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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대장
게시물ID : panic_879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루나틱프릭
추천 : 13
조회수 : 242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5/21 17: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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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아이는 노래를 참 잘 했다.

고등학교 때였을 것이다. 
당시에 유행하던 'She's gone'이란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지만
원 키 그대로 부를 수 있었던 사람은 그 녀석 뿐이었다.

누가 봐도 좋아할 만한 인상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얼굴을 뒤덮은 여드름에 지저분하게 목때가 낀 셔츠 깃,
그의 가녀린 다리를 감싸고 있는 너무나도 통이 큰 코끼리 바지와 함께
제대로 씻긴 하는지 의심케 하는 냄새까지.

덕분에 녀석은 급우들의 괴롭힘 대상이 되었다.
아니, 괴롭힘을 넘어선 린치였을지도 모른다.
녀석은 우리가 그를 구타하는 동안 노래를 해야만 했다.
그 때 당시에는 재미있었다.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맞고 나서 힘이 들고 아플 때면 녀석은 또 노래를 불렀다.
나는 너무나도 궁금해서 그에게 노래가 그렇게 좋냐고 물었다.
녀석은 그냥 고개를 끄덕거리며 부르던 노래를 계속해서 부를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작사 작곡에도 재능이 있었다.
그가 웃는 얼굴로 오선지를 품에 안으며 음악실로 달려가는 날이면
거기서 울려퍼지는 멜로디와 가사를 전교생이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가사는 유치하고 두서가 없었지만 말이다.

 아아 삼겹살 나는 삼겹살이 좋아
 부드러운 육즙과 살결 그리고 비계
 한 입 한 입 먹을 때 나를 웃게하네
 너무 좋아 불판 위에서 불타버리렴

그에 대한 구타는 날이 갈 수록 심해졌었다.

누군가가 유리조각을 그의 입에 넣고 주먹으로 안면을 갈겼을 때,
그의 입에서는 살점과 핏덩이가 쏟아졌다.
우리는 그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와 눈물을 처음으로 보았고 
그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그를 때리지 않았다.
녀석이 노래하는 모습을 한동안 볼 수 없었다.
그는 단지 오선지에 콩나물을 그리면서 가사를 썼다 지웠다 할 뿐이었다.

그가 노래부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축제 때였다.
가요제를 한다며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는데 그가 지원한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 썼다 지웠다 한 이유는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서인 모양이었다.

 "다음 참가자는 X반의 OOO입니다!"

그가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에 올라섰다.
밴드부는 그에게서 받은 악보를 보면대에 얹었고 곧 이어 거친 드럼의 선율이 시작되었다.
락인지 헤비메탈인지 모를 강렬한 소리가 장내를 뒤덮었고 모두는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그는 특유의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밴드의 강렬한 연주에 비해 가사는 서정적이었었다. 
졸업하고 나서도 학교를 잊지 않겠다느니, 뭐 누군가를 좋아한다느니
이런 두서없이 주제가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했었다.

그렇게 음악이 중반부로 치닫자 밴드부원들은 물론이고 
음악을 즐기던 군중들도 점점 표정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시점을 기하여 불협화음이 슬슬 끼기 시작하더니
이내 듣기 싫은 끽끽대는 소리로 변질되는 것이 아니었나. 밴드부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악보에는 이상이 없을 터인데.
그는 그런 선율의 변화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노래를 이어갔다.
듣고보니 가사도 점점 괴이해지고 있었다.

 똥을 먹는 자의 입에 유리조각을 물려
 때려서 선지와 선지를 뿜어
 또 피 그리고 절망과 절망
 잊지 않으리라 내 죽어서도
 나와 내 영혼을 죽인 자들에게 복수하리라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사회자가 그를 제지하려 할 때
갑자기 모든 악기의 연주자가 그들의 앰프가 버틸 수 있는 최고 출력의 소리를 뿜었고
그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던 녀석은 혀를 내밀어 강하게 깨물었다.
분홍색 살덩이가 바닥에 떨어졌고, 입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다.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곧 바닥에 놓여있던 전선을 입으로 물어뜯었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에서 스파크가 튀었으며
고요한 침묵 속에 누워 작은 경련을 일으킬 뿐이었다.
몸에서는 연기가 하염없이 뿜어져 나왔다.



그 때 이후로 나는 락 뿐만 아닌 밴드 음악이 싫어졌다.
지금이야 뭐 가면을 뒤집어 쓰고 노래하는 프로그램을 가끔 보긴 한다만
역시나 그 때의 기억 덕분에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주말 저녁은 잠자기에 딱 좋았다.
나는 다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워 불을 껐다.
고요함 속에 작게 드럼 소리가 들렸다.

TV를 끄지 않았었나? 거실로 나가보니 TV는 꺼져있었다. 
정말 이상한 것은 내 귀에 들리는 드럼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뒤쪽에서 기억 속 저 너머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들렸다.
단백질이 타들어가는 역겨운 냄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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