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밤, 김 모 군은 단원고등학교 강당에서 '세월호 침몰' 속보를 보고 있었다. 단원고 교복을 입고 있지만, 김 군은 1학년 때인 지난해 8월 말 학교를 자퇴했다.
김 군은 사흘 전,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단원고에 일이 생겼다는 얘길 들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친구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것이었다. 김 군은 그날 아르바이트를 어떻게 했는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 한동안 입지 않던 교복을 꺼내 입고 학교로 왔다. 그러나 지금 김 군의 친구들은 학교에 없다. 교실도 책상도 텅 비어 있다.
"친구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어요. 친구 누나가 괜찮을 거라고 답해줬어요. 제발 빨리 나왔으면…. 애들이, 선생님이 보고 싶어요. 살아서… 얼굴 한번 꼭 보고 싶어요."
김 군은 지금 친구 천인호 군과 담임이었던 박육근 선생님이 한시라도 빨리 구조되기를 바라고 있다.
"살아 돌아오라"
'세월호 침몰'에 학교도 가라앉았다. 2학년 학생들의 교실은 굳게 잠겼으며, 1·3학년 학생들은 침묵했다. 교복에 '근조' 리본을 단 학생도 있었다. 학교 곳곳에는 형·동생, 선생님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메모와 편지가 붙어 있었다.
"얘들아, 긴 여행 힘들지? 이제 집에 갈 시간이야. 부모님도 너희 애타게 찾으신다. 곧 구해주실 거야. 걱정 말고! 어제도 온 국민의 눈물이 하늘에서 내렸어. 그 애타는 마음 너희가 얼른 돌아와서 좀 달래주라. (중략) 제발 다시 돌아오기만 해주면 매점 1년 이용권도 줄게. 애들아. 이제 돌아올 시간이다! 옷 여미고 버스 탈 준비해. 빨리 와!"
"선생님들에겐 우선 너무 죄송해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수업의 소중함도 몰랐고 우리를 위한 훈화 말씀이 야속하게 들렸던 게 너무 후회스럽고 죄송합니다. (중략) 꼭 다시 무조건 우리 단원고에서 만날 거라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우리 예쁜 아이들을 어른들 잘못으로 이렇게 힘들게 하다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여기저기 눈물바다야. 전 국민이 너희를 걱정하고 돌아오길 기도해. 그러니까 힘을 내자. (중략) 제발 살아 있어줘. 너희는 아직 할 일도 많아. 돌아와서 어른들 혼내줘."
2학년 교무실 앞에서 메모를 읽던 졸업생 김 모 씨(22)는 "친구 동생이 아직 거기에 있다. 3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었던 이지혜 선생님도 배 안에 있다"며 "얘들이 얼마나 추울까. 이제 2학년인데, 두 살만 더 먹으면 대학생인데, 갈 곳도 많은데…"라며 울먹였다.
교실 앞을 서성이던 1학년 이 모 군도 "구조되지 못한 선배가 있다"며 흐느꼈다. 이 군은 울음 끝에 "살아 돌아오라"는 당부를 간심히 남겼다.
복도 한쪽에 모여 있던 3학년 고 모 양과 친구들은 무덤덤한 듯 있다가도 금세 눈물을 떨어트렸다. "걱정 마. 살아 돌아올 거야"라며 서로가 서로를 위로했다. "배고픈 것조차 애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에는 "많이 먹어야 해. 그게 맞는 거야"라고 덧붙였다.
사고 당일, 고 모 양은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한 학생이 교실 문을 다급하게 열고 들어와 선생님을 교무실로 모셔갔다. 반 아이들 사이에서도 이상한 얘기가 돌았다. 너도나도 관련 소식을 검색했다. 배가 뒤집혔다고? 믿을 수 없다는 말과 탄식이 이어졌다. 그 날부터 지금까지 학교는 바다 속에 가라앉은 세월호처럼 슬픔에 잠겨 있다.
단원고 재학생과 총동문회는 18일 오후 8시 학교 운동장에서 실종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메시지 전달식을 가졌다. 전날에 이은 두 번째 기원으로 인근 주민 등 1000여 명 이상이 함께했다. 이들의 기원은 하나였다.
"살아서 돌아와 줘."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2학년 학생은 총 325명으로, 교사 14명이 동행했다. 지금까지 학생 75명과 교사 3명이 구조됐으며, 구조된 교사 중 교감은 지난 18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안산시도 침몰했다"
세월호의 침몰과 단원고의 슬픔은 안산시마저 삼켜 버렸다. 4호선 중앙역 인근 가게에는 '단원고 학생들의 무사 안녕을 기원합니다'라는 전단이 붙었고, 버스를 기다리고 전화를 하면서도 '누구네 단원고 다니지 않았어?'라는 식의 안부 확인이 이어졌다.
안산에서 택시 영업을 하는 송 모 씨(52)는 "이번 일로 안산 지역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일시에 한 지역이 이렇게 큰 슬픔에 빠진 경우는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송 씨는 "승무원들이 탑승객에게 '탈출해라' 소리만 했어도 이 정도는 아닐 수 있었을 것"이라며 비통해했다.
안산시 부곡고 1학년 서 모 양도 성안고 2학년 이 모 군도 친구의 친구 등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이들이 사고를 당했다며 "단원고 주변 학교 모두 숙연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함을 돌리고, 무사귀환 편지를 쓰는 등 단원고의 안녕을 바라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했다.
단원고로 현장 지원을 나온 타 학교 교사 역시 "중학교 때 가르쳤던 학생이 이번 사고를 겪었다"며 단원고뿐 아니라 인근 학교에도 심리 치료를 위한 상담소 운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4년에 한 번씩 학교를 옮기는 교사들의 근무 여건상 스승과 제자로 얽힌 관계까지 생각하면, 학교를 중심으로 한 지역 사회 전체가 뜻밖의 사고로 휘청거리는 셈이다.
올해 2월 아이가 단원고를 졸업했다는 학부모 오 모 씨(46)는 "매일 아침 재잘재잘 거리며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 일을 당했다"며 "너무너무 가슴이 아프다"라고 토로했다. 오 씨는 "모두 아무 일 없이 (집과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아이들이 바다 속에 방치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답답해했다.
경기도적십자 소속으로 단원고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광심 씨(53)도 아들 친구 동생이 이번 사고로 실종 상태라며,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이 씨는 "안산시민이 75만 명이라고 하지만, 작은 동네다. (이번 일 당사자 대부분이) 이웃사촌이다"라며 "동네 전체가 정서적 불안 상태"라고 주장했다.
10살짜리 딸과 단원고를 찾은 조선영 씨(43) 역시 "엄마들 얼굴만 떠올려도 슬프다. 일이 손에 안 잡힌다"라며 "이번 일은 남의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난 16일 이후 거주하는 빌라에 불 꺼진 집이 세 채나 있다며 "느낌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조 씨는 딸 친구의 언니 오빠 중에서도 이번 일로 생사가 불투명한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 나라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세월호의 침몰로 단원고와 안산시가 슬픔에 잠기자, 시민들의 불안감 또한 증폭됐다. 사고 후 정부와 언론의 미덥지 못한 태도가 '나와 우리 가족이 지금 못 믿을 사회에서 살고 있구나'라는 인식을 불러온 셈이다.
조 씨는 "재난 대책에 있어 우리나라는 후진국"이라고 비판했다. 재난 이후 상황이 피해자나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총 탑승자 수가 사고 당일에만 두세 번 정정됐으며, 현재는 CCTV 분석 결과 집계된 475명에서 한 명 더 늘어난 상태다. 구조 인원도 '전원'에서 '174-175-179', 다시 174명으로 오락가락하고 있다.
조 씨는 또 해운사가 폐선 직전의 일본 선박을 들여와 불법 개조한 사실을 꼬집으며, "(자신이) 대학 시절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갔던 20여 년 전과 지금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고 비판했다. 이어 조 씨는 "우리나라는 쉽게 안 바뀐다"며 지금 거론되고 있는 안전대책 등도 한때에 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4학년 딸을 키우는 한 모 씨(41) 역시 "국격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면서 재난 체계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게 어이없다"고 말했다. 한 씨는 "재난 상황에서 대처 요령을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선장 등 항해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먼저 빠져나갔다"며 "배가 기울었어도 체계가 있었다면 손도 쓰지 못하고 이렇게 (학생들이) 수장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소리를 높였다.
특히 한 씨는 "이 나라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라며 "지금 우리는 '불안사회'에 살고 있다"고 한탄했다. 여러 채널을 통해 쏟아지는 정보를 종합할수록 '사고 책임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씨는 이번 사건의 희생자 가족인 지인의 친구 얘길 전했다.
"두 번의 심장 수술 끝에 아이를 간신히 고등학교에 보냈다고 합니다. 진도에 내려가 있는 아이 엄마는 바다 속에서라도 기계 심장이 뛰기만 하면 아이가 살아 돌아올 수 있다고 울부짖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