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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꽃잎마다 머뭇거림이 머물러 있다
게시물ID : lovestory_878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35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6/28 08:16:01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lBTULQNr33s






1.jpg

박창기이런 날에는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마음 한 자락 풀어 놓을 수 있는 이런 날에는

혼자 고요에 침잠하고 싶네

 

내면을 향해 내닫는 깊이의 촉감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이런 날에는

고요의 빗장을 열고 두 손으로 잡고 싶네

 

빗장 안에서 기다리는 고요의 숙연함에 고개 숙이리

더는 내려앉지 않을 깊이에서 여린 마음 한 움큼 섞어 보겠네

섞일지 어떨지 모르는 절명의 순간을 견디며

이런 날에는 나 하나쯤 잊기로 하네







2.jpg

안도현고래를 기다리며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3.jpg

손현숙담쟁이

 

 

 

온몸으로 너를 더듬어서

변변한 꽃 한번 피워내지 못했지만

상처 많은 네 가슴

내 손으로 만지면서

담장 끝

너를 보듬어 오르다 보면

그때마다

사랑이니 뭐니

그런 것은 몰라도

몸으로 몸의 길을 열다보면

알 길 없던 너의 마음

알 것도 같아

캄캄했던 이 세상

살고 싶기도 하다







4.jpg

류시화모란의 연()

 

 

 

어느 생에선가 내가

몇 번이나

당신 집 앞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선 것을

이 모란이 안다

겹겹이 꽃잎마다 머뭇거림이

머물러 있다

당신은 본 적 없겠지만

가을 내 심장은 바닥에 떨어진

모란의 붉은 잎이다

돌 위에 흩어져서도 사흘은 더

눈이 아픈

우리 둘만이 아는 봄은

어디에 있는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소란으로부터

멀리 있는

어느 생에선가 내가

당신으로 인해 스무 날하고도 몇 날

불탄 적이 있다는 것을

이 모란이 안다

불면의 불로 봄과 작별했다는 것을







5.jpg

박남준아름다운 관계

 

 

 

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싱싱하다니

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

아무 것도 키울 수 없던 불모의 바위였지

작은 풀씨들이 날아와 싹을 틔웠지만

이내 말라버리고 말았어

돌도 늙어야 품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

흐르고 흘렀던가

바람에 솔씨 하나 날아와 안겼지

이끼들과 마른 풀들의 틈으로

그 작은 것이 뿌리를 내리다니

비가 오면 바위는 조금이라도 더 빗물을 받으려

굳은 몸을 안타깝게 이리저리 틀었지

사랑이었지

가득 찬 마음으로 일어나는 사랑

그리하여 소나무는 자라나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을 타고 굽이치는 강물 소리 흐르게 하고

새들을 불러모아 노랫소리 들려주고

 

뒤돌아본다

산다는 일이 그런 것이라면

삶의 어느 굽이에 나풀꽃 한 포기를 위해

몸의 한편 내어준 적 있었는가

피워본 적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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