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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쌀에서 살까지의 거리
게시물ID : lovestory_877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44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5/31 08:38:04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x8UeArqYtc






1.jpg

유안진사시(斜視)로 본다

 

 

 

피사의 사탑(斜塔)만큼

지구의(地球儀)의 기울기만큼

불편한 듯 위태로운 듯

사람과 귀신 사이 도깨비처럼

하늘이나 땅보다는 반 공중에서

목 디스크 아닌 허리디스크로 기울어져

떨떠름한 눈길로 삐딱하게 꼬나보며

옥의 티가 아니라

티 있는 옥돌이 마땅하다 싶어져

시각은 저절로 삐딱해져 버렸지

기울러져 돌아가는 지구에 붙어살자면

최소한 지구처럼 23.5도쯤 기울어져야지

중심잡기 위해서 기울어져야 했던 피사의 탑처럼

삐딱해야 바르다고

반듯하게 돌아가는 삶이라고

신발 밑창도 삐딱하게 닳아버린 제 몸을 보여주곤 하니까







2.jpg

김석규마음 밭갈이

 

 

 

봄날의 떠나가 버린 꽃잎을 생각한다

아흔아홉 간 지붕 밑에 누워도

이 세상에는 하늘이 덮어주지 않는 곳이 없다

부자로 살면서도 만족을 모르면 근심만 깊고

비록 가난하나 만족할 줄 알면 더 없이 즐거운데

부귀영화가 한갓 뜬구름

하루에 천리를 가는 말도 다람쥐 토끼는 못 잡고

누구 하나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비 올 것을 알아차린 개미는 흙으로 둑을 짓고

큰바람 불 기미를 알아차린 솔개는 날아올라 먼저 운다

바람도 험한 바위를 지날 때는 아무 소리 없다가

부드러운 잎을 만나서는 옥을 울리며 가는 법

묘망의 높푸른 하늘 우러러

손바닥 받쳐 들면 햇빛 가득히 고이는 날

버려진 채 쑥대덤불만 무성히

오래 묵혀놓은 묵정밭 갈아엎는다







3.jpg

박경자무게

 

 

 

겨울 숲 앙상한 가지 위에

엎질러진 허공은 공평하다

 

더하고 덜한 데가 없다

먼 데 능선에서 가까운 골짜기까지

높거나 낮거나

똑같은한 근 반이다

 

문제는 허공이 아니라 저 자신이라는 것

 

염치없이 허공 속으로 쭉쭉 뻗어 오른 갈참나무

눈치껏 팔 벌리고 몸 낮춰 적당히 허공을 견디는 층층나무

휘어지고 비틀어지며

마디 굵은 손으로 허공을 온통 혼자 견디고 있는 오동나무

 

저마다 다른 무게를 견디고 있는 앙상한 가지들을 보면 안다

 

오늘도 허공은

제 속에 시린 바람이 지나가거나 말거나

구름 한 점 품었거나 말거나

더하고 덜한 데 없이

공평하다

견딜만하다







4.jpg

나태주꽃 피는 전화

 

 

 

살아서 숨 쉬는 사람인

것만으로도 좋아요

아믄아믄요

그냥 거기 계신 것만으로도 참 좋아요

그러엄그러믄요

오늘은 전화를 다 주셨군요

배꽃 필 때 배꽃 보러

멀리 한 번 길 떠나겠습니다







5.jpg

문현미쌀에서 살까지의 거리

 

 

 

말끔하게 마당질한 알곡에

언틀먼틀 불거진 한 생의 부스러기를 섞는다

 

표정 없는 일상의 손에 휘둘려 농부의 피살이

땀과 눈물과 애간장이 부옇게 씻겨져 나간다

 

살아 있는 자음과 모음의 배반을 꿈꾸며

먼지 풀풀 날리는 하루를 지탱해 줄 밥솥 안으로

땅의 경전을 집어넣는다

 

작은 우주 안에서 불물고문을 견디며

기꺼이 우리들의 더운 피가 되어 주는

한 톨의 쌀

 

나도 누군가의 입안에서 달콤하게 씹힐

저녁 한 끼라도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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