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단편] 소설가 -1-
게시물ID : panic_877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우라
추천 : 12
조회수 : 125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5/09 19:05:12
옵션
  • 창작글
비가 내린다.

제니는 창밖을 바라보며 방금 끓인 차를 한 모금 홀짝이며 오랜만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중소 출판사의 편집자이자 아마추어 소설가인 제니는 올해 안으로 자신의 이름이 적힌 소설을 출간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녀에게 소설이란 그녀가 업으로 삼아온 목표이자, 평생의 벗 같은 존재였다. 

수많은 베스트셀러가 그녀의 손에서 탄생했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의 책은 커녕 하루에 글 한자 적기도 

빠듯한 나날을 보내왔다. 

그런 그녀가 자기 일에 회의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만약 소설가로서 전업을 한다면 지금의 수입의 반 토막 아니 거의 무일푼 신세로 돌아가는 것 을 뜻했다. 

그녀가 소설가를 존경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그들이 인생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들의 인생에 있어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평생 글로써 자기 삶의 표현 하는 건 
대단히 모험스럽고 고단한 일이었다. 

그녀는 전업 소설가로서 살아갈 용기가 없었다. 

퀭한 얼굴로 원고를 건네주는 소설가의 얼굴을 마주칠 때면 그녀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소름 끼치는 상상이 그녀를 뒤덮었다. 

만약 이렇다 할 작품이 없는 소설가가 큰 병이라도 걸린다면? 그것은 인생의 끝을 의미했다. 

그녀가 3년 만에 소설가로서의 자질이 부족함을 알고 편집장으로서 새 삶을 시작 할 때 였다. 

앨런이라는 아마추어 소설가의 원고를 처음으로 맡은 제니는 앨런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그 책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초판으로 찍어낸 책은 단 100부가 팔리는 선에 그쳤고 남은 2,400부의 반 정도는 
제니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돌아갔다.  

앨런은 아직 초짜 소설가였다. 제니는 그런 그녀의 책이 처음부터 날개돋인 듯 팔리는 건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지만 
앨런은 다르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당신 잘못이야!!!" 

"뭐라고? 그따위 쓰레기 글을 써놓고 나한테 떠넘기는 거야?" 

"쓰레기라고? 쓰레기 라고!!! 당신은 내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어!" 

"아니…. 편집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모두 당신 탓이야." 

"뭐라고?

"제니 당신이 스토리를 멋대로 고쳐 썼잖아!! 난 그런 스토리 원하지 않았는데!!" 

"흥. 그렇게 라도 고치지 않았으면 100부는커녕 1부도 팔리지 않았을걸" 

앨런은 으레 실패를 맛본 소설가들이 그렇듯 그녀는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에는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하고 말았다. 

이후로 그녀는 처녀작을 출판하는 소설가의 담당을 하지 않았다. 

그런 제니가 글을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건 단순히 그것은 그녀의 취미이자 여가활동에 불과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마음먹지 않으면 그녀는 정말로 한 글자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자신에 대한 태도를 고치고 글을 쓰자, 손가락에 누군가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술술 써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녀가 소설가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던 3년보다 더 잘 써졌다. 

아마 그동안 수없이 편집일을 하면서 봐온 훌륭한 작품들이 도움이 됐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글이 잘 써지는 동안 어떤 불안감이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그녀가 도전한 장르는 SF/미스터리였다. SF 한가지 장르로는 독자를 끌어모으기 힘들었지만 
미스터리의 장르는 독자가 꽤 존재했다. 


"SF/미스터리라고?" 


마크는 놀랐다. 그녀는 유능한 편집자 였지만 편집과 글 쓰는 실력은 별개였다
자신에 관대한 사람은 훌륭한 글을 써내기 힘들다. 그것이 마크의 생각이었다. 적어도 그가 아는한 제니는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이었다. 

근데 그녀가 갑자기 그에게 글을 쓴다고 고백했다. 

"훌륭하네요. 그 바쁜 일정 속에서도 글을 쓴다니." 

"지금 비꼬시는 건가요?" 

"아니요…. 전혀. 그저 놀랬을 뿐입니다. 저는 주로 생각하죠. 전혀 글에 관심도 없는 사람 혹 글 쓰는 일과 무관한 사람이 

글을 쓴다면 어떤 스타일의 글을 쓸까? 어떤 장르의 글을 쓸까? 말이죠." 

"그래서요?" 

"저는 당신이 만약 소설가로서 산다면 로맨스 소설가가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요…."

"제가요? 그말을 들으니 기뻐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저는 단 한번도 그런 생각 해보적이 없거든요."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로맨스 소설만 편집을 맡은 거죠? 저는 단순하게 생각한 겁니다." 


생각해보니 제니는 그녀가 편집해온 장르에 대해 깊게 생각한 적 이 없었다.

멀리서 책을 바라본 적이 드물었다. 

제삼자가 봤을 때 편집자로서의 자세로는 실격이었지만 결과물이야 훌륭하니 그녀에게 문제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하지만 저는 주로 SF나 추리소설을 읽어 왔어요. 다르게 생각해 보면
 
고기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채식주의자인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제가 SF/미스터리 소설을 쓰지 못할 이유도 없죠." 

마크는 순간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됐다. 

"그럼 책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면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당신도 알겠지만 제 손을 거쳐 간 소설 중에 초판이 매진되지 않은 소설이 없는 정도는 알고 있겠죠?" 

"어머 영광이네요. 그럼 그때 부탁할게요." 

"기꺼이" 

벌써 마크와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게 두 달이 지났다. 아마 그는 그때 이야기를 기억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A4용지 크기로 두 페이지 정도만 써내려가면 책의 초고가 완성이 될 것이다.



 ---- 





제니가 마크에게 메일을 보낸 건 점심이 지난 후 였다. 대강의 초고를 완성한 후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커피를 4잔이나 마신 덕에 카페인으로 날뛰는 몸을 진정시키기 어려웠지만, 책을 완성 시키자 뭔가가 탁 풀린 듯
 
그만 잠들어 버렸다. 

그녀가 일어난 건 오후 5시가 지나서였다. 평소처럼 핸드폰을 들어보니 부재중 통화가 5건이나 넘게 있었다. 


모두 마크에게 온 전화였다. 

제니는 약간의 현기증과 허기를 느끼며 마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크가 흥분한듯 말했다.

"제니!! 방금 당신이 쓴 소설 읽었어요. 이건 정말 뭐랄까…. 대단한 작품이에요. 

내 평생 이렇게 재밌고 또 문학적 가치가 뛰어난 소설은 처음 읽어봅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소설이 
삼류 불쏘시개로 보일 정도 에요." 

제니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동안 자신이 소설을 쓴다는 사실을 냉소적으로 바라본 마크가 아니었던가 한데 그가 
그녀가 여느때 받아온 찬사보다 몇 배는 부담스러운 찬사가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설마요…. 아직 수정도 못 하고 막 완성된 작품인데…." 

"아닙니다.더는 고칠 곳은 없어요. 당장 출판사로 가서 계약하죠. 내일 시간 되는 거죠?" 

"글쎄요 당황스러워서요. 제 작품을 읽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고…. 아직 다른 사람들한테도 안보여줬는데." 

"이럴 수가 작품을 읽은 사람이 내가 처음이라고요? 세상에…."

마크는 횡설수설하며 제니에게 이 작품이 얼마나 훌륭한지 하나하나 집어가며 설명해주고 있었다. 

"마크 잠시만요. 제가 잠시 아니 한 5시간 후쯤에 다시 전화해도 될까요?" 

"왜요? 무슨 바쁜 일이 생겼나요? 알았어요. 당신이 하는 말이라면 앞으로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하죠. 
그럼 5시간 후에 다시 연락해주세요." 

마크는 그렇게 말하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제니는 무엇에게 홀리기라도 하듯 침대에서 나와 샤워실로 향했다. 

"그게 그렇게 훌륭한 작품이었나?" 

제니가 생각하기에 평소 기본대로 글을 썼기 때문에 그 작품이 그렇게 훌륭한 작품인지는 몰랐다. 

제니는 자신에 무척이나 관대했지만, 자신의 작품에는 꽤 객관적이라고 생각했다. 

마크가 말한 것 처럼 그렇게 훌륭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별 다섯 개로 친다면 세 개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범작이었기 때문에 마크의 호들갑에 제니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제니는 곧장 샤워장을 빠져나와 노트북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크에게 보낸 원고를 클릭하는 순간 경악하고야 말았다. 

"이건…. 잘못 보냈잖아 "

편집을 맡아온 작품을 순간 잘못 클릭하고  자신의 작품이 아닌 다른 소설가의 작품을 보낸 것 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녀가 앨런 이후로 처음으로 맡은 이번에 작품을 처음 출간하는 작가의 작품이었다. 

제니는 핸드폰을 들어 마크에게 걸어봤지만 부재중이었다. 

마크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자신이 작품을 착각해서 보냈다고 말하기엔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자책하며 노트북을 덮어놓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부엌에 들어섰다. 

"오늘은 간단히 먹어볼까." 

냉장고에서 달걀을 꺼내는 순간 주머니에서 다시 한 번 벨소리가 울렸다. 

"하…." 

제니는 작게 짜증을 내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잘못 보낸 작품의 주인인 수지였다. 


--- 


"아 수지 씨? 웬일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편집장님…." 

"편하게 부르라니까요." 

"아…. 제니 그러니깐…. 이게 부탁이라고 해야 할지 너무 갑작스럽지만…." 

"네 말씀하세요." 

"그러니깐…. 제가 쓴 글을 출간 하고 싶지 않은데요…."

"네? 그게 무슨 말인지…."

"죄송해요 고민해 봤지만…. 그 글이 다른 사람이 읽기에 너무 부족하다고 느끼거든요." 

"부족하다고요?" 

제니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그 작품은 마크가 입에 칩이 마르도록 칭찬한 글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초짜 소설가는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제니는 마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 보는 안목은 인정했다. 마크가 그 정도로 칭찬한 작품을 이 아마추어 작가는 알지 못했다. 

"네…. 다시 한 번 읽어 봤는데…. 별로 인 것 같아요." 

"수지씨 출판하는 일이 무슨 어린애들 놀이인 줄 아세요? 벌써 당신 작품을 출판하기 위해 소요된 시간과 비용이 어마어마합니다. 
아직 초판을 찍어내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책에 공들인 시간 비용을 계산하면 어마어마한 위약금을 물어내야 할 거예요." 

"정말 그거면 되는 건가요?" 

"무슨 소리죠?" 

"그러니깐 위약금만 지급하면 되는 건가 하고"

위약금을 지급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말하면 그녀가 한 수 무를 수 알았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수지는 드디어 해답을 얻었다는 듯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위약금을 말해주세요. 지급할게요." 

"감당할 수 있겠어요?" 

"그럼요…. 제가 이래 보여도. 금전이 조금 있거든요." 

"그럼….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말씀드리죠." 

"아! 고마워요. 편집장님!! 아니 제니! 얼마나 이일 때문에 고민했는지!" 

전화를 끊고 나서 제니는 화가 오른 상태로 토스트를 만들어 입에 꾸겨 넣고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이렇게 책임감 없는 사람이 소설을 쓴다니 나 참 소설이 장난이야?" 

마크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온 건 정말로 다섯 시간이 지난 후였다. 

"아 제니? 전화했었나요? 당신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제가 대신 계약을 해버렸습니다. 

제니 들어보세요. 사장님이 글을 읽어 보시곤…. 당장 제니를 앞으로 데려오라고 하더군요." 

이 작자는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사장? 계약? 제니는 순간 얼음이 되어버렸다. 사실대로 말하려 했지만 

이미 엄청나게 머나먼 길을 걸어온 느낌이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