대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도 내가 선택한 오빠이기에 이해한다고 했어.
 
나에게 말하지 않고 오랜 시간 군대에 있어야 하는 직책으로 군대를 간다고 했을 때 조금씩 피부로 느꼈어. 아 이사람의 미래에도 나는 당연하구나.
 
 
 
대학원 선후배들이 여자친구가 어린 나이에 정교사라고 많이 부러워한다고 했지?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안정적인 직장, 얻기 위해서 내가 가난을 딛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오빠만큼은 알 거야.
 
물론 돈벌이로서가 아니라 정말 사명감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수술까지 해 가며 하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았으리라 믿어..
 
그렇지만 이 직업 때문에 오빠보다 더 낫다는 생각 하지 않았어.
 
오히려 안정적으로 버니까 좀 빠듯하지만 소박한 두 사람이 될 수 있어서 기뻤어. 오빠가 돈 걱정 없이 연구 계속할 수 있게 돕는 아내가 되어서.
 
 
작년에는 왕복 100km가 넘는 거리 첫 직장을 출퇴근 하느라 힘들어서 내 삶을 살아본 기억이 없어. 매일 야자감독 보충수업 해 가며 살았던 것 말고는
 
근데 조금 적응하기 시작한 올해는 정말 노력 많이 했다고 생각해.
 
오빠가 좋아하는 커피도 직접 볶아주고, 작년에 스트레스로 찐 살도 열심히 뺐었지.
 
날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오빠 옆에서 부끄럽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는데.
 
 
 
그런데 오빠는 이 모든 게 너무나 당연했던 것 같아..........
 
그렇게 가난이 지긋지긋하다고 했던 내가, 돈 하나도 못 버는 사람을 만나 하고 싶은 걸 다 참아가면서 사치는 커녕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돈에 벌벌 떨며, 매일 늦잠 자는 게으른 사람을 보살펴가며. 대강 하는 행동을 다 받아가며...
 
 
 
 
표현하지 않으니까 몰랐던 걸까
 
매일 무릎 튀어나오고 밑단이 헤진 청바지에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으로
 
대부분의 경우 약속시간을 어겨서 날 만났어.
 
항상 피곤하다는 이유로 멍하니 있었고 하루에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어.
 
내가 나무라면 커피를 마셔서 정신을 차리겠다고 했지만, 그게 즐거운 우리를 돌려주지는 못하더라.
 
 
 
 
내가 수술 때문에 먼 병원에 다녀와야 했던 날, 오빠는 가족 행사가 있다고 했고 난 그걸 이해하려고 노력했어.
 
섭섭하다고 하지 않고 어쩔 수 없는데 뭐~ 잘 다녀와.라고 까지 얘기했어.
 
그리고 검사하러 병원에 들어갔는데, 날 빼고는 모두가 애인과 함께 와 있더라.
 
심지어는 아주머니도 친구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함께 왔더라고. 보호자가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그랬을 텐데....
 
어김없이 보호자 왔냐고 물어보는 간호사, 부끄러워 하며 없다고 대답하는 내가 얼마나 초라했는지...
 
한 시간이 걸리는 버스를 타고 돌아가려고 정류장에 와서 목소리라도 듣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어 전화를 걸었어.
 
12시가 되어가도록 오빤 또 연락도 없었으니까.
 
두어번 건 후에야 오빠는 전활 받았지. 목이 잠겨 있어서 걱정하며 물었어, 미안하다고 가족행사 중이었냐고.
 
 
 
그 때 오빠가 너무나 태연하게 대답하지만 않았더라면, 헤어짐을 결심하지 못했을거야.
 
아니, 이제 일어났어. 가족 행사는 이따가 가는데...?
 
 
 
 
 
 
 
 
 
 
 
오빠는 항상 무성의한 태도에 이유가 있었어.
 
힘들었고, 피곤했고, 아니면 엄청나게 아팠지.
 
오빤 늘 아프잖아 하고 말하면 '아니야 오늘은 정말로... 역대 최고로...'하며 변명하기 급급했어.
 
 
그냥 솔직하게 말해줬어야 했어.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날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줬더라면, 이렇게 자꾸 날 속이고 기대하게 만들고 내치는 일을 반복하지 않았더라면.
 
 
 
속상한 마음에 제일 친한 친구 두 명에게 얘길 했어. 그리고 오빠에게 그 카톡을 보여줬지. 뭐라고 했더라..?
 
내가 xx같은 남친이라 미안하다. 근데 그걸 그렇게 당장 고해바치고 날 씹어야돼? 난 정말 지금도 머리가 아프고 죽겠어.
이 카톡도 꼭 공유해라.
 
 
내가 친구들은 수술 결과 어떠냐고 나에게 연락와서 사정을 이야기한 거야. 오빠는 나한테 결과가 어떠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어. 했었지.
 
그 대화가 어떻게 끝났는지 잘 기억나지 않아.
 
오빠가
 
내가 무슨 슈퍼맨이냐? 라고 했을 때 머릿속에서 뭔가 툭, 끊어졌던 것 같아.
 
내가 수술하는 동안 같이 있어달라고 한 거, 수술 다음 날 상태 확인하러 가는 거에 적어도 관심은 가져줬으면 했던 게
 
슈퍼맨을 요구하는 거라고 느껴졌다는 거잖아...............................................
 
 
 
그 때 오빠가 그냥 그렇게만 말했더라면 좋았을 걸. 예전에 다른 데가 아파서 수술하고 입원해 있는 동안 간호해 줬던 이야기를 하면서
 
이번 한 번 못 했다고 그럴 수 있냐고 항의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거야.
 
그랬으면 전에 오빠가 다정하게 병간호 해 주던 모습이 이렇게 슬픈 추억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그 다음 날 오빠는 오후 다섯 시까지 잠을 잤지.
 
 
만나서 말하자는 대답에 무언가를 예감한 듯 알았다고 대답했고.
 
 
 
 
그리고 만나서 시간을 갖자고 했더니, 너무나 당연하게 알았다고 했어. 내년 첫 휴가를 나와서 보자고.
 
그게 언제가 될 지도 모르는데... 난 또 당연하게 기다리는 사람 취급을 받았지.
 
그게 언제냐고 몇 월달이냐고 묻자 내년 6월을 얘기했지. 그렇게 긴 시간....
 
 
정작 그래놓고 왜 울면서 나를 따라나왔을까. 지금 그게 너무 궁금해.
 
가...? 하는 오빠를 뒤로 하고 잘가라고 돌아선 나에게
 
새벽에 보낸
 
"..."
 
은 뭘까.
 
 
 
 
그래놓고 소위 세미나라는 곳에 나가서
 
친구 커플, 한 명의 여자, 과 후배 남자와 함께 10시가 넘도록 있었던 사진을 페북에서 봤지.
 
 
 
 
참았어야 했는데
 
왜 즐거웠냐고 물었을까. 그 순간의 억울함이 너무 못견디겠어서 연락했었어.
 
의심하기 전에 확인하고 싶다는 내 말에 오빠는 하루가 넘도록 억울하다며 화를 냈지.
 
새벽 한 시 반에는 도저히 힘들어서 안되겠다고 먼저 자겠다고 말해놓고, 다음날 사과를 번복하며 화를 냈어.
 
나만 화가 나냐며, 오빤 천불이 난다며.......................................
 
 
 
 
다시 만날 생각은 있는데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는 건 무슨 말이었어?
 
초라하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는 그 말을 믿고 있었어. 조금은 그러고 싶었는데
 
 
 
어제 우리 반에서 내가 정말 예뻐하는 아이가 수시에 다 떨어졌어. 정시는 힘든 학생이라 정말 열심히 상담하고 고민한 건데 이렇게 돼서
 
마음이 정말 아팠어. 면도날에 발을 여기저기 베인 것 같았어.
 
스트레스 때문에 하혈하느라 느낀 통증보다도 마음이 훨씬 아팠어.
 
오빠한테 딱 한 번만 괜찮아.. 라는 말을 듣고 싶었어. 내 아픈 상처를 다 아는 오빠에게라면 그래도 위안이 될 것 같았어.
 
 
그런데 카톡은 하나 달랑 읽더니 다시는 보지 않았어....
 
페이스북도 이제 보니 탈퇴가 되어 있더라고....
 
 
마지막 수단이라고 생각해 건 전화는 끊을 수 없어서 들고있는 동안, 음성사서함으로까지 가 버렸어.
 
한 번만 더, 라고 생각해서 건 전화도 똑같았어...................................................
 
 
 
마음이 변했다면, 변했다고 솔직히 말해주면 좋을텐데.
 
나밖에 여자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 7년을 사귀었으면서 날 그렇게 모르고 의심하냐고 따지던 그 사람이
 
며칠만에 왜 연락마저 끊었을까.....
 
 
궁금하고
 
 
미련하게도 그리운데
 
 
다시 같은 상처를 되풀이할까 너무나 두려워.
 
 
 
만약 마음이 변한 거라 할지라도 이해할게.
 
나 오빠에게 욕하고 화내고 나쁜 짓도 많이 했어. 그것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어....
 
그 상처가 내가 오빠의 무성의한 태도에 받은 상처보다 작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오빠와 함께 지낸 처음 몇 년이 내 인생에 가장 밝고 행복했던 시기였어.
 
엄마아빠때문에 빚에 시달려가며 몸이 마르도록 과외만 다니던 시절이었는데도
 
오빠 덕분에 그래도 즐거운 일이 몇 가지씩 있었던 것 같아.
 
 
고마운 사람이었어. 힘들게 해서 미안해.
 
곧 있을 생일 축하해.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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